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을 특검하라!”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2017년 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부대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에 반발해 이렇게 외쳤다. 박 특검팀이 특검법을 위반해 편파적 수사를 하고 있으니 또 다른 특검을 만들어 이들의 불법행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엄동설한에 목청껏 외친 보람도 없이 이들의 주장은 별다른 공감을 얻지 못했다. 박 특검팀의 수사에서 특검법 위반으로 볼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검찰의 ‘초벌’ 수사로 박근혜 정권의 불법행위가 잇따라 드러난 것도 이들의 외침이 외면받는 데 일조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역대 최악의 정치특검 될라</font></font>‘드루킹’(김동원)의 인터넷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허익범 특검팀의 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지금 1년여 전과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8월14일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특검법을 위반한 역대 최악의 정치특검이 계속된다면, 국민은 허익범 특검을 특검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 특검팀이 송인배 청와대 비서관의 정치자금 의혹을 수사하는 것은 명백한 별건 수사이기 때문에 특검의 수사 범위를 넘어서는 위법행위라는 주장이다.
민주당의 주장은 1년여 전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공세 성격이 강하지만 그 양상은 상당히 다르다. 법조계에서도 허 특검팀의 송 비서관 정치자금 의혹 수사는 별건 수사라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허 특검이 수사하면 특검법 위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드루킹 특검법에 규정된 수사 대상은 ①드루킹과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의 불법 여론조작 행위 ②위 수사 과정에서 범죄 혐의자로 밝혀진 관련자들의 불법행위 ③드루킹의 불법 자금 관련 행위 ④위 세 가지 의혹 등과 관련한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 등이다. 특검팀은 송 비서관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④에 해당하는 ‘인지 사건’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송 비서관은 드루킹의 불법 여론 조작 행위와 관련 없고, 범죄 혐의자도 아닌 참고인 신분이기에 그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특검 수사 대상으로 보긴 어렵다. 송 비서관 관련 의혹은, 그가 민주당 당협위원장이었던 2011~2016년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소유한 시그너스컨트리클럽에 이사로 있으면서 급여 명목으로 연간 수천만원씩 받은 돈과 관련된 것이다. 이는 드루킹의 불법 자금과 무관하다. 과거 특검 수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특검이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사건일지라도 무조건 수사 대상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혐의가 의심되는 사안은 검찰에 넘겨 나중에 수사하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허 특검팀은 송 비서관 관련 의혹을 언론에 흘렸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송 비서관의 시그너스 급여 건은 특검의 계좌 추적으로 드러났다. 특검이 아니고서는 언론에 흘릴 만한 수사기관이 없다. 특검법은 특검 관계자가 피의 사실을 외부에 누설할 경우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하도록 돼 있다. 특검 수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또 다른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송 비서관 관련 보도가 허 특검에서 흘린 게 아니라면 곧바로 유출 의혹을 부인하는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 건과 관련해 허 특검의 공식 입장은 ‘아무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노회찬 타깃’ 정치적 편향성 논란</font></font>허 특검팀은 수사 초기부터 이런저런 구설에 올랐다. 그 가운데 특검법에 명시된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논란은 특검 수사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허 특검팀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불리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여권으로부터 “특검이 언론플레이한다”는 공격을 받았다.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논란은 허 특검의 뉴라이트 활동 경력이 근본 배경이다. 지난 6월 허익범 변호사가 특별검사로 임명되자 민주당은 “2007년 뉴라이트 단체 300여 개가 연합한 ‘나라 선진화 공작정치 분쇄 국민연합’ 법률자문단에 그가 이름을 올린 것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허 특검이 언론을 통해 “내용을 정확히 모르고 이름을 올려도 된다고 허락을 했지만 그 일에 관해 별도로 어떤 자문 활동을 하거나 그 단체의 활동을 한 바는 전혀 없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허 특검이 보수 성향이 강한 공안 검사 출신이라는 점도 논란을 키웠다.
지난 7월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죽음은 허 특검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번 사건의 본류가 아닌 노 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첫 타깃으로 삼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수사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의 유력한 정치인을 거꾸러뜨려 특검 수사에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고 특검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이 법조계에서 나왔다.
