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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차명계좌 과세’ 될까?

과세 둘러싸고 박용진 의원-금융위 공방전…

박 의원 맹공에 금융위 백기 들었지만 실제 과세 여부는 불투명
등록 2017-11-07 13:48 수정 2020-05-03 04:28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08년 삼성 특별검사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이 회장은 특검 수사 뒤 4조5천억원 규모의 차명주식을 실명전환하겠다고 했으나, 실명전환하지 않고 돈만 찾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08년 삼성 특별검사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이 회장은 특검 수사 뒤 4조5천억원 규모의 차명주식을 실명전환하겠다고 했으나, 실명전환하지 않고 돈만 찾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올해 기업·금융정책 관련 국정감사의 핫이슈는 단연 ‘삼성 차명계좌’였다. 2008년 삼성 특별검사 수사로 일단락됐던 삼성 차명계좌가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문제가 된 이유는 뭘까. 이 문제를 공론화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과 함께 사안의 출발부터 종료까지 주요 변곡점들을 짚어봤다.

“지난 5월 말 한 방송사 시사프로가 재벌들의 비자금을 다룬 적이 있다. 재벌들이 집을 리모델링하거나 가구를 사면서 계열사에 비용을 떠넘기거나 비자금으로 보관돼 있던 수표를 썼다는 내용이었다. 자료화면이 (삼성 특검 직후인) 2008년 4월 이학수 당시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이 삼성 경영쇄신안을 발표하는 장면이었는데, ‘(차명계좌는) 이건희 회장 실명으로 전환하게 됩니다’라는 자막이 떴다. 그때 문득 의문이 들더라. 실명 전환하면 절반을 과징금으로 이자·배당수익의 99%를 원천징수하게 되는데 과연 냈을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거짓말로 드러난 실명전환 선언 </font></font>
2008년 삼성 특별검사 수사가 끝난 뒤 이학수 삼성 부회장이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발표는 전국에 생중계됐다(왼쪽). 금융위원회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삼성 차명주식은 실명전환대상이 아니다’라는 답변서. 삼성 차명주식 과세를 다시 이슈화한 계기가 됐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박용진 의원실 제공

2008년 삼성 특별검사 수사가 끝난 뒤 이학수 삼성 부회장이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발표는 전국에 생중계됐다(왼쪽). 금융위원회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삼성 차명주식은 실명전환대상이 아니다’라는 답변서. 삼성 차명주식 과세를 다시 이슈화한 계기가 됐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박용진 의원실 제공

삼성 비자금 문제에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한 박 의원실 쪽 설명이다. 공중파 시사프로그램의 자료화면이 문제제기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박 의원실은 두세 달 뒤인 8월께 참여연대 쪽과 만나 10월에 있을 국정감사 아이템과 관련한 의견을 나눴다. 이때 다시 한번 삼성 차명계좌 건이 언급됐다. 참여연대는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에 있던 비자금에 얼마만큼의 세금이 부과됐는지 금융위원회와 국세청에 여러 차례 질의를 했으나 아무런 답을 주지 않고 뭉개고 있다”며 관련 자료를 구할 수 있겠는지 의원실에 물었다.

박 의원은 일단 금융위에 간단한 질의서를 보냈다. ‘차명계좌임이 밝혀진 경우 금융자산은 실명전환 의무가 발생하는 비실명재산인가, 아닌가’ 금융감독원(금감원)에도 삼성 차명계좌의 실명전환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금융위에서 바로 답변을 보내왔다. “이른바 ‘차명거래에 의한 금융자산이라도, 명의가 금융실명거래 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른 실명이라면 이는 기존 비실명자산에 속하지 아니하여 실명전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대법원의 판결 내용임.”(대법원 1997.4.17. 선고96 3377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간단히 말해 ‘차명계좌도 실제 존재하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된 실명자산이고, 따라서 실명전환 의무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재벌이 차명으로 숨겨놓는 비자금 때문에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는데, 정작 차명계좌는 금융실명제 위반이 아니라는 황당한 답변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금융실명제법 유권해석 논란 </font></font>

