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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미투 그후 3년

#미투3년 #서지현 #장혜영 #신지예 #변화 #존엄

#미투 3년의 교차점, 희망을 놓지 않는 게 어렵던 서지현 검사가
장혜영 의원·신지예 대표와 신뢰의 에너지를 나누다

제1352호
등록 : 2021-02-28 22:07 수정 : 2021-03-0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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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1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 모인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 장혜영 정의당 의원(왼쪽부터).

2018년 1월29일 이후, 한국 사회는 인간의 존엄을 바로 세우는 일에 번번이 실패했다. 이날 서지현(48) 검사는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란 알베르 카뮈의 글을 인용하며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어선 안 되겠다는 간절함”으로 검찰 내 성폭력을 고발했다. 국내에서 ‘미투’(Me Too) 운동으로 명명된 첫 성폭력 고발 사례다.

2년 뒤인 2020년 2월, 신지예(31) 당시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같은 당 당직자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 다시 1년 뒤인 2021년 1월, 장혜영(34) 정의당 의원은 같은 당 대표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은 사실을 밝혔다. 과거의 잘못이 여전히 제대로 단죄되지 못한 탓에 비슷한 범죄가 반복되는 것일까.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 장혜영 정의당 의원,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세 명은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언제든지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검사, 국회의원, 정당 지도부라는 지위와 권력도 방어막이 되지 못했다. 2021년 대한민국에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장혜영)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존엄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동료 시민”(장혜영)인 세 명이 2월1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마주 앉았다. 미투 운동이 국내에서 시작된 지 3년, 이들은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했다. 때론 훌쩍였고, 때때로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을 땐 눈을 반짝였다. 좌절, 불안, 두려움을 간혹 내비쳤지만 그 이상의 결연함이 엿보였다. 이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변화를 만들 것”(장혜영)이라고 했다. “쓰러지는 것보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서지현)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강인한 존재”인 성폭력 피해자들이 “승승장구했으면 좋겠다”고도 바랐다(신지예).

 장혜영 정의당 의원,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 이들은 각기 다른 경험을 공유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세 명의 미투, 세 명의 방식
세 명이 가해자와 맞선 방식은 다르다. 서지현 검사는 가해자와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형사 절차는 사실상 끝난 상태다. 대법원이 서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이를 덮기 위해 인사보복을 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탓이다. 서 검사를 음해한 2차 가해자(검사 3명)를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2019년 고소했으나,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뒤 관련 수사는 진척이 없다. 2020년 2차 가해자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지만, 2021년 1월 공소시효 마지막 날 무혐의 취지로 종결됐다. 서 검사는 “대법원이 성추행과 인사보복 사실을 인정했는데도 민사소송에서 가해자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3년이 지났는데 가해자들 중 아무도 이 사건으로 처벌받거나 책임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신지예 대표를 준강간치상한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는 2021년 1월 1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020년 2월 신 대표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녹색당 당직자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신 대표는 “다행히 초기 대응을 잘해 증거를 빨리 모았고 경찰에 바로 신고했다”. 가해자와 검사 모두 1심 판결에 항소했다.

정의당은 2021년 1월25일 김종철 전 대표가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밝히면서 김 전 대표를 직위해제하고 중앙당기위원회에 제소했다. 사흘 뒤인 28일 당기위는 김 전 대표를 제명하기로 결정하고 당적을 박탈했다. 장 의원은 “당이 절차에 따라 처리한 뒤 성폭력 전문가를 모셔서 인터뷰 영상을 제작, 공유했다”며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고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당원들과 함께 성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형사고소는 하지 않았다.

사법 절차를 밟은 두 사람과 달리, 장 의원은 조직(정당) 안에서 사후 절차를 밟았다. 어떻게 가능했나.

장혜영 “제일 중요한 건 (소속)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신뢰라고 생각하는데, 그 신뢰가 있었어요. 모든 절차가 완전히 매끄러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와 세워놓은 원칙에 당원들의 존중과 동의가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죠.”

서지현 “부러워요. 저는 검찰에 대한 믿음이 없었어요. ‘제 식구 감싸기’ 하는 장면을 숱하게 봐왔으니까요. 어떻게든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장관 면담을 신청했지만, 인사 불만 정도로만 치부했고 어떤 진상조사도 없었죠. 그만둘 생각으로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서지현 말이 맞지만, 왜 그런 방법을 썼냐’고들 말한대요. 당시 제게 어떤 다른 방법이 있었는지 되묻고 싶어요.”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면서, 내 자리에서 최선의 것을 하며 살면 돼요.” -서지현

사생활에 대한 진술, 미국에선 증거능력 박탈
많은 이가 성폭력 사건 이후 사법적인 구제 절차를 밟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결코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끊임없이 돌이켜야 하고, 이를 의심받으며, 증명해내야 한다. 피해자에겐 또 다른 고통의 과정이다.

