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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법

“척지면 살아남기 힘들다”… 법조계의 삼성 눈치 보기
등록 2020-02-08 15:54 수정 2020-05-03 04:29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맡았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을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특검팀 출신 변호사는 국내 대형 로펌에 취직하지 못하고 국선변호인이 됐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맡았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을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특검팀 출신 변호사는 국내 대형 로펌에 취직하지 못하고 국선변호인이 됐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국정농단 특검팀에서 일했던 변호사는 당분간 대형 로펌 취직은 꿈도 못 꿀 거다.” 2017년 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가 한창일 때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서울 서초동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다. 특검팀에 특별수사관으로 합류한 변호사들이 특검팀을 그만두고 나서 국내 대형 로펌에 취직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박영수 특검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는 게 그 이유다. 아무리 삼성의 영향력이 막강해도 특검팀 출신 변호사의 취업까지 좌우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설마 했던 이 말은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국정농단 특검’ 변호사, 로펌 못 가고 국선으로

최근 박영수 특검팀을 그만두고 국선변호사로 취업한 한 젊은 변호사가 서초동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로스쿨 출신인 이 변호사는 특검 초기에 합류해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와 1·2·3심, 그리고 파기환송심까지 참여했다. 3년여 동안 특검팀에서 활동하며 그는 베테랑 검사들의 수사와 재판 노하우를 전수받는 등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해보기 힘든 경험을 쌓았다. 이런 이유로 박영수 특검을 비롯한 선배 변호사들은 그에게 대형 로펌 취업을 권했다. 형사소송에서 다른 변호사들과 차별되는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한 10대 로펌이 그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로펌은 막판에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특검팀 사정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은 “그 변호사에게 관심을 보였던 로펌이 갑자기 영입을 포기했다. 로펌 경영진이 삼성과의 불편한 관계를 의식해 영입에 반대했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전했다. 앞서 특검팀에서 일했던 다른 변호사들도 대형 로펌의 문을 두드렸으나 초기에 그만둔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다고 한다.

변호사업계에서 ‘삼성과 척지면 법률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이 나돈 지는 오래됐다. 삼성이 변호사업계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그룹 계열사의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면 큰돈을 벌 수 없다. 그래서 삼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상대방을 대리했던 변호사들은 대형 로펌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2012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그의 친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상속 소송에서 이맹희 회장을 대리했던 변호사는 소송에서 진 뒤 몸담고 있던 로펌을 떠나야 했다. 그에게는 ‘무리한 소송으로 로펌의 평판을 나쁘게 했다’는 험담이 쏟아졌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유언에 따라 상속이 이뤄졌기에 승소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소송을 강행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상속을 다투는 대상은 2008년 삼성 특검에서 드러난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이었기 때문에 선대회장의 유언과 무관하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개인 간 소송 등 사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특검법에 따라 공적인 일을 한 변호사들이 대형 로펌들의 ‘삼성 눈치 보기’로 불이익을 받는 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정경유착이 만연한 시대에 등장한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지금도 변호사업계에선 전혀 낯설지 않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맡았던 박영수 특별검사팀.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맡았던 박영수 특별검사팀.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부, 노골적 편들기

박영수 특검팀이 ‘삼성공화국’을 실감하는 건 이뿐만 아니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삼성이 국가적, 사회적 자원을 독점하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 단계로 접어든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부)가 노골적으로 이 부회장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17일 열린 4차 공판에서 정준영 재판장은 삼성이 만든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평가해 이 부회장의 형량을 정하는 데 반영하겠다고 했다. 이는 첫 공판 때 자신이 했던 “(준법감시위 설치가) 재판 결과와 무관하다”는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말만 바꾼 게 아니라 재판에 참고하겠다고 밝힌 미 연방양형기준(제8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의심까지 받는다. 제8장은 개인의 양형이 아니라 법인(회사)에 관한 것이다. 법인에 부과할 벌금을 어떻게 산정할지에 관한 기준이다. 이를 이 부회장의 형량을 정하는 데 참고하겠다는 건 당찮은 일이다.

더욱이 제8장은 이 부회장처럼 최고책임자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 준법감시위는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 최고책임자는 준법감시제도를 유효하게 운용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가 사고를 쳤다면 준법감시조직이 제대로 운영됐다고 볼 수 없다. 또 범죄행위를 저지른 시점에 준법감시조직이 이미 존재했어야 한다. 삼성처럼 재판부의 요구에 따라 급조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날 공판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평가하는 전문심리위원을 구성하겠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재판부의 이런 태도를 두고 법조계에선 “소매치기 현장에 나중에 CCTV(폐회로텔레비전)를 설치했다는 이유로 범인을 풀어주려는 것 같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재판부가 미 연방양형기준을 잘못 이해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이 부회장 쪽에 유리하게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용, 삼바 문제까지 떠넘길 수 있을까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이 부회장은 또 하나의 고비를 맞게 됐다. 서울중앙지검은 2월4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과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회계사기’ 수사와 관련해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부회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삼성 2인자’였던 최 전 부회장의 소환 조사는 이 부회장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으로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앞서 삼성 뇌물 관련 수사와 재판에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과 합병 과정 전반을 최 전 부회장이 ‘알아서’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삼바 사건’까지 최 전 부회장에게 떠넘기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부회장은 아무 탈 없이 ‘삼성공화국’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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