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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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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전교조, 이름만 빼고 다 바꾼다

근본적 변화 내걸고 당선된 권정오 전교조 신임 위원장 인터뷰
등록 2019-01-19 07:56 수정 2020-05-02 19:29
1월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본부에서 권정오 위원장이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1월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본부에서 권정오 위원장이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올해로 설립 30주년을 맞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이끌게 된 신임 권정오(54) 위원장의 ‘일성’이다. 권 위원장은 1월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에 있는 위원장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대중조직’ 전교조의 향후 운영 원칙을 설명했다. “전교조는 활동가조직이나 정치조직이 아닌 대중조직”이며 “작은 일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그의 오랜 신념이 담긴 표어다.

권 위원장은 새내기 교사 시절이던 1989년 노조 결성으로 한 차례 해직됐다. 울산지부장이었던 2016년엔 법외노조 통보 반대 투쟁으로 다시 해직됐다. 두 차례 해직으로 ‘강성’ 이미지에 갇힐 법도 하지만 그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사업 계획이나 투쟁 계획을 세울 때 되도록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방식”을 고집해온 그의 철학이 영향을 미쳤다. 가령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국선언 당시 그는 교사 실명 뒤에 학교를 명기하지 않는 방식을 주장했다. 동명이인 교사가 많은 탓에 학교를 밝히지 않으면 시국선언 참가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결의 수준’은 낮아질 수 있으나, 일반 교사의 ‘참여 폭’을 넓힐 수 있는 방식이었다.

“2030 전교조 참여, 절체절명의 과제”

1989년 세운 전교조는 권 위원장의 말마따나 “지난 30년 한국의 교육 변화에 기관차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앞으로 30년은 이전 30년과 다르다. 전교조 역시 새로운 시기를 준비할 때가 됐다. 조합원들이 새로운 30년의 설계자로 선택한 사람이 바로 권 위원장이다. 그는 “어느 집행부라도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활동할 수밖에 없다. 전임 집행부가 박근혜 정부와 법외노조화라는 시대적 한계에 맞춰 법외노조 통보 취소 투쟁에 집중하며 주어진 역할을 다 했지만, 조합원들은 이제 새로운 차원에서 전교조의 활동 전망을 요구하고 있다”고 선거 결과를 자평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권 위원장의 선거 전략에도 반영됐다. 권 위원장-김현진 수석부위원장 팀은 후보 시절 “바꾸자! 전교조, 주목하라! 교사의 일상에, 선택하라! 새로운 세력을, 딥 체인지”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서른 살 전교조를 “이름만 빼고 다 바꾸겠다”는 공약과 포부로, 지난해 12월5~7일 조합원 77.7%가 참여한 선거에서 51.5%를 득표해 결선투표 없이 당선됐다.

16~18대 위원장이 전교조 내 범‘교찾사’(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 정파로 분류되는 반면, 19대 권 위원장은 참교육참세상을위한소통과실천(소통과실천) 정파로 분류된다. 권 위원장은 “사실 전교조 탄압은 세울 때부터 특별한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며 “법외노조 취소에 총력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기본적으로 조합원들의 삶을 챙겼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조합원들이 아쉬움과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고 ‘변화’를 내세운 이유를 밝혔다.

권 위원장이 생각하는 ‘딥 체인지’(큰 폭의 변화)는 전교조 조합원 구성이 변화한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교조는 1989년 생길 때부터 ‘불법 노조’였다. 전교조 가입 자체가 불법이었고, 해직 사유였다. 전교조가 엄혹한 탄압을 각오한 ‘활동가 중심’ 조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1999년 전교조 합법화 이후 시대적 상황과 조합원 구성이 달라졌다. 큰 희생을 각오하지 않더라도 자유로운 전교조 가입과 활동이 허용됐다. 그런데도 “전교조 활동이 대중조직적 방식으로 바뀌지 않고 활동가 중심으로 유지돼온 측면이 있고, 촛불혁명 이후 더욱 다양해진 조합원들의 요구와 지도부의 사업 관행이 일치하지 않으면서 근본적인 변화 요구가 커졌다”는 게 권 위원장의 분석이다.

