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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피하며 실리 챙긴 트럼프

북핵 해법 ‘압박’에 우선순위… 군사행동 언급 삼가며

북한 비핵화 전제로 ‘대화’ 가능성 열어둬
등록 2017-11-14 16:30 수정 2020-05-03 04:28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7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북 공조를 재확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7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북 공조를 재확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지키려 했던 것을 지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얻으려 했던 것을 얻었고, 하고자 했던 말을 했다. 어차피 ‘최선’은 불가능했고, ‘차선’도 난망한 일이었다. 그나마 ‘최악’은 피했으니, ‘차악’에서 위안을 얻어야 할까?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세 번째 한-미 정상회담은 지난 6월 말 첫 번째 정상회담과 크게 두 가지에서 차이가 있다. 불과 넉 달여 만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수준이 훨씬 높아졌고, 공공연히 ‘대북 선제공격’이 거론되면서 대화·협상을 위한 외교적 공간이 더욱 옹색해졌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북·미 ‘말전쟁’에 치솟은 긴장감</font></font>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앞줄 왼쪽두 번째)이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수소탄 시험 성공 기념 축하연’에 6차 핵실험 관계자들과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9월10일 보도했다. 북한은 현재 ‘선 평화체제-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앞줄 왼쪽두 번째)이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수소탄 시험 성공 기념 축하연’에 6차 핵실험 관계자들과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9월10일 보도했다. 북한은 현재 ‘선 평화체제-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은 1차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7월3일과 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을 잇따라 시험 발사하고, 미 동부 지역까지 ‘타격권 안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 8월9일엔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이 직접 나서 이른바 ‘괌 포위사격’ 계획을 밝히는 등 대미 위협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실제 북한은 지난 8월29일과 9월15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급 이상으로 평가되는 ‘화성 12형’을 두 차례 시험 발사했다. 특히 2차 발사 때는 불과 보름여 만에 비행거리를 1차 발사 때보다 1천km가량 늘려 약 3700km를 날려보냈다. 당시 북한이 화성 12형을 시험 발사한 장소인 평양 외곽 순안에서 괌까지 거리는 약 3400km다. 북한이 기술적 측면에서 괌을 타격할 수 있다는 능력을 입증해 보인 셈이다.

그사이 미국과 북한은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 ‘꼬마 로켓맨’ 등의 표현과 ‘늙다리 전쟁광’ ‘악의 대통령’ ‘거짓말의 왕초’ 등 원색적인 비난을 주고받으며 ‘말의 전쟁’을 벌였다. 여기에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전략폭격기 B-1B 랜서를 비롯한 미군 첨단 전략자산을 동원한 무력시위까지 맞물리면서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솟았다.

나빠질 대로 나빠진 정세 속에 다가온 정상회담이었다. ‘방어전’으로 치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군사적 옵션’이란 말이 나와선 절대 안 됐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문제로 악화한 한-중 갈등을 풀기 위해 내놓은 ‘3불’(사드 추가 배치·미국 미사일망 방어·한미일 3각 군사동맹화 불추진)과 ‘균형외교’를 강조한 것을 두고 미국과 갈등이 생겨서도 안 됐다. 한반도 정세를 돌려세우기 위한 실낱같은 희망의 끈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정착을 위해 압도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함께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11월7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또 “북한의 도발을 중단시키고 대화로 이끌어내는 게 시급한 과제”라며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진지한 대화에 나설 때까지 최대한 압박과 제재를 한다는 기존 전략을 (두 정상이) 재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이어진 질의응답 때 ‘한반도 평화체제’ 추진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지금은 얘기할 단계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제재와 압박에 집중할 때”라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압박 수위 높인 트럼프의 국회 연설</font></font>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지난 6월 말 미국 워싱턴 정상회담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당시 한-미는 공동성명에서 북핵·미사일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비핵화 협상에 복귀하도록 북한을 외교적·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것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제재는 외교 수단”이라는 점도 명시했다. 1차 정상회담 때 정부가 ‘성과’로 내세웠던 △대북 적대시 정책 부인 △단계적·포괄적 북핵 폐기 추진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 조성에 대한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 인정 등의 내용도 이번엔 언급조차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무대는 11월8일 오전에 이뤄진 국회 연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휴전선’을 메타포로 등장시켜 북한을 맹비난했다. 그는 휴전선을 가리켜 “오늘날 자유로운 자들과 탄압받는 자들을 가르는 선”이라며 “번영은 거기서 끝나고 북한이라는 감옥국가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또 “평화와 전쟁, 품위와 악행, 법과 폭정, 희망과 절망 사이에 그어진 선”이라고도 했다. 휴전선의 남쪽은 ‘자유와 정의, 문명과 성취’로, 그 북쪽은 ‘압제와 파시즘, 탄압과 사악함’으로 규정했다.

선(남)과 악(북)으로 세상을 나누는 종교적 이분법은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네오콘’이 즐겨 쓰던 어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이자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비난한 것을 떠올리게 했다. 북한을 ‘악’으로 규정했으니, 대북정책의 초점도 ‘북핵 문제’가 아니라 ‘북한’ 자체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정권교체론’도 ‘붕괴론’도 거기서 나온다.

