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노동자는 절대로 짐을 늘리지 않아요.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사는 겁니다. 다만 귀국할 때 입고 갈 제대로 된 양복 한벌쯤은 항상 준비해두고 있죠. 물론 목표로 한 돈을 다 벌어야 돌아갈 수 있지만….”
어느 중세 철학자는 ‘쓸데없이 존재를 늘리지 말라’고 했지만 이주노동자가 짐을 늘리지 않는 건 존재론 같은 철학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지연(31)씨는 “장 모르가 이란 사진집에서 보여준 유럽 이주노동자들의 삶처럼, 이방인으로서 항상 떠날 채비를 하는 게 한국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이런 깨달음은 4년에 걸쳐 그가 외국인노동자들과 부대낀 ‘동거와 사랑’의 결과다.
‘동거’를 위해 그는 ‘성남외국인노동자의 집’ 근처로 사는 집까지 옮겼고, 거기서 전화도 받고 커피를 끓이면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 기록이 사진집 (글 김해성·사진 김지연, 눈빛 펴냄)에 오롯이 담겼다. “지난 98년 성남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운영하는 김해성 목사님의 라디오 인터뷰를 듣고 114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해 찾아간 게 외국인노동자에게 사진기를 들이댄 계기였죠.”
사진집에서는, 한장씩 넘길 때마다 멸시와 차별로 얼룩진 이방인들의 고독이 짙게 배어난다. 그러나 흑백사진들은 고독을 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고독과 침묵을 넘어 그 뒤편의 외침을 ‘읽어내는’ 언어가 되어 살아숨쉬는 것이다. 프레스에 오른손을 잘린 뒤 왼손을 씻겨줄 사람이 없어서 손등을 벽에 문질러 씻었다는 한 중국동포에게서, ‘大恨(대한)민국’이라는 피켓을 든 외국인노동자에게서, 낯선 땅에서 한줌의 재로 강물에 뿌려지는 동료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방글라데시 노동자에게서 그의 사진은 통한의 기록으로 빛난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 핏발선 분노와 팍팍한 노동만 있는 건 아니다. 봉제공장에서 해맑은 얼굴로 서 있는 사진 속의 여성 외국인노동자는 한 사회의 ‘생산’을 담당하는 아름다운 노동자다. 모로코 노동자가 머나먼 고향에 두고온 가족의 빛바랜 사진을 들고 있을 때, 가내공장 앞 뜰에서 반바지 차림의 외국인노동자 대여섯명이 풀꽃처럼 웃고 있을 때, 작은 거울 속에서 이주노동자가 이발하고 있을 때, 허름한 숙소에서 나뒹구는 이불처럼 이주노동자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잠들어 있을 때 그의 사진은 따스한 휴머니즘으로 빛난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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