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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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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탈핵’ 진행중

원전 늘리는 국가는 중국·러시아·인도뿐 …

원전 대국 프랑스도 원전 17기 폐쇄 계획 발표
등록 2017-10-11 12:46 수정 2020-05-03 04:28
지난해 4월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원자력위원회 앞에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30년을 맞아 탈핵과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 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탈핵은 세계적 추세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지난해 4월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원자력위원회 앞에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30년을 맞아 탈핵과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 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탈핵은 세계적 추세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탈핵 계획을 발표하고,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둘러싼 공론화 과정이 진행되자 찬반 의견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과 공론화 진행을 두고 원자력 학계, 원자력 산업계, 보수정당들은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지 않은 “성급한 결정”이라고 거세게 비판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해온 전력 정책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가. 단적으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참사를 바로 옆에서 보고도, 우리는 지난 6년간 원전 4기를 더 건설했다. 최근 고리 1호기를 폐로하기로 했지만, 한국은 좁은 국토에서 원전 24기가 가동 중인 전세계 원전 밀집도 1위 나라다. 여기에 머잖아 원전 3기가 추가된다. 이것도 모자라 신고리 5·6호기까지 원전 2기를 더 지어야 하는 걸까.

원전 밀집도 1위, 한국

정부는 그동안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은 물론 원전 주변 지역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의견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밀실에서 소수 관료와 전문가들이 결정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대해도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토지 강제수용이나 행정대집행 등을 통해 원전은 건설됐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보상과 지원금 앞에서 갈등했고 공동체는 파괴되기 일쑤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이런 문제는 계속됐다. 2011년 강원도 삼척과 경북 영덕은 주민 동의 없이 신규 원전 부지로 지정 고시됐다. 지역 주민들은 끈질긴 싸움 끝에 주민투표를 이뤄냈다. 투표 결과 2014년 삼척에선 85%, 2015년 영덕에선 91.7%의 주민이 압도적으로 신규 원전 유치에 반대했다.

신고리 원전 때문에 765kV 초고압 송전탑과 10년째 싸우는 경남 밀양 주민들, 원전 주변에 살았기 때문에 갑상샘암이 발생해 소송 중인 주민 500명, 매일매일 삼중수소 피폭에 시달린 탓에 이주를 요구하며 3년째 농성 중인 경북 경주 월성 원전 나아리 주민들. 지난 정부는 이들의 의사를 반영하기는커녕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을 지역이기주의로 내몰았고, 국가 정책의 반대자로 낙인찍었을 뿐이다.

원자력계와 보수정당들은 ‘성급한 탈핵’이라 말하지만, 삼척·영덕·밀양·경주 등 원전 때문에 고통받아온 지역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뒤늦은 탈핵’이다. 탈핵은 이제라도 안전을 염원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다. 우리 사회가 지역 주민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에 진입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전 지역 주민에겐 ‘뒤늦은 탈핵’

현재 전세계에서 원전을 1기라도 운영 중인 나라는 31개국에 불과하다. 그중 절반 정도는 더 이상 신규 원전을 짓고 있지 않다. 지금 원전을 늘리는 나라는 중국·러시아·인도 정도다. 현재까지 독일·스위스·스웨덴·이탈리아·벨기에·오스트리아·대만 등이 탈핵을 택했고, 한국은 8번째로 탈핵 채택 국가가 되었다.

이미 많은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들도 원전을 축소하는 추세다. 세계 1위 원전 국가 미국은 2016년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원전 발전량을 넘어섰다. 또 현재 20%인 원전 비중을 2050년까지 11%로 줄이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5%로 늘릴 계획이다. 최근 신규 건설 중인 원전 2기를 경제성 문제로 포기하기도 했다.

세계 2위 원전 대국인 프랑스 역시 지난 7월 에너지환경부 장관이 2025년까지 원전 17기를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5년 통과된 ‘에너지전환법’의 이행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원자력발전 비중은 현재 75%에서 2025년 50%로 축소할 계획이다. 세계 3위 원전 대국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54기의 원전이 42기로 축소됐다. 아베 신조 정부는 원전 재가동을 추진 중이지만, 일본 국민의 반대로 현재 5기만 가동 중이다.

원전을 대체하는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바로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다. 많은 사람이 탈핵에 동의하면서도 재생에너지가 과연 원전을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이미 세계는 그렇게 움직이고 한국도 대세를 따라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전세계 에너지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4.5%로 원전 10.7%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이는 잠깐의 수치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원전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재생에너지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세계 재생에너지 투자액은 319조원(2015년 기준)으로 원전 투자액 31조원보다 10배나 많다.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 비용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과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 등은 2022~2025년 원전의 전력 생산 비용이 액화천연가스는 물론 재생에너지보다 더 비싸질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강점은 원전보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를 보면, 과거 원전 전력 비중이 30%일 때 원전 관련 일자리가 3만 개에 불과했지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전력의 30%를 차지한 지금은 관련 일자리가 30만 개나 만들어졌다. 한국은 원전이 전체 전력에서 30%를 차지하지만 관련 일자리는 3만 개에 불과하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2016년 전세계 재생에너지 관련 노동자가 980만 명이고, 2030년에는 약 24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핵쓰레기’ 미래에 떠넘기면 안 돼

원전 사고 발생은 100만분의 1의 확률이라 자랑하지만, 지난 40년간 원전 대형 사고가 세 번 발생했다. 무엇보다 사고가 발생하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처럼 돌이킬 수 없는 막심한 피해를 입는다. 원전을 더 짓는 것은 사고 위험을 가중하는 일이다.

사고가 없더라도 10만 년 동안 독성이 사라지지 않는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 핵연료)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다. 지난 40년간 원전에서 발생한 고준위 핵폐기물은 이제 둘 곳이 없다. 기존 저장 시설은 이미 포화상태다. 전세계에서 지난 50년간 고준위 핵폐기물 최종 처분장을 만들려 연구해왔지만 아직까지 완공한 나라는 없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이 위험한 물질을 원전 안에 임시 보관 중이다.

탈핵으로 가는 길은 어렵다. 분명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탈핵은 지금까지 만들어낸 위험과 핵쓰레기를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해 더 이상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말자.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탈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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