20·30대 조합원 참여율이 저조한 ‘법외노조보다 엄혹한 현실’도 전교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민주화 시기 교사들은 교육 민주주의라는 큰 어젠다(의제)를 보고 전교조 활동을 함께했다. 젊은 교사들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다양하고 자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제시한다. 교사로서 정체성과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는 노조, 참여하면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노조를 원한다.

권 위원장은 “‘왜 젊은 교사들이 참여하지 않는가’라는 문제제기는 전교조로서 매우 아픈 지적이고 전교조가 변화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며 “20·30대 교사가 전교조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조직의 절체절명 과제”라고 강조했다.

현장 교사들의 요구 ‘교육권 보호’

지난해 12월10일 당선 기자회견을 하자마자 주요 언론은 일제히 ‘전교조 신임 위원장, 교육권 보호 최우선’을 제목으로 뽑았다. 전통적으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권을, 전교조는 학생 인권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전교조 신임 위원장이 ‘교육권 보호’를 전면에 내세우자 ‘노선 변화’에 주목한 것이다. 권 위원장은 “노동자 운동은 ‘조합원들이 무엇에 갈급하는지 파악하고 답을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며 “후보 시절 파악한 조합원들의 요구 가운데 최우선 순위가 바로 교육권 보호였다”고 밝혔다.

그는 “전교조는 교사를 조직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으로, 교사들의 교육노동을 지원하고 교육 노동이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침해받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교사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가르치는 행위가 법률로써 보장돼야 하고,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주체들이 교사의 교육권을 받아들여야 한다. 권 위원장과 김 수석부위원장이 선거 캠페인 기간 직접 돌아본 400여 개 학교 현장의 상황은 조금도 그렇지 못했다. 교사들은 지극히 교육적인 지시와 영(명령)조차 학생들에게 일상적으로 거부되는 비참한 현실을 개선해달라고 호소했다.

권 위원장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스승과 제자가 아닌 ‘교육 서비스 공급자-수요자’로 재편된 1995년 5·31 교육개혁의 폐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입시 체제 아래서 시달리고 억압받는 학생들이 교육 서비스 공급자인 교사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주는 일이 많고, 학부모 역시 교육권을 침해하는 일이 예사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의 바람막이가 돼주어야 할 교육부와 교육청은 뒷짐을 지기 일쑤다. 교사들이 교육권 침해 문제에 노동조합이라도 나서서 ‘우산’이 돼달라고 요청하는 배경이다.

권 위원장은 교육권 보호의 하나로 교육권보호센터를 구상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생기는 조합원들의 어려움을 상담하고 해결하며, 필요하다면 치료와 치유를 돕는 센터를 지부별로 만들 계획이다. 오랜 세월 교육권 문제를 겪고 고민해온 전교조 활동가들, 퇴직한 조합원은 다른 어떤 전문가보다 교사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될 수 있다. 재정과 법률 지원 등 전교조의 능력만으로는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는 교육권 보호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시도 교육청과 연계해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학교폭력법 폐지, 심각한 사안은 형사 처벌로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외투에 나란히 달고 있는 세월호·한반도·전교조 배지.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외투에 나란히 달고 있는 세월호·한반도·전교조 배지.

학교폭력법 개정도 권 위원장 임기 내 중점 과제로 다뤄질 듯하다. 전교조는 원칙적으로 학교폭력법이 폐기돼야 한다고 본다. 교육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학생들 간의 사소한 갈등까지 모두 범죄화하고 처벌하며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해 낙인찍는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다만 폐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면 먼저 개정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학교폭력은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가해-피해 상황이 복잡한데다 학교폭력법상 심사 절차도 매우 까다롭다. 그런 상황에서 법률 전문가도 아닌 교사들이 판사처럼 학교폭력 사건을 다뤄야 하고, 조금만 실수가 있어도 심사 절차에 문제가 제기된다. 일단 학교폭력심사위원회 기능을 지역 교육청으로 이관하는 게 맞고, 장기적으론 학교폭력법을 폐기하되 정말 심각한 학교폭력 사건은 형사법으로 다루면 된다.”