실제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대북정책 기조로 제시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온통 ‘압박’에만 집중했다. 그는 “책임 있는 국가들이 힘을 합쳐 북한의 잔혹한 체제를 고립시켜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북한을 지원하거나 받아줘서는 안 된다”며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국가에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격하하고 모든 무역과 기술 관계를 단절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북한 비핵화를 바라보는 한·미 온도차</font></font>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최고 존엄’도 겨냥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북한 독재체제 지도자’로 지칭하며 “당신이 획득하고 있는 무기는 당신을 안전하게 할 것이 아니라 체제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북한은 당신 할아버지가 그리던 낙원이 아니다. 그 누구도 가서는 안 되는 지옥”이라고 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잔혹한 독재자, 폭정, 군사적 컬트 집단, 감옥국가, 지옥’ 등 격한 표현을 숱하게 입에 올렸다. 다만 ‘화염과 분노’ ‘북한 완전 파괴’ 등 군사적 행동을 암시하는 언급은 삼갔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대화’ 가능성도 거론하긴 했다. 하지만 조건부였다.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진 뒤에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당신이 지은 범죄에도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빛과 번영과 평화의 미래를 원한다. 핵 악몽이 가고 아름다운 평화의 약속이 오는 날을 꿈꾼다. …그 출발은 공격을 중지하고, 탄도미사일 개발을 멈추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총체적 비핵화다.”

1차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한 공동 언론 발표에서 “제재와 대화를 활용한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나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북핵 접근은 ‘북핵 동결’을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입구로 삼고, 궁극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를 출구로 명시하는 2단계 해법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와는 차이가 크다. 게다가 북한은 현재 ‘선 평화체제-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이 접점을 찾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남북관계 전문가는 이렇게 진단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북한과는 아예 대화를 안 하겠다는 것이었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북 체제를 부정하고 지도자를 강도 높게 비판·모욕하는 것으로 대북 압박 강화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역으로 북한으로선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재확인한 셈이어서, 이른바 ‘국가 핵무력 완성’에 더욱 박차를 가할 명분을 갖게 됐다.” 북쪽을 바라보는 눈길이 다시 불안해진다.

정인환 정치부 기자 inhwan@hani.co.kr

<font color="#A6CA37">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시 한반도 피해 시나리오</font>


핵 맞대응 땐 사상자 규모 가늠 못해



“참전 군인으로서,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투를 승리로 이끌 전략과 이후의 상황에 대한 대비 없이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건지를….”
미국 연방하원 민주당 소속 테드 루(48·캘리포니아) 의원과 루번 갈레고(37·애리조나) 의원은 지난 9월26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보낸 장문의 질의서에서 이렇게 썼다. 대만계인 루 의원은 공군 장교 출신이며, 라틴계인 갈레고 의원은 해병 병사로 이라크 전장을 누볐다.
두 의원이 질의서를 보낸 지난 9월을 되돌아보자. 북한은 6차 핵실험(3일)에 이어 미군 전략자산이 즐비한 괌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 12형’ 2차 발사 시험(15일)에 성공했다. 이에 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19일)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로켓맨’으로 부르며 “미국과 동맹국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만히 있을 북한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자신 명의로 성명(21일)을 내놓고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를 예고했다. 올 들어서만 ‘4월 위기설’과 ‘8월 위기설’을 헤쳐온 한반도 정세가 일촉즉발의 격랑에 빨려들고 있었다.
위기의 한가운데서 두 의원이 제일 먼저 “미국이 선제공격을 했을 때 북한이 재래식 또는 핵 전력으로 맞대응한다면, 최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에서 각각 사상자는 얼마나 될 것으로 예측하는가”를 물었다. 두 의원은 이어 대북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란 점을 지적하며 △북한의 생화학무기 사용 가능성 △선제공격 이후 남북한·일본에 대한 인도적 지원 계획 △북한이 붕괴할 경우 향후 상황 관리와 체제 이행 계획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선제공격에 반대할 경우 대책 등을 따져 물었다.
미 국방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열흘 전인 지난 10월27일 짤막한 답변서를 제출했다. 마이클 듀몬트 미 합참 전략기획부본부장(해군 소장)이 작성한 답변서는 “사상자 규모를 예측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란 말로 시작된다. 미국의 선제공격에 맞서 북한이 한국과 일본, 괌을 어떤 방식으로 보복 타격할 것인지에는 “지속적으로 평가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대북 군사 대비 태세 등과 관련해선 ‘비공개 브리핑’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하겠다고 했다. 듀몬트 부본부장의 ‘서울’에 대한 언급은 아슬하다.
“서울은 북한의 장사정포와 로켓,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의 수도일 뿐 아니라 서울(수도권)은 가장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다. 약 2500만 명이 이 일대에 살고 있다. 더구나 서울은 비무장지대에서 불과 35마일(약 56㎞) 떨어져 있다. 서울의 이같은 취약성 때문에 북한이 어떤 방식과 강도, 기간으로 공격하느냐에 따라 사상자 규모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국방부가 두 의원에게 답변서를 제출한 날, 미 의회조사국(CRS)도 60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놨다. 의회조사국은 보고서에서 미국의 선제공격에 따른 북한의 보복공격이 벌어진다면, “개전 초기 불과 몇 시간 안에 비무장지대 일대에 배치된 장사정포 등 재래식 무기 공격만으로도 최소한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날 수 있다. 한국에는 현재 미군 장병을 비롯한 미국인이 최소 10만 명, 최대 50만 명가량 거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군사적 충돌이 장기화할 경우, 특히 북한이 핵·생물학·화학 무기를 사용할 때는 군사적 충돌이 장기화할 경우 사상자 규모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며,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괌 등) 미국령 지역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들은 또 “북한과 군사적 충돌이 장기화하면 대규모 미군 병력을 한반도에 전개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군 사상자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여기에 중국이 참전을 결정한다면 사상자 규모가 훨씬 늘어나고, 군사적 충돌이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번져나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방부도 답변서에서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찾아내 확정적으로 파괴하려면 지상군 병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인환 정치부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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