금감원에서도 회신이 왔다. 은행을 관할하는 일반은행국에서는 ‘64개 계좌 중 1개가 실명전환되고 63개는 계약해지됐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증권을 담당하는 금융투자국에서는 957개 계좌 가운데 646개가 폐쇄됐고, 311개는 유지는 되고 있지만 잔고가 없거나(54개), 고객예탁금 이용료 등 소액이 입금돼 유지 중이라고 답했다. 결론적으로 명의자가 소유권을 주장한 은행 계좌 1개를 빼고 나머지는 전부 다 이 회장이 찾아갔다. 이는 ‘차명계좌는 실명전환 대상이 아니다’라는 금융위의 유권해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9년 전 국민 앞에서 발표했던 “(차명계좌는) 이건희 회장 실명으로 전환하게 됩니다”라는 선언은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박 의원실은 금융위가 ‘차명계좌도 실명계좌’라는 유권해석의 논거로 제시한 1996년 대법원 판례와 차명계좌 관련 다른 판례들을 비교·분석했다. 박 의원은 그 결과를 갖고 지난 10월16일 금융위 국정감사 현장에서 삼성 차명계좌 문제를 제기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차명계좌를 실명전환하지 않고, 그냥 인출해가 과징금과 고율의 세금을 피했다’는 내용의 이날치 보도를 두고 박 의원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공방을 벌였다.

“, 금융위에서 2008년에 펴낸 것 맞죠? 여기에 차명계좌는 실명전환해야 한다고 돼 있다. 실명전환 때 이자도 추가로 추징하도록 했다. 그런데 왜 (삼성은) 제대로 안 했나? 이명박 시절 금융위가 삼성 맞춤형 특혜를 제공한 것 아닌가? 왜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나?”(박 의원)

“그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 삼성 앞에서 작아지고, 앞잡이 노릇 하고 그런 것 없다. 2008년 은 당시 배포도 안 했고, 적용도 중단했다. 현재 적용하는 것은 2009년에 내려진 대법원 최종 판단이다. 이에 따라 (금융실명제에 따른 차명계좌의 실명전환 의무 여부 등을) 해석·운영하고 있다.”(최 위원장)

국가기관의 유권해석은 공적 구속력이 있는 법령 또는 판례에 바탕을 둬야 한다. 그런데 금융위는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대법원 판결의 보충의견을 근거로 ‘차명계좌는 실명전환 대상이 아니다’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차명계좌도 실명전환 대상이라고 적시한 1998년 대법원 판결을 금융실명제 업무편람에 수록해놓고도 현장에서는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 최 위원장은 “업무편람은 배포를 중단했다”며 2009년에 나온 또 다른 대법원 판례를 들고나와 유권해석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이건희 회장이 차명재산을 인출해간 2008년 이후에 나온 판결을 근거로 당시 유권해석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박 의원으로부터 ‘(나중에 나올 판결을 미리 알고 적용했다니) 금융위가 무당이냐?’는 핀잔을 듣게 된 이유다.

금융위에도 나름 ‘한방’이 있었다. 이날 오후 금융위 실무진이 박 의원을 찾아가 ‘삼성 차명계좌 1021개 가운데 1001개가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1993년 8월 김영삼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에 따라 전격적으로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당사자의 실명이 아닌 계좌는 두 달 이내에 실명전환하도록 하고, 이 기간을 넘기면 과징금과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부터는 당사자 실명을 확인한 뒤에만 계좌를 개설해주도록 했다.

삼성 차명계좌들이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에 개설됐다는 것은, 계좌들이 금융실명제에 따른 실명 확인을 거쳐 개설돼 법적으로는 ‘실명계좌’란 설명이었다. 실명전환 때 부과되는 과징금도 금융실명제 실시 당시 자산가액을 기준으로 매겨지기 때문에 금융실명제 실시 뒤 만들어진 계좌는 부과할 수가 없었다.

