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1월, 유공은 공세적 광고를 신문에 냈다. ‘가습기메이트가 없으시다면 가습기를 끄십시오.’ 가습기살균제라는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유공 광고에는 또렷이 ‘인체 무해’라고 박혀 있었다. 비극의 씨앗이었다. 유공에서 가습기메이트 사업을 인수한 에스케이(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산업이 2002년 판매한 가습기메이트 용기에도 이런 표시가 있었다. ‘영국 Huntington Life Science에서 저독성을 인정한 항균제를 사용하여 인체에 해가 없는 안전한 제품입니다.’ 그해 10월15일치 <서울신문> 신제품 기사는 이 제품을 ‘인체에 무해한 항균제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고 실었다.
이후 가습기메이트가 인체에 해가 없다는 표시 광고는 계속됐다. 2005년 10월25일치 <머니투데이> 제품 기사는 ‘인체에는 안전하다’, 다음날 <중앙일보> 제품 기사는 ‘인체에 안전한 성분으로 온 가족의 건강을 돕는다’고 실었다. 그리고 2011년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우리 사회가 알아차릴 때까지 가습기메이트 용기에는 ‘은은한 솔잎 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쾌적한 실내 환경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라고 표시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다른 비극과 구별되는 점은, 그것이 가족 건강에 좋은 줄 알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구입한 소비자의 적극적 선택 행위가 필수적 매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을 위해,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가습기살균제를 애써 구매한 소비자는 자신의 행위가 가족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다른 회사의 가습기살균제와 마찬가지로, 소비자는 가습기메이트에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라는 화학물질이 원료로 사용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업체가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물질을 국립환경과학원이 ‘유독물에 해당함’이라고 고시한 때는 2012년 9월5일이었다. 이미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드러난 뒤였다. 한국 정부는 고시에서 이 물질이 ‘급성독성이 높음’ ‘피부과민성 물질 및 부식성 물질임’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 유해성은 한국 정부가 새로 분석한 것이 아니었다. 1998년 미국 환경청은 CMIT/MIT의 유해성을 발표했다. 2012년 한국 고시는 그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을 뿐이다.
2021년 1월19일, 한국환경보건학회는 법원을 비판하는 성명에서 물었다. 법원은 왜 CMIT/MIT가 자극성 강한 물질임을 알면서 이를 사람이 직접 흡입하는 제품에 적용한 책임을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 묻지 않았는가? 법원이 1월12일 가습기메이트 살균제 관련자에게 무죄 판결을 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정부가 공식 발표한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단독 사용 피해자만 2020년 10월27일 기준 196명이다. 그런데 법원은 왜 무죄를 선고했는가? 법원은 가습기메이트 때문에 피해자에게 폐질환과 천식이 발병했다는 검사의 기소 내용이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가습기메이트의 원료인 CMIT/MIT가 동물실험 결과 코와 비강(콧구멍에서 목젖 윗부분에 이르는 빈 곳) 등 상부 호흡기도(상기도)에 염증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봤다. 그러나 검사가 기소한 피해자 질환은 폐질환과 천식 같은 하부 호흡기도(하기도) 질환이었다. 법원은 이 기소된 질환과 CMIT/MIT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1심 판결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규홍 안정성평가연구소 유효성평가연구단 단장 등은 1월19일 입장을 내어 재판부가 전문가 의견을 잘못 이해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반박했다.
모두 138쪽에 이르는 판결문 가운데 화나는 부분이 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검찰 공소장에 문제의 가습기메이트만을 쓴 피해자로 제시된 사람이 과연 그 가습기살균제만을 단독 사용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적시했다(판결문 127쪽). 이는 무슨 말인가? 검사가 문제의 가습기살균제만 사용한 피해자라 제시한 기본 사실조차 법원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다. 형사범죄 대상이 된 피해자인지조차 법원이 의심하는 일은 보통의 형사 공판에서도 발생하기 어렵다.
폐섬유화 질환 없는 이는 피해자에서 제외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검찰, 질병관리본부(현재 질병관리청) 그리고 환경부는 2011년 우리 사회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알아차릴 때부터 CMIT/MIT 성분 피해자들의 조사 요구를 한사코 외면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증상은 폐섬유화’라는 틀을 고집하며 다른 피해 질환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했다. 이번 판결에서 지적했듯이, 폐섬유화로 대표되는 가습기살균제 유발 폐질환은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라는 다른 화학물질이 발생시켰다. 이들 화학물질을 원료로 쓴 것은 옥시 가습기살균제가 대표적이었다. 그리고 SK케미칼과 애경산업 가습기메이트의 원료와 다른 화학물질이다. 가습기메이트를 쓴 이들의 질환과 증상이 폐섬유화와 다른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2011년부터 국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폐섬유화’라는 등식을 모든 피해자에게 강요했다.
나도 직접 보고 들었다. 2011년 이래 SK케미칼과 애경산업 가습기메이트가 유발할 수 있는 상부 호흡기 질환은 체계적으로 배제됐다. 가습기메이트 사용자들의 요구는 검찰청 정문 앞에서, 질병관리본부 입구에서 가로막혔다. 폐섬유화 질환이 없는 이는 피해자에서 제외됐다. 이번 무죄 판결에 가슴이 무너진 가습기메이트 사용 피해자가 내게 보낸 글의 일부다.
“그때 제가 질병관리본부한테 들었던 얘기가 질병관리본부에 말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질병관리본부는 신고된 것이 폐질환이어서 폐만 본다. 우리한테 말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환경부가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에 대해 동물실험을 시작한 때는 2017년이었다. 가습기메이트가 출시된 2002년에서 15년이 지난 뒤였다. 누가 가습기살균제 구입 영수증이나 빈 통을 그렇게 오랜 시간 보관해 그 사용을 증명할 수 있는가? 하지만 그 결과로 무죄 판결이 나왔다. ‘만들어진 무죄’이다.
이번 판결이 끝이 아니다. 제조사와 판매사는 인체에 해가 없는 안전한 제품이라고 표시해 소비자를 유인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검찰도 항소심에서 CMIT/MIT가 유발할 수 있는 피해 질환을 중심으로 공소장을 변경·보완해야 한다. 국민은 항소심에서 정의를 보기 원한다. 정부가 196명의 피해자를 인정한 가습기살균제에 ‘인체 무해’라고 표시한 기업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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