사건 직후 “운 좋게 증거를 모았다”는 신 대표조차,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 변호인으로부터 2차 가해성 질문을 받았다. “가해자 변호인이 90도로 인사하며 ‘같은 여성으로서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상처 입는 질문을 드리겠다’고 말했어요.” 변호인은 재판정에서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기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을 보여주며 “이번 총선에도 나왔냐”고 물었다. ‘피해자다움’의 통념에 갇혀 피해자성을 부인하는 질문이다. 신 대표는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빨리 정치 활동을 다시 할 수 있냐는 뉘앙스였다”고 했다.

서지현 “일부러 여성 변호사에게 그 역할을 시킨 거죠. 많은 가해자 변호사가 따르는 공식이에요. 정확한 범죄사실과 관련 없는, 피해자 사생활에 대한 진술을 하게 만들면 (그 진술은) 증거능력을 박탈해야 해요. 미국엔 이런 법 조항이 있는데, 한국엔 아직 없어요. 가해자 쪽에서 악의적으로 피해자를 괴롭히는 행위를 양형에도 반영해야 하고요.”

신지예 “심지어 가해자의 어린 딸한테 탄원서를 받았더라고요. 그건 아동학대라고 생각하는데, 재판부가 그 점을 반영해 형을 줄여줬어요.”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감경 사유로 “피고인이 범행 자체는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피고인의 가족과 지인들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장혜영 “사법절차를 통해 가해자가 처벌돼도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한 (2차 가해가) 끝없이 반복돼요. 사법절차를 진행한다고 공동체적 해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게 아니죠. 공동체적 해결이 (회복의) 기본이에요.”

‘피해자 중심주의’ 사이 생략된 단어
장 의원은 사건 이후 “공동체적 해결을 원한다”는 자신의 의사를 무시한 채 가해자를 형사고발한 시민단체에 유감을 표했다. ‘미투’ 이후 공론화된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공동체적 해결’은 마치 사법적 해결의 하위 개념인 양 낯설게 여겨진다. 하지만 사법구제가 대개 가해자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면, 공동체적 해결은 구조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더 근본적이다.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토양 자체를 바꿔나가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사법절차를 밟지 않냐”는 비판이 있는데.

장혜영 “‘피해자 중심주의’란 말에 생략된 중간 단어가 ‘회복’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방식으로 회복하고 싶은가’에 대해 피해자에게 가장 많은 선택권을 주고, 그 의지를 존중하기 위해 구성원이 함께 노력하는 것이 ‘피해자 회복 중심주의’죠. 사법적으로 제소할 권리는 제게 있는 거고, 정확히는 아직 행사하지 않은 거예요. 선택 가능한 방법으로 여전히 남아 있어야 하는 거죠.”

신지예 “요즘엔 피해자에게 왜 다른 ‘미투’처럼 피해 사실과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냐고 묻잖아요. 이 방법은 피해자가 정말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마지막에 선택하는 건데…. 그 전까지 여러 선택권을 피해자가 보장받아야 하죠. 사법구제는 그중 하나고요. 제게 공동체적 해결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피해 지원 요청도 오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선 불가능해요.”

서지현 “현실이 그렇죠. 정의당이 이번에 좋은 선례를 만들어주길 간절히 기대하고 있어요.”

장혜영 “저는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어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주어 말하며) 제가 있잖아요. 정의당 사례를 예외로 만들면, 계속 우리에겐 사법구제라는 응보적인 방법밖에 없다고 말하는 거잖아요. (공동체적 해결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할 순 있지만 ‘불가능하다’고 보진 않아요.”

장 의원은 “조직 차원에서 성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공동체적 해결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때 공동체는 비단 정의당에 국한되지 않고 전 사회로 확장한다. “‘나는 빼고 너희가 반성해’가 아니라 ‘나는 이 구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란 성찰부터 시작하는 거죠. 피해자에게 말할 시간을 주고, 그를 위해 차라리 잠시 침묵하는 것처럼요. 이런 존중과 배려가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무엇을 피해 보았는가, 라는 질문 먼저
‘공동체적 해결’을 토대로 한 피해자의 일상 회복은 어떻게 가능한가.