허 특검을 둘러싼 논란은 앞서 박영수 특검 때와 비교하면 더욱 도드라진다. 박 특검팀의 수사 대상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규모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지만, 태극기 부대의 반발을 제외하곤 별다른 논란 없이 성공적으로 수사를 마쳤다.
박 특검팀은 수사 준비 단계부터 빠르게 움직였다. 70일에 불과한 짧은 1차 수사 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려면 사건의 성격과 수사 대상, 순서 등을 빨리 정해야 했다. 특검은 검찰에서 5만 6천장이 넘는 방대한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총 5부를 복사해 팀별로 나눈 뒤 각 팀에 소속된 파견 검사들에게 숙독하도록 했다. 검사들은 그 가운데 핵심만 뽑아 별도의 기록물로 만들어 나중에 수사관으로 합류한 변호사들과 공유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20일의 준비 기간 중 10여 일을 검찰 수사기록 숙독과 새 기록물 작성에 썼다. 나머지 8~10일 동안 팀별로 브레인스토밍식 토론을 벌여 수사 대상과 순서를 정했다. 삼성과 롯데의 뇌물 혐의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수사가 이 준비 기간에 확정됐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진술에만 의존하지 않은 박영수 특검</font></font>박 특검이 삼성과 롯데가 최순실씨 쪽을 지원한 것에 뇌물 혐의를 적용한 것은 사건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한 것이다. 삼성과 롯데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씨를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서 일종의 갈취를 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검은 이들의 행위를 뇌물성 거래로 의심했다. 최씨를 지원하는 대신 정부로부터 어떤 ‘대가’를 기대한 것으로 본 것이다. 두 기업에는 각각 경영권 승계와 면세점 사업 확장이라는 ‘숙원 사업’이 있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각각 독대한 자리에서 최씨 지원을 요구받았다. 이 부회장과 신 회장은 측근들에게 최씨를 지원하도록 지시했다. 삼성은 최씨의 요구대로 자금을 지원했고, 롯데는 돈을 냈다가 나중에 돌려받았다. 이들 기업과 함께 최태원 SK 회장도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돈을 요구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이미 두 차례 감옥을 갔다 온 최 회장의 ‘경험’에 따른 판단이었다.
박영수 특검팀은 삼성과 롯데를 재단출연금만 낸 SK, 현대 등 다른 기업들처럼 단순 피해자로 처리하는 것은 법리상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국정 농단 사건의 배경에 정경유착이라는 고질적인 권력형 비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사건의 성격이 명확하게 규정되자 뇌물 혐의 수사 속도가 빨라졌다.
수사 준비가 탄탄하게 된 덕분에 돌발 상황에도 잘 대응할 수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은 박 특검팀의 최대 고비였다. 박 특검팀은 영장이 기각되자 곧바로 삼성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를 지원한 부분을 보강 수사했다. 영장 재청구 여부는 보강 수사 결과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수사 준비가 잘돼 있으니 승마 지원에 대한 보강 수사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박 특검의 최종 재가를 받아 재청구한 이 부회장의 영장은 법원에서 발부됐다.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혐의가 충분히 소명된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박 특검팀 관계자는 “삼성과 롯데 쪽 진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사건을 분석한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허익범 특검팀은 드루킹 쪽의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8월10일 특검 조사에서 벌어진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드루킹 김씨와의 대질신문에서 드루킹 김씨가 일부 진술을 번복한 것은 특검으로서 뼈아픈 사건이었다. 재판에서는 일부 진술의 번복만으로도 전체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검팀이 다른 물증으로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 사전에 확인해야 했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물 건너간 네이버 관련 수사</font></font>허 특검팀이 네이버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네이버는 드루킹이 매크로를 이용해 인터넷 댓글을 조작한 것을 사전에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매크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널리 쓰인 댓글 조작 프로그램이다. 전문가들은 댓글만 봐도 조작 여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드루킹의 댓글 조작은 네이버에서 성행했던 여러 댓글 조작 중 하나였다. 따라서 네이버 수사는 매크로를 이용한 댓글 조작의 실태를 파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8월25일 1차 수사 기간 만료를 코앞에 둔 지금, 네이버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법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특검이 인터넷 댓글 조작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다. 허익범 특검팀도 매우 아쉬워할 것”이라고 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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