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비밀리에 이뤄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을 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임 비서실장의 갑작스러운 UAE 방문은 일반적인 외교 관례상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방문이 비밀리에 이뤄진 점, 통상적인 외교부 경로를 거치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임 비서실장이 직접 나선 점, 지난해 11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방문한 국가를 정권의 핵심 인사가 다시 방문했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그 때문에 두 나라 사이에 대외적으로 공개하기 매우 곤란한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임 비서실장이 전격 투입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청와대가 공개를 꺼리는 ‘매우 곤란한 문제’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 등 야권과 정부·여당이 내놓는 주장이 서로 다르다. 꼬인 실타래처럼 여러 사실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이번 ‘UAE 사태’를 되짚어보자.
임 비서실장은 한국과 UAE 사이에 벌어진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틀어진 양국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다.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혹을 제기한 곳은 한국당이다. 한국당의 주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UAE와의 관계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적폐 청산 등으로 틀어졌다는 것이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1월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 보복에만 혈안이 된 아마추어 정권이 국가의 연속성을 부정하고, UAE가 한국 정부와 맺은… 특히 군사협력 양해각서조차 적폐로 간주하고 불법성을 운운하다 돌이킬 수 없는 사안까지 초래한 것이 UAE 원전 게이트의 진실”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군사협력 양해각서’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양국 신뢰 훼손 원인 놓고 여야 공방</font></font>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한국과 UAE가 맺은 ‘비공개’ 약정 또는 각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4건, 박근혜 정부에서 1건 등 총 5건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4~10월 UAE와 ‘군사비밀 정보의 보호에 관한 약정’ ‘정보보안분야 교류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 ‘군사 교육 및 훈련 분야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방산 및 군수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등 1건의 비밀 약정과 3건의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이 약정과 각서들은 한국이 2009년 12월 UAE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수주한 직후 체결됐다. 2010년 11월에는 이와 관련된 아크부대를 UAE에 파병하는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 안은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이명박 정부는 4건의 비공개 약정과 각서를 체결했다는 사실을 2010년 11월에야 공개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이던 유승민 당시 한나라당 의원(현 바른정당 대표)이 이들 문건의 존재를 집요하게 물어봤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당시 여당 의원이었지만 비공개 약정과 각서의 절차적인 문제와 파병의 위험성을 강하게 경고했다. 그는 당시 국방위에서 “(UAE 파병 결정) 과정에서 헌법을 위배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정권의 생명이 걸린 문제”라며 “다음 정권에 가면 다 드러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당시 정부에 4건의 비공개 약정과 각서의 내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끝내 이를 거부했다. 현재까지 이 협정들은 ‘2급 기밀’로 분류돼 공개되지 않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잇따라 비밀리 체결된 군사협정 </font></font>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년 12월엔 상호군수지원협정(MLSA)이 체결됐다. 당사국이 평시와 전시에 각종 군수 물품을 서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한 협정이다. 이 협정이 체결됐다는 사실도 비밀에 부쳐지다 임 비서실장의 UAE 방문 이후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공세에 맞서 여권에선 이명박 정부가 UAE 원전 수주를 위해 군사협정 등 애초에 지키기 힘든 무리한 이면계약을 했고, 이 문제가 전 정부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불거져왔다고 주장한다.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과 한 통화에서 “박근혜 정부의 후반기에 이미 탈이 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UAE에서 지난 정부가 약속을 안 지켰다고 현 정부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정부에서 틀어진 관계를 문재인 정부가 수습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국 사이에 체결된 여러 합의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상호군수지원협정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 김종대 의원은 1월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협정) 내용 자체가 우리가 이행하기에는 부담이 과도했다. (UAE의 적대국인) 이란과의 관계도 있고 또 아랍의 분쟁에 연루될 위험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 협정을 다 이행하다보니 (박근혜 정부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당시 체결된 협정 내용에 △국군 파병 △탄약 등 병참 물자 지원 △군 현대화 교육·훈련 △방산 기술 협력 등 4가지 협력 사안이 명기돼 있다고 전했다.
