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권위주의 거부가 ‘양심’이 아니라니”

홍정훈씨 인터뷰
등록 2021-03-06 22:00 수정 2021-03-11 09:43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이후에야 처음으로 내 항소심 판결문을 정독했다. 재판 과정도, 그 결과도 너무 충격적이라 매번 차마 끝까지 못 읽겠더라.”

2016년 12월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입대를 거부한 홍정훈(31·사진)씨는 1심 패소(2017년 4월) 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가 없는 현행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같은 해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기존 유죄 판례를 15년 만에 무죄로 변경했다. 홍씨는 자신도 무죄판결을 받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2021년 2월25일 대법원은 홍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홍씨를 3월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홍씨는 대학 시절, 시도 때도 없이 집합시키고 과복마저 강요하는 교내 군사적 권위주의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당시엔 ‘병역거부’라는 선택지가 있는지도 몰라, 산업기능요원 복무를 고민했다. 2015년부터 참여연대 활동을 하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기로 결심을 굳혔지만, 자신의 양심을 증명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인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학교생활기록부와 병원 상담기록 등을 제출했지만, 검찰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신념이 있었는지 진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하더라. 친구가 증인으로 서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재판 중 판사의 권위적인 발언도 그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판사는 내게 ‘당신은 군대에 너무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군대 가서도 다른 사람을 총으로 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을 하기도 했다.”

홍씨가 산업기능요원 복무를 고민한 점도 ‘진정한 양심’이 아닌 결과가 됐다. 법원은 2심 판결문에서 “산업기능요원을 고려했고, 이것 역시 4주간 집총을 포함한 군사훈련을 한다”고 지적했다. “병역거부라는 선택지를 몰랐기 때문에 군사 행위가 가장 짧은 것을 찾아봤다. 하지만 난 끝내 그조차 선택하지 않았다.”

법원은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것과 반전평화주의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군사주의와 권위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권위주의를 거부하는 게 진정한 양심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놀랐다.”

유죄를 선고한 것은 법원인데 홍씨가 미안하다고 했다. “2019년 항소심 선고 때, 비종교적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재판을 보러 왔다. 내가 유죄판결을 받는 걸 보고 그가 무죄 받기를 포기하고 수감을 선택했다. 끝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 미안하다. 나를 보고 병역거부를 포기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병역거부가 보편적 권리로 인정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수감을 앞둔 홍씨는 수감 이후를 계획한다. 그는 주거권을 향상하는 활동을 펼칠 작정이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