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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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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 부패 청소하겠습니다"

등록 2002-05-07 00:00 수정 2020-05-02 04:22

환경미화원으로 시 의원에 도전하는 나천봉·장석훈씨… 시청 공무원들 벌써부터 바짝 긴장

“우리 환경미화원은 시의원이 되더라도 비질을 계속할 겁니다. 시의원한테 나오는 세비는 장애인이나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헌납하고요.”

지난 5월2일 경기도 의정부시 중랑천 상류 둔치 옆 허름한 퀀셋 건물. 오는 6월 의정부시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나천봉(54)씨의 집이다. 나씨는 의정부시 시설관리공단 소속 환경미화원으로, 의정부3동 선거구에서 출마한다. 의정부3동에서만 22년째 살고 있는 나씨는 “이 동네는 아파트 지구고, 그동안 환경미화원으로 8년째 일하면서 동네 아줌마들과 대부분 얼굴을 트고 지냈기 때문에 여성표를 집중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했다.

“당선돼도 미화원 일은 계속”

환경미화원 복장을 하고 나씨의 집으로 달려온 장석훈(57)씨 역시 신곡1동 선거구에서 의정부 시의원 후보로 출마할 예정이다. 3년째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장씨는, 나씨의 말을 빌리면, 의정부시청 소속 하급공무원으로 있다가 지난 99년 낙하산을 타고 환경미화원 반장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곧바로 시청 쪽으로부터 “구조조정을 단행하라”는 오더가 떨어졌다. 장애인 등 몸이 불편한 환경미화원들을 정리해고하라는 지시였다. 뜻하지 않게 손에 피묻히는 악역을 떠맡은 장씨는 이에 반발했고, 곧바로 나씨와 함께 환경미화원들을 규합해 의정부 환경미화원노조 결성을 주도했다. 이 노조를 계기로 지난 2000년 말 경기도 내 환경미화원들을 주축으로 꾸려진 것이 경기도노동조합이다. 경기도노조 의정부지부의 조합원은 환경미화원과 주차관리요원 등 135명.

늦깎이 노동운동가가 된 나씨와 장씨 모두 민주노동당 당원이다. “조직과 정당이 움직여야 당선된다고 하지만 우리도 민주노동당이란 간판이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 뒤에는 수많은 조합원이 있습니다.”, “우리야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노동자가 절대 다수고 우리가 한꺼번에 떠들면 목소리가 크잖아요. 밑바닥에서 시민들의 삶과 일상을 봐왔기 때문에 시의회에 진출하면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적극 반영시킬 수 있습니다.” 나씨와 장씨가 번갈아가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나씨는 새벽에 거리로 일을 나가 보면 선심성 관광버스가 언제, 어디로 가는지 다 내게 들통난다며, 그래서 시의원이 되면 시행정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헛된 이름을 얻으려고 지방의회 진출을 도모하는 것도 아니라고 줄곧 강조했다. “이름이 탐나서 그럴 바에야 아예 출마하지도 않아요. 노조활동을 하면서 투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해 제도권 진입을 시도하게 된 겁니다.” 노조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서류 하나를 빼내려 해도 시의회가 협조해주지 않아 애먹었다는 것이다. 경기도노조의 교섭 파트너는 각 시청이다. 몇 차례의 교섭과정을 거치면서 자치단체의 문제점을 일일이 파악해 뒀다. 그렇게 축적된 자료를 시의회에서 폭로해나갈 작정이다. 실제로 경기도노조는 시청과 청소업자가 커넥션을 이뤄 환경미화원의 작업복값을 중간에서 떼먹은 사례를 적발해 비리의 고리를 끊기도 했다.

“두달간 구속, 재미있더라”

경기도노조에서 ‘조직적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환경미화원은 나씨와 장씨를 비롯해 모두 6명이다. 고양시의 김주실(35)씨와 성남시의 문공달(52)씨는 시의회에, 포천군 전순영(33)씨와 파주시 정재철(31)씨는 경기도의회에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다. 이들은 △절대 이권에 개입하지 않는다 △어떠한 회유와 뇌물도 받지 않는다 △시민 혈세로 가는 외국여행은 절대로 가지 않는다 △환경미화원 직업을 계속 유지한다는 공약까지 이미 마련했다. 저임금 영세노동자들의 권익보호에도 앞장서기로 했다. 선거비용은 모두 조합비로 충당하고,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전 조합원을 선거운동에 투입해 바람을 일으킬 작정이다. 이들은 시청이나 시의회의 누구누구가 민간업자와 결탁해 세금을 낭비하는지 등 의회에서 질의할 내용까지 이미 갖춰놓은 ‘준비된 의원들’이다.

장씨는 “4년간 시정질의를 단 한번도 안 한 벙어리 시의원이 여럿 있다”며 “돈 버리면서 왜 나서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넥타이 매고 공무원들과 어울려다니는 시의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우리 둘이 출마한다니까 벌써부터 시의회나 시청 공무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어요.” 노조활동으로 두달간 구속됐지만 “나쁜 짓 한 게 아니라서 그런지 구속돼도 재미있더라”며 나씨가 천진스레 웃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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