장혜영 “회복은 ‘무엇이 피해인가’란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가해자가 자기 입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회복의 첫 단계죠. 피해자는 가만히 인간으로 존재하는데 외부 존재가 자신의 인간성을 훼손한 거잖아요. 따라서 외부로부터 이를 복구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은 가해자고요. 그가 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넌 그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야’라고 해줘야죠. 피해자의 인간성을 훼손당한 일이란 걸 제3자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해요. 피해자가 이 과정을 견디고 해결해나가는 기반이 되니까요.”

서지현 “사건 이후 가해자가 밟아야 할 절차를 교육 좀 했으면 좋겠어요.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가해자가 죗값을 받고 피해자가 보호를 받는 거예요. 그게 정의죠. 어떻게 하면 사회가 그걸 좀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고요.”

신지예 “정의당이 앞으로 공동체적 해결을 위해 앞장서야 할 일은 장 의원님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를 지지하고 리더로서 인정하고요. 당원들이 자정능력을 발휘해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요. 정의당이 그걸 앞으로 잘해나가는지 시민들도 계속 관찰하고 견제하는 것, 그게 공동체적 해결이죠.”

장 의원은 피해 사실을 밝힌 입장문에서 “남성들이 왜 번번이 여성을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실패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제 답은 찾았나.

장혜영 “대단한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안을) 정확하게 보기 위한 노력은 필요해요. 사건을 둘러싼 구체적인 맥락과 사회의 구조를 보지 않고 ‘그들’의 문제라고만 퉁쳐버리잖아요. 그래서 ‘어느 지점에서’ 실패하는가라고 썼어요. 어떤 실패가 중첩돼서 덩어리가 되는지, 그렇다면 그 지점은 어디인지 논의해야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미국 대법관도 1970년대 초반에 대법관으로 일하면서 ‘유치원 선생이 된 기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남성 대법관에게 하나하나 다 가르쳐줘야 했으니까요.”

신지예 “저는 다른 생각이에요. 여성이 설명을 못하거나 안 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에요.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백래시(반격) 현상이죠. 여성운동이 부흥할 때마다 기득권 남성들이 ‘너무 과격한 것 아니야?’라고 비판해왔어요. 기득권이 소수자 목소리의 힘을 빼기 위한 거죠. 정말 모르면 배우면 되는데 그 의지가 없는 거예요. 오히려 여성에겐 운동을 추동할 수 있는 더 확실한 구호와 목표, 흔들리지 않는 대중이 필요해요.”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이 세상이 다 포기한 게 아니죠. 내가 이 세상의 일부니까요.” -장혜영

살아남아서 상상해내는 사람들
서로 묻고 싶던 점도 있을 텐데.

서지현 “처음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는) 글을 올리기 전에 ‘다시는 문밖에 안 나오면 되지’라고 생각했어요. 검찰이 제가 유명해지고 좋은 자리를 가려고 한 일이라며 음해할 거라고 예상했거든요. 예상했는데도, 아프긴 아프더라고요. 두 분은 (어디로 숨을 수도 없는) 정치인이잖아요. ‘성폭력 피해자’라는 정체성이 낙인이 되는 부담감은 없었나요?”

장혜영 “처음 이 문제를 고민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죠. 사람들은 피해자를 리더나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 벽을 깨고 나가는 것밖엔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그 통념이 잘못된 거잖아요. 피해자도 리더일 수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리더도 피해자가 될 수 있죠.”

신지예 “오히려 저는 살아남은 피해자이기에 훨씬 더 강하다고 생각해요. 그 고난을 견디고 살아남아서 희망을 찾고 변화를 말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두 분이 그렇죠. 가부장제에 반대하고 대안이 되는 사회상, 정치상, 검찰상을 상상해냈잖아요. 더 많은 여성이 정치를 하거나 유리천장을 뚫고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는 단순히 소수자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사회변혁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존재다.” 신 대표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강인한 존재임을 강조했다. 성폭력 피해 경험이 오히려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하는 뿌리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민주화 세대가 독재와 폭력에 맞서 투쟁하고 이를 정치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발현한 것처럼, 그는 지금 여성들도 일상의 폭력과 차별에 대해 싸우고 더 나아가 이를 정치 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봤다.

서지현 “저에 대한 음해 중 하나가 ‘정치하려고 그랬다’는 거예요. 이미 여러 영입 제안을 거절했는데도 계속 그래요. 두 분에게도 ‘정치에 이용하려고 폭로했다’는 자들이 있지 않나요?”

장혜영 ‘정치하려고 그랬다’는 식의 말은 성폭력이 첨예한 정치의 한복판에 놓인 문제라는 점을 부정해요. 자기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더 나은 공동체로 가기 위한 모든 행동이 정치잖아요. 비단 대의제 정치인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요. 정치할 거냐, 승진하려느냐, 돈 벌려고 하냐. 이런 모든 말은 너무나 명백하게, 시선을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돌리는 역할을 해요. 무슨 일인지 명확하게 바라보고 재발 방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는 왜 저랬대?’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가해 행위와 가해자를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죠.”

