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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덧셈의 정치를 하라

1년 계약직이지만 파업 대체인력과는 무관한 아나운서들

MBC는 지노위·중노위·법원 결정 무시하고 업무 주지 않아
등록 2019-06-22 15:33 수정 2020-05-03 04:29
2017년 계약직으로 채용된 MBC아나운서들, 왼쪽 부터 이휘준, 박지민, 김민호, 이선영. 한겨레 신소영 기자

2017년 계약직으로 채용된 MBC아나운서들, 왼쪽 부터 이휘준, 박지민, 김민호, 이선영. 한겨레 신소영 기자

어느 스님이 내 직업을 듣자 이렇게 말했다. “가장 좋은 재판보다 가장 나쁜 화해가 훨씬 낫습니다.” 그 이유는, 재판은 누가 이기든 결국 서로 적이 되고 말지만 화해는 각자 손해가 있어도 다시 친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지연된 정의’라는 개념도 그 스님 말씀과 관련 있다. 정의가 실현되더라도 그 시기가 너무 늦어버리면 소용없다. 재판에서 이기면 무얼 하나. 이미 그 과정에서 오랜 기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살림은 거덜 나고 공동체에서 소외된 삶을 되돌릴 수 없다면 말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20대 중·후반 한창 일할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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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절차가 복잡하고 굉장히 늦다. 1심 판결이 나오는 데만 1년 넘게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3심인 대법원까지 올라간다고 치면 전체 소송 기간으로 3~4년은 그냥 지나간다. 그래서 재판에서 최종 승소하더라도 그야말로 “상처뿐인 영광”이다. 이를 영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특히 노동 사건에서 노동자는 피해가 일어난 계속적 상태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동료 직원들은 회사와 맞서는 노동자를 멀리한다. 부당한 인사 발령이나, 더 나아가 해고를 다투는 사건의 경우 노동자는 생활상 불이익이 극심하다. 시간은 늘 회사 편이다. 노동자는 눈물과 피를 흘리는 인간이지만, 소송당한 회사는 인격이 소거된 존재다. 회사는 돈도 많다. 그래서 해고 사건에서 중간에 화해하지 못하고 결국 판결문을 받아보는 노동자는 언제나 패배자다. 회사는 재판의 전 과정을 다른 직원들에게 전시한다. “봐라, 너희도 회사를 거스르면 저렇게 된다. 재판 승패와 관계없이 너희는 무조건 망가진다.”

노동 사건에선 가장 좋은 재판마저 지연된 정의가 아닐 수 없으므로 이렇게 노동자는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다. 인생을 잃는다.

지금 MBC 부당해고 아나운서들은 총 10명이다. 20대 중·후반 한창 일할 나이다. 특히 아나운서는 직업 특성상 이 나이대가 전성기다. 1~2년 일을 못하면 경력에 상당한 타격이 생긴다. 동년배 아나운서들은 간판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2017년 파업의 대체인력으로 오해받고 있다. 이것이 이들을 가장 아프게 한다. 알지 못하면서도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바로 ‘혐오’다. 이들은 대체인력이 아니다. 파업과 무관하게 그 이전에 채용됐다. 당시 옛 경영진은 아나운서들을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그러나 경쟁률은 1700 대 5 정도로 예년 정규직 공채 때와 비슷했고, 평가 내용도 다를 바 없었다. 지원자들은 4~5차에 이르는 긴 검증을 거쳤다. 지금 MBC 주장대로 단지 1년 쓰고 말 기간제노동자를 뽑는 채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떤 회사가 1년짜리 계약직을 뽑는 데 이 정도 비용과 노력을 쏟는다는 말인가.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내 전산망도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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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형식의 아나운서 채용은 지상파방송 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회의록을 보건대, 아나운서들이 노동조합 활동에 “선무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계약직으로 선발해서 길들인 다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획이었던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실제 이후 파업이 발생했을 때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쉽사리 파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무조건 해고되기 때문이다. 형식상 계약직 신분이므로 회사는 간단한 계약 만료 통보로 이들을 쫓아냈을 것이다. 옛 경영진이 기간제법을 악용해서 파놓은 함정이었다.

파업에 함께하지 못한 이 아나운서들은 늘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간혹 “너희 처지를 이해한다” “너희는 노조도 지금 가입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며 이해해주는 선배들도 있었다. 이들은 죄송하다고 말했다. 생존 공포라는 실존과 언론 자유라는 공익 앞에서 갈등했다. 그러나 이들은 초인이라거나 지사가 되지는 못했다. 평범했다.

그리고 현 경영진으로 바뀐 뒤 이들은 형식상 계약 만료를 이유로 해고됐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그리고 민사법원은 해고가 부당하다고 했다. 채용 절차·내용, 교육, 업무, 지휘·명령 체계, 외관,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인사권자의 직접적 신뢰 부여 등으로 인해 ‘계약갱신기대권’이 발생했다는 이유다. 그러나 지금의 MBC는 지노위, 중노위, 법원이 다 틀렸다고 한다. 그래서 재판을 좀더 진행하겠다고 한다. 아나운서들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임시 복직됐다. 그런데 MBC는 이들을 원래 아나운서국이 아닌 별도 공간에 격리했다. 업무를 전혀 주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말했다. 사내 전산망도 이들에게만 차단된 상태다. 인사하러 오는 이도, 받아주는 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영혼이 부서진다.

MBC는 촛불혁명으로 다시 바르게 섰다고, 우리는 그렇게 말했다. MBC에 화해를 요청한다. 그것이 서로에게 많은 손해를 입히는 아주 나쁜 화해라도 말이다. 대리인인 나는 소송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 그러나 법리적으로 이 사건이 왜 MBC에 승산 없는 싸움인지를 더 말하고 싶지 않다. 다투고 싶지 않다. 이 청년 노동자들이 더 염세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노조는 침묵 말고 용기를 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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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에도 고한다. 파업을 하면 비정규직이 일해서 난감한 상황이 자주 있다. 투쟁하는 조합원들 처지에서는 괘씸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인간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같이 비정규직을 광범위하게 쓸 수 있는 노동환경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개개인을 미워하고 보복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구조 자체를 개선하기 위해 싸우고, 그렇게 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품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처지에서 내재적으로 이해해보고, 부디 이들의 손을 잡아달라. 일부 현장의 ‘정서’를 들어 침묵하지 말고 용기를 내달라. 뺄셈의 정치가 아니라 덧셈의 정치를 해주시라. 함께 살자. 비정규직 제도와 옛 경영진의 비열한 채용 전략이 만들어낸 이 비극을 지금이라도 함께 풀어내보자.

류하경 변호사
(MBC 아나운서 해고무효 확인소송 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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