전교조는 교육권이나 학교폭력 등 최근 몇 년 사이 떠오른 이슈 외에 입시 등 전통적인 교육 현안과 관련해서도 목소리를 내왔고 정부 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새 지도부 역시 전교조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국공립대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학벌 체계 해체’ 등 주요 교육정책에 대한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입시 문제는 점점 더 해법이 묘연해지는 총체적 사회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고민이 깊다.

근본적으론 출신 학교에 따른 급여나 처우에 차별이 없어져야 입시 문제가 풀릴 텐데, 이는 전교조의 역량만으론 불가능한 영역이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부작용은 전교조 내부적으로 학생부교과전형 확대 쪽으로 가닥이 잡힌다. 하지만 대학이 우수한 인재를 뽑아가는 데만 골몰할 게 아니라,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쪽으로 태도와 정책을 바꾸는 게 급선무라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 중에서 최선과 최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던 권 위원장은 곤란한 듯 매우 조심스럽게 “저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이 뭔지를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비판이나 비아냥이라기보단 진심 어린 걱정에 가까운 답변이었다.

입시정책 공론화위 결정은 예견된 실패

“진보교육감 출신 김상곤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실패를 이야기하는데, 김상곤의 실패라기보다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라고 본다. 교육 관료에 포위된 김 전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청와대가 교육철학과 비전을 좀더 명확하게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 실패했다.” 대한민국 행정조직 중 기관 수가 가장 많고 공무원도 가장 많은 조직이 교육부-교육청-학교다. 이런 거대 조직을 변화시키기엔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청와대가 보여준 정책 방향과 의지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권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백년대계인 입시 문제를 교육 전문가가 아닌 공론화위원회에서 다루게 한 ‘예견된 실패’를 자성해야 한다”며 “연말에 발족할 국가교육위원회만큼은 핀란드처럼 수십 년간 부침 없이 교육 개혁을 추진할 수 있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가교육위원회는 전교조도 오랜 세월 주장해왔던 사안”이라며 “국가교육위원회가 성공할 수 있도록 전교조도 음으로 양으로 최대한 협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 지도부가 교육권 보호를 천명했지만, 법외노조 문제는 여전히 전교조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절실한 과제다. 전교조가 문재인 정부 출범 1년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법적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는 바람에, ‘교육 개혁 주체’로 나서는 데 여러 어려움이 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은 최근 7개 시도 교육청과 전교조의 단체협약을 교원노조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교육부에 ‘조처’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권 위원장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노동관계법의 정신과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공세”로 규정했다. “기본권은 법률에 특별한 제약이 없으면 권리를 허용한다. 교원노조법에 ‘법외노조인 전교조와 단체교섭을 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지 않는 한, 교육청과 전교조의 단체협약은 합법이다.”

문재인 정부는 법원 판결과 국회 법 개정 등으로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한다는 견해를 지키고 있다. 전교조 전임 지도부는 법외노조 통보 직권 취소를 요구하며 단식투쟁 등을 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권 위원장 역시 법외노조 통보 직권 취소가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일단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의 성격을 규정하고 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눈엣가시 같은 반대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자행한 대표적인 적폐가 바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촛불혁명 이후 탄생한 정부의 제1 과제라는 점은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졌다고 본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취소는 노동기본권의 문제이자 기본 인권의 문제이지, 정부와 전교조가 타협하거나 협상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권 위원장은 “전교조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교육 개혁 주체로 나서려면 반드시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한다”며 “상반기 중에 풀지 못하면 올해 안에 법외노조 문제를 풀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법외노조 문제 좌고우면, 역풍 있을 것

“문재인 정부가 여론과 지지율 추이를 살피면서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좌고우면할수록 지지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큰 기대를 걸었던 시민사회가 그런 좌고우면 태도 탓에 기대를 냉소로 바꾸면서 오히려 지지율이 하락한다고 분석한다.

정부가 내세우는 법 개정이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점은 한편으론 타당해 보이지만, 국회 현실에 비춰보면 실제 법 개정 가능성이 작아 보이는 것 또한 기우가 아니다. 권 위원장은 “법 개정이든, 법원 판결이든 정부가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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