신지예 “저는 왜 (정치에) 이용하면 안 되는지 (되묻고) 싶어요. (웃음) 성폭력 피해자들이야말로, 지금 이 ‘성 적폐’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는 주체죠. 성폭력, 성차별을 경험하지 않고, 재판이나 공동체적 해결에 앞장서보지 않고 이 절절한 사회문제를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저는 피해자가 당연히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성폭력 피해자들이 책도 쓰고, 자기 이름으로 브랜드도 만들고, 승승장구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안 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가장 힘든 일, 희망을 놓지 않는 일
“승승장구하면 좋겠다”는 신 대표의 말처럼,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는 여성들이 지치지 않고 함께 갈 수 있길 바란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존중, 변화에 대한 갈망을 바탕으로 저마다 역할을 해가고 있다. 법무부에서 낙태죄, 디지털성범죄 등과 관련한 법안 개정을 위해 에너지를 쏟는 서 검사는 “바뀌어야 한다. 너무 절박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살 순 없다. 변화가 절박하다”며 장 의원도 거든다.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마음이에요. 서 검사님과 함께 가해를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법을 제도화해나가야죠.”

서지현 “‘미투’ 3년, 사건이 발생한 지는 11년이 됐는데, 희망을 놓지 않는 일이 가장 힘들어요. 검찰에서 보여준 모습이 절망밖에 없거든요.”

장혜영 “본인이 (이미) 희망이 된 거라고 생각해요. 서 검사님은 제가 ‘앞서 용기 내어 말해온 여성들의 존재 덕분’이라고 입장문에 쓸 때 제 머릿속에 떠올린 분인걸요. (서 검사를 양손으로 가리키며) 이만큼의 희망이 있는 거죠. 검찰의 나머지가 다 엉망이어도, 이 사람이 있으니까 희망이 있는 거죠. 저는 사람들이 (이렇게) 굉장히 구체적인 방식으로 희망을 만들고 느낀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이 세상이 다 포기한 게 아니죠. 내가 이 세상의 일부니까요.”

신 대표도 “한국 정치의 주체가 2030 여성이 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팀 서울’이란 이름으로 노동, 기후위기, 페미니즘, 장애, 동물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들과 힘을 모아볼 계획이다. “‘오늘을 살아내고 같이 내일로 가자’는 이야기를 나눠요.” 그는 연대의 힘을 믿는다.

“성폭력 피해자들이야말로, 지금 이 ‘성 적폐’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는 주체죠.” -신지예

사회의 변화가 더뎌 지친다는 여성들도 있다.

장혜영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을 당대 여성들이 만들어왔어요. 그걸 큰 자긍심으로 삼으면 좋겠어요. 다만 뭔가에 복무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생각하진 않았으면 해요. 내가 당하는 부당한 일에 대해 매일 화내지 않아서, 마치 내가 이 변화의 물결에 충분히 동참하지 않은 듯한 부채감을 갖는 분들을 종종 보는데 그러지 않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의 동력이 되거든요.”

서지현 “아무것도 안 변한 것 같지만, 사실 긴 역사를 되돌아보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어요.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면서, 내 자리에서 최선의 것을 하며 살면 돼요. 이 말이 제게도 굉장히 큰 위안과 희망이 됐어요. 사실 지쳐도 돼요. 살아 있는 이상 절망과 실패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웃음) 쓰러지지 않는 것보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신지예 “지금 한국에서 페미니즘이란 말을 대부분의 국민이 알잖아요. 그만큼 여성들이 계속 사회적 이슈를 만들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온 것이죠.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조금이라도 갖게 하는 것, 그게 인식 변화의 시작이거든요. 불합리한 행동을 계속 주시하고, 사회 이슈에 댓글이라도 하나 다는 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회를 진전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이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는 주체란 걸 계속 상기하면 좋겠어요.”

좌절감과 열망의 교차, 포기와 신뢰의 교차
서 검사는 처음 장 의원의 입장문이 발표된 날 한참을 울었다. 무엇도 바뀌지 않았다는 좌절감 때문이다. 신 대표 사건이 알려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날 이 두 여성과 긴 대화를 나누면서 밝은 웃음을 되찾았다. 이들이 지닌 씩씩함과 밝음, 변화에 대한 열망, 또 변할 수 있다는 신뢰의 에너지가 그에게도 전해진 듯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서 검사는 되뇌었다.

글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기획 - #미투 그후 3년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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