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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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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 수학’ 대신 ‘개념 수학’!

스스로 의문과 동기가 생기도록 하는 교과서

<만화 수학교과서> 펴낸 최수일 선생님
등록 2019-05-10 14:00 수정 2020-05-03 04:29

수학은 ‘개념’이다. 수학의 본질적인 구조인 정의와 정리, 정의와 정리들의 연결 관계가 바로 개념이기 때문이다. 수학 공식을 외워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습관이 자리잡으면,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건너뛰게 된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로 가는 지름길인데, 어려서부터 문제풀이식 학원 선행학습에 길들면 이 길로 가기 십상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왜 이런 ‘공식’이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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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과서에 얼마나 대단한 개념이 있겠어?’ 싶지만 그렇지 않다. 가령 ‘2÷1/4=2×4’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교과서에 처음 나온다. 그때부터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반복해서 문제를 풀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공식’인데, 정작 왜 그렇게 되는지 물어보면 어른도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 분수의 나눗셈과 소수의 나눗셈은 연산의 완성으로 중1이 되면 유리수의 사칙계산으로 연결되는데, 문제는 많이 풀어봤어도 ‘기초’가 부실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최근 6학년까지 완간된 (이하 )에서는 ‘2÷1/4’의 나눗셈을 수직선으로 나타내어 설명한다(사진). 1/4씩 8번 뛰어 세면 2가 되므로, 몫은 8이 된다. 1/4씩 똑같이 덜어내는 방법으로도 계산할 수 있다. 2에서는 1/4을 8번 덜어낼 수 있으니 몫은 8이 된다. 2÷1/4=8이 되는데, 이를 토대로 (자연수)÷(분자가 1인 단위분수)의 계산 방법을 정리하면 자연수와 단위분수의 분모를 곱한 값이 몫이 된다. ‘▲÷1/★=▲×★’로 공식화할 수도 있다.

전국수학교사모임이 수년간 공들인 초등 ‘대안 수학교과서’ 전 6권 작업을 마무리했다. 2016년부터 준비해 2018년 1~4학년 교재를 냈고, 지난 4월15일 5~6학년용 교재까지 끝났다. 대장정을 총괄한 최수일 수학사교육포럼 대표(서울시교육청 수학교육혁신TF 공동위원장)를 4월24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교육의 시작은 잘 정리된 지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아이들이 직접 혼란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려서 ‘아, 어떻게 풀면 되지?’ 스스로 의문과 동기가 생기도록 해주는 게 교과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최 대표는 한성과학고·세종과학고 등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교사이자 수학자로서 경험과 신념이 반영된 책이 다. 학년별로 77개 핵심 질문과 개념을 실었는데, 개념마다 주인공 초등학생이 ‘말도 안 되는 수학적 상황’에 당황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최 선생님과 함께 질문과 답변을 통해 ‘말이 되는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교과서는 아니지만 실제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이 모두 담겼고, 교재 순서도 교과서 진도에 맞췄다. 학교 진도에 맞춰 수학적 개념을 다양한 시각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아이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만화라는 형식도 도입했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font size="4"><font color="#008ABD">‘다 안다’며 듣지 않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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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가 ‘개념 학습’을 강조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개념을 알아야 개념 사이의 연결 능력(논리적 사고력)이 향상되고, 새로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응용 능력이 생기며, 개념적으로 이해한 지식은 장기 기억으로 저장될 뿐만 아니라, 수학에 대한 내적 동기가 유발돼 수학을 좋아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수학 학습의 ‘정답’이 개념 학습이라는 건 모두가 알지만, 한국의 수학 교육은 그렇지 않다. 교과서 개념 설명보다는 문제집 문제풀이 위주로 교육이 된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연산 문제지를 나눠주고 ‘시간 재기’로 빨리 푸는 것을 순위 매기는 일까지 벌어진다. 문제풀이를 선행한 아이들이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는 것도 흔한 일이다. 최 대표는 “문제풀이 선행을 하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개념을 설명할 때 ‘다 안다’고 생각해 듣지 않는다. 가령 ‘자연수÷단위분수=자연수×단위분수의 분모’를 공식으로 외운 아이들은, 선생님이 공식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 즉 개념을 설명할 때 ‘쉽게 풀 수 있는데 왜 저렇게 해?’ 하고 선생님을 무시한다”며 “그 아이는 영원히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도 ‘비교육적’이라는 걸 알지만 문제풀이 위주 선행학습을 포기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최 대표는 “한국 교육의 정점은 대입이기 때문에 대입에서 고교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상대평가 결과를 반영하면, 중학교에서 절대평가를 하고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안 봐도 소용이 없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초등학교 시험을 없애도 결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정점’을 바라보며 선행학습으로 달리기하게 된다는 뜻이다.

수능 수학 영역에 나오는 이른바 ‘킬러 문항’은 한국 수학교육의 비정상성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다. 최상위권 학생을 변별하기 위해 매년 한두 개씩 출제되는 최고난도 문제다. 최 대표는 “수학 개념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선이 있는데, 킬러 문항은 서로 먼 개념들에서 조금씩 떼서 부자연스러운 문제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킬러 문항은 수학적 사고력으로 푸는 게 아니라 문제를 외워서 푸는 건데, 오죽하면 (서울) 대치동에서 킬러 문항을 만들어 파는 영업이 성행하고 킬러 문항만 가르치는 학원이 생겼겠느냐”고 비판했다. 사교육걱정은 ‘불수능’ 논란을 빚은 2019학년도 수능 수학과 국어의 킬러 문항과 관련해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국가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정상적인 고교 교육과정을 위반해 출제돼 학생과 학부모 모두 정신적·물리적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비정상성의 극단적 예 ‘킬러 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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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문제가 수능에 나오고, 초등 고학년이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를 준비한다며 고교 수학 “진도를 빼는” 비정상의 시대다. 최 대표는 그나마 현 고1부터 수능에서 미적분·확률과통계·기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바꿔 말해 둘은 버려도 되는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전에는 수능 시험 범위가 고교 6학기 동안 다 배우기 힘들 정도로 넓어 현실적으로 중학생의 ‘선행 요인’이 있었지만, 현 고1부터는 굳이 선행하지 않아도 학교 진도에 맞춰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며 공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 대표는 “부모가 수학을 못해도 하루 30분만 투자하면 아이가 수학적 개념에 다가가도록 도울 수 있다”고 독려한다. 부모가 복습 차원에서 수학교과서를 읽어주고 “집합이 뭐야?” “이등변삼각형이 뭐야?” 하는 식으로 아이 스스로 정리한 것을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는 제안이다. 그는 “수학은 인과관계를 공부해야 하고, 왜 그렇게 되는지 말하지 않으면 공부가 안 된다”며 “어려서부터 문제를 손이 아닌 말로 푸는 연습을 하면 좋다”고 덧붙였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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