UAE는 한국과의 군사협력을 왜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UAE가 놓인 지정학적 이유 때문이다. 수니파 이슬람 국가인 UAE는 호르무즈해협을 사이에 두고 시아파의 맹주국인 이란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특히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면 UAE의 원유 수출 경로는 막히고 만다. 그래서 자원 부국인 UAE는 독자적으로 군사작전을 입안·실행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군 보유를 국가의 숙원으로 생각해왔다. 이명박 정부에서 UAE와 협정 체결에 관여한 국방부 관계자는 “국가 간 대형 사업을 진행할 때 절충교역을 한다. 일반적인 절충교역에서 가장 큰 것이 기술력 이전이고 그다음이 자국 업체가 부품 등을 팔 수 있게 해주는 것, 또 하나가 국가 사이에 필요한 사항에 협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UAE는 이 가운데 ‘필요사항’으로 군사분야를 들어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UAE는 한국군을 벤치마킹해 교육·훈련 수준을 높이고 국방 체계를 선진화하기 위해 2010년 8월 한국에 파병을 요청했다. 그에 따라 2011년 1월 150여 명 규모의 ‘UAE 군사훈련협력단(아크부대)’이 아부다비주 지역에 파병됐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한 관계자는 “아크부대는 특수작전 관련 훈련이 주된 목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UAE 내부에선 아크부대 같은 특수전을 치를 수 있는 정규부대를 길러낼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어 했다. 말하자면 전쟁 수행이 가능한 군부대를 갖고 싶어 했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면계약 후폭풍 눈감은 박근혜 정부 </font></font>이명박 정부는 UAE와 맺은 이면계약을 실행하기 위해 2010년과 2012년 UAE에 파견할 전역 간부들을 모집했지만 실패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SBS 은 1월2일 “(2010년) 육군은 과학화 훈련 전문가, 해군은 항만 방어와 함정 수리 전문가, 공군은 조종과 정비, 무장 전문가들을 전역한 간부들 중에서 수소문했다. 국방부는 400명 정도 모아서 UAE로 보낼 작정이었는데 100명도 못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 보도에는 2012년에도 UAE 항공우주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국방부가 사람을 찾았으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3월 국방부가 이 사업을 취소했다는 내용도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방부가 갑작스레 사업을 취소한 시점은 김장수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이 남재준 당시 국가정보원장에게 “이명박 정부에서 수주한 아랍에미리트 원전 계약 당시 이면계약이 있었는지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던 시기(2013년 4월)와 겹친다. 이를 종합해보면, 이명박 정부에서 UAE와 맺은 비공개 합의를 실행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 가운데는 박근혜 정부가 실태를 조사해봐야 할 정도로 무리한 내용이 많았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당시 청와대가 국정원에 조사를 부탁한 내용으로는 원전 수주 조건으로 핵폐기물과 폐연료봉을 국내에 반입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박근혜 정부 역시 UAE와 무리한 협정을 이어갔고 이것의 부작용이 현 정부까지 이어진 셈이다.
김종대 의원이나 이름을 밝히길 꺼린 여권 인사들의 주장대로 양국 관계의 문제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됐고 현 정부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면 현재 자유한국당의 공세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당의 주장대로 양국의 신뢰가 깨진 시점이 문재인 정부 이후라고 하더라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책임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UAE와 한국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절차적인 정당성과 내용적인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UAE와 관계를 유지해온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이와 별개로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진 각종 이면계약이나 파병 등이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에 체결한 한-UAE 군사협정에 기초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김종대 의원은 1월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시 협정은) 한국형 고등훈련기 T-50을 UAE에 수출하기 위한 것으로, 순수 방위산업에 국한된 협력”이라고 말했다. 여당 핵심 관계자도 “(두 협정은) 전혀 다르다. (노무현 정부 때의 협정은) 국회 비준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되도록 언급 꺼리는 청와대 </font></font>현재 한국과 UAE의 관계는 임종석 비서실장의 UAE 방문으로 위기 상황은 벗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전 정부에서 맺은 무리한 군사협정의 구체적인 내용과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어떤 후속 조처를 했는지 등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UAE의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의 최측근 인사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곧 한국을 방문해 이번 UAE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청와대는 이 문제와 관련해 되도록 언급을 피하는 분위기다. 이 사안의 내막이 알려졌을 때 양국의 신뢰가 깨지는 것을 비롯해 기업 등 민간부문에서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외교부 역시 칼둔 행정청장의 방한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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