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 소속 회원들이 삼성생명 본사 고객만족플라자에서 점거농성 중에 응원 케이크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하루에 약 20만 명이 드나드는 거리, 조명과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음악과 자동차 소음이 뒤섞인 이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외면에 지칠 법하지만 싸움은 4개월, 1년, 16년째 계속됩니다. 서울 강남역 사거리, 그곳은 5월5일부터 제 일터가 됐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광화문 희망사진관이 문 닫아 실업급여를 받는 중 제게도 일이 생겼습니다. 월급은 주지 않지만 가끔 식사를 주고, 무엇보다 잠자리를 보장하는 좋은 직장입니다.
실은 <한겨레21>이 이 일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거리에서’ 칼럼을 쓰다가 만난 직장이기 때문입니다. 칼럼에 쓸 사진을 고민하다가 삼성을 상대로 26년간 복직투쟁을 하는 김용희씨를 떠올렸습니다. 1982년 삼성에 입사해 노조를 만들려다 1995년 해고당한 김용희씨는 강남역 사거리 25m 높이 철탑 위에서 1년째 농성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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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일 노동절에 김용희씨를 응원하기 위해 강남역 앞 천막을 찾았습니다. 김씨는 힘겹지만 굳센 투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후속 조처 없는 무성의한 사과에 대해 이야기하다 저도 모르게 연대를 다짐하고 말았습니다. 며칠 뒤 정책기획국장을 맡으며 지하철 2호선 강남역 8번 출구 앞은 제 집이 됐습니다.
아침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선전홍보를 하고, 낮엔 여러 회의와 집회를 준비하는 게 요즘 제 일상입니다. 밤엔 출구 앞 천막에서 잠을 잡니다. 홈리스 생활이 익숙한 저에게도 풍찬노숙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몸이 피곤한 것보다 아무 대응 없는 삼성의 반응이 더 힘듭니다. 삼성전자 앞에서 노숙시위를 하고, 이재용 부회장의 한남동 집 앞에서 연좌시위를 해도, 또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이재용 부회장 집까지 행진하고 “이재용 구속, 피해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과”가 적힌 종이비행기를 담장 안으로 날려보내도, 삼성은 아무 답이 없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시민들의 응원입니다.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 come)를 부르며 이태원 거리를 걸을 때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시민들을 보았습니다. 작지만 또렷한 지지는 힘이 됐습니다. (물론 행진은 1m 이상 간격을 뒀습니다.)
이 직장 아닌 직장의 타이틀은 ‘삼성피해자 공동투쟁’입니다. 여기엔 김용희 동지(이젠 김용희씨가 아닌 동지입니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삼성물산에 강제 철거당한 뒤 16년째 싸우는 ‘과천철거민 대책위원회’가 있고, ‘노조 와해’ 공작과 탄압에 7년째 맞서는 ‘삼성전자서비스 해고자복직 투쟁위원회’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약관대로 보험금을 주지 않고 암환자를 우롱하는 삼성생명에 맞서 암환자 6명이 4개월째 농성 중인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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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0일 아침, 투병 중에도 거리에 나와 있는 암환자 6명을 위해 케이크 하나 만들었습니다. 케이크 하단에 이들의 이름인 김근아, 박연신, 구경아, 이경민, 김경숙, 김은숙을 써넣었습니다. 제 몸을 사르며 타오르는 여섯 촛불은 강남역을 밝히는 화려한 빛보다 밝은 듯합니다. 그들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연대해주십시오.
이상훈 광화문 희망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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