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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어 마이셀프”

티셔츠의 정치학
등록 2018-11-19 04:58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티셔츠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세기 말 속옷으로 만들어진 티셔츠가 겉옷으로 진화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다.

군복의 속옷으로 배급받았던 티셔츠를 전역 군인들은 고향에 돌아와서도 계속 입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정치적인 티셔츠</font></font>

그러자 모두가 티셔츠를 속옷이 아니라 겉옷으로 입기 시작했다. 영화의 영향도 컸다.

말런 브랜도가 에서 티셔츠를 입고 나온 것은 결정적이었다. 모두가 당대의 가장 섹시한 남자인 말런 브랜도처럼되고 싶어 했고, 티셔츠는 모두가 사랑하는 기본적인 패션 아이템이 됐다.

티셔츠와 함께 패션을 통한 슬로건의 역사도 시작됐다. 티셔츠는 하얀 캔버스다. 거기에 어떤 문구를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티셔츠를 본격적으로 슬로건의 역사와결합시킨 것은 디자이너 캐서린 햄넷이다. 그는 1984년 마거릿 대처를 만나면서 “영국인의 58%는 퍼싱미사일 배치에 반대한다”는 반핵 메시지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심지어 함께 사진까지 찍었다. 그는 “티셔츠 문구는 먼 거리에선 읽을 수 없지만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1980년대 이후 티셔츠는 특히 10~20대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문구를 담는 멋진 캔버스가 됐다.

논란도 종종 일어났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멜라니아 트럼프와 방탄소년단이다. 멜라니아는(티셔츠는 아니지만) “나는 신경 안 써, 너는?”(IReally Don’t Care, Do You?)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재킷을 입고 멕시코 접경 지역의 이민자 아동시설을 방문했다가 이민자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냐며 역풍을 맞았다. 그는 결국 그 재킷을 입은 이유가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좌파 언론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언론에 설명했다.

방탄소년단의 멤버는 일본 나가사키 원폭 구름 사진과 ‘애국심’ ‘해방’ 등의 단어가 쓰인 티셔츠를 입었다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본방송 출연이 황급히 취소됐다. 이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다만 이건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 강제징용자를 포함한 수십만 명을 신무기로 증발시키고 불태우고 고통받게 한 것은 휘발된 인류애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그것 때문에 출연을 취소한 일본 방송사의 결정을 두고 ‘전범 국가’의 행위를 알리는 일본의 자충수가 됐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 다행히도 방탄소년단 소속사는 “전쟁 및 원폭 등을 지지하지 않고, 이에 반대하며, 원폭 투하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상처를 드릴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사과했다.

얼마 전 방탄소년단은 유엔 연설에서 “스피크유어셀프”(Speak yourself·자기 목소리를 내자)라고 말했다. 그걸 인용해서 “웨어유어셀프”(Wear yourself)라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티셔츠 하나를 직접 제작해서 입고 다닐까 생각 중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나도 나를 입겠다</font></font>

문구는 “기사님 말 시키지 마세요”라거나“저는 도에 관심이 없습니다” 중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다. 조금 더 정치적인 슬로건이필요하다면 “조속한 북핵 문제 타결” 정도의 얌전한 문구라면 어떨까 싶다. “조속한 연봉협상 타결”이 쓰인 티셔츠를 가장 입고 싶기는 하다만, 사내 정치를 바깥으로 내보여서야되겠냐는 생각에 자중하련다.

김도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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