박 의원실은 ‘멘붕’에 빠졌다. 삼성 차명계좌 문제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박 의원은 곧 새로운 문제점을 발견했다. ‘차명계좌들이 1993년 이후 만들어졌다면, 차명주식이 이병철 회장에게서 받은 상속재산이라는 특검 발표는 뭔가.’ ‘김용철 변호사는 자기도 모르는 계좌가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이것도 (김 변호사의 실명을 확인한) 실명계좌란 말인가.’ 이날 박 의원은 삼성 차명계좌를 처음 세상에 알렸던 김 변호사와도 오랫동안 통화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박 의원실 맹공에 두 손 든 금융위 </font></font>

박 의원은 이튿날(10월17일)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김 변호사의 사례를 들어 삼성 특검 당시 “도명(이름을 훔친) 계좌를 적발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민병현 부원장보는 이에 대해 “김 변호사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이름으로 계좌가 개설됐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도명) 계좌가 좀 있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금융실명제 실시 뒤 만들어진 계좌라도 전부가 합법 계좌는 아님을 확인한 것이었다. 최흥식 금감원장으로부터도 ‘금융기관이 차명거래임을 알고 행한 거래는 금융실명제법 제5조에 따라 소득세 원천징수세율 90%(주민세 포함 99%)를 징수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냈다. 계좌 개설 시점이 금융실명제 이후라도 일정 조건(금융기관이 차명거래임을 알았을 경우) 아래서는 실명제 위반에 따른 고율의 세금 부과가 가능함을 확인한 것이다.

금융위와 금감원 국정감사가 끝난 뒤 10월30일 열릴 종합국감 때까지는 휴전기였다. 박 의원실은 금융위 논리의 또 다른 허점을 검토했고, 금융위도 담당 부서(은행과) 대다수가 삼성 차명계좌 건과 관련한 논리 개발에 투입돼 ‘진화’에 부심했다. 하지만 불똥은 다른 곳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10월17일 서울지방국세청 국감에서 김종민 의원이 삼성 차명계좌 과세 문제를 질의하자, 김희철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해서 추가 과세할 것이 있으면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틀 뒤 정책조정회의에서 “금융실명제법 도입 취지를 누구보다 엄격히 지키도록 해야 할 금융위가 잘못된 유권해석으로 금융실명제법을 ‘차명거래 촉진법’으로 무력화했다는 지적에 답변해야 한다. 금융위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처럼 일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고 금융위에 경고했다. 우 원내대표는 “국정감사 기간 동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의혹을 파헤치고 국감 이후 결과를 취합해 후속 조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태년 정책위의장도 금융위에 별도 보고를 요구했고, 10월25일 김용범 부위원장과 간부들이 국회를 찾아 직접 보고했다.

청와대도 삼성 차명계좌 과세 문제와 관련해 금융위와 박 의원을 따로 접촉해 내용을 파악하고, 정부에 문제 해결을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타협책’이 마련됐다. 검찰 수사, 금감원 검사,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차명계좌로 확인된 경우에는 비실명자산으로 간주해 원천징수세율을 90%로 과세하기로 했다. 금융위가 사실상 두 손을 든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는 “금융 당국은 사후에 객관적 증거에 의해 확인된 차명계좌는 차등과세 대상이라는 원칙을 유지해왔다. 위원장의 답변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차등과세 대상이 되는 차명계좌를 보다 명확하게 유권해석을 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과오는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지적사항은 수용하는 모양새가 된 셈이다.

박 의원도 이에 동의했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실제 과세가 이뤄질 경우 “바뀐 유권해석에 따른 것이라면 정부 쪽이 법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금융위는 차명계좌 인출 때 문제는 없었는지 금융회사들에 대한 현장 검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런 내용의 타협안은 10월30일 국회 종합국감에서 박 의원과 최 위원장의 질의응답을 통해 공식화됐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금융회사들 “당국 지침 따랐을 뿐”</font></font>

하지만 이 타협안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금융회사들은 당국의 잘못된 유권해석에 근거해 차명계좌에 소득세 등을 원천징수하지 않고 내줬을 뿐인데 뒤늦게 잡도리를 당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집중적으로 개설됐던 우리은행과 삼성증권 쪽은 “매년 금감원 검사와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삼성 차명계좌 건이) 지적된 선례가 없었다” “당시 당국의 지침과 관행대로 일반적으로 업무 처리를 했을 뿐이다”라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박 의원 쪽과 금융위의 ‘밀당’을 거쳐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세는 가능해졌지만 실제 과세가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얼마나 과세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소멸시효 등 법적인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이 과정에서 과거 이 회장이 순순히 차명계좌 재산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줬던 금융 당국과 국세청이 어떤 자세를 취할지도 알 수 없다. 삼성 차명계좌는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다. 끈질긴 관찰이 필요한 이유다.

이순혁 경제부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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