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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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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지원에 더 아픈 '이른둥이'

낮은 출산율에도 이른둥이 출산율 되레 급증…

면역력 약해 각종 질환에 노출됐지만 특수 인큐베이터 등 진단 장비 태부족
등록 2017-08-24 21:02 수정 2020-05-03 04:28
전세계 10명 중 1명이 ‘이른둥이’로 태어난다. 이른둥이는 출생체중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아기를 말한다. 부정적 뉘앙스의 미숙아 대신 이른둥이로 순화해 부르고 있다. 출산율은 급격히 줄어드는 데 반해, 국내 이른둥이 출산율은 계속 증가해왔다. 2004년 2만1749명 수준이던 이른둥이가 2015년 3만408명(6.9%)까지 늘었다. 이른둥이 출산율 증가에 비해 정책 지원은 더디기만 하다. 저출산 대책의 일환이 되는 이른둥이 지원 해법을 취재했다. _편집자
이른둥이들은 신체기관 발달이 더디고 면역 기능이 떨어져 합병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 중인 이른둥이가 인큐베이터에서 잠든 모습. 한겨레

이른둥이들은 신체기관 발달이 더디고 면역 기능이 떨어져 합병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 중인 이른둥이가 인큐베이터에서 잠든 모습. 한겨레

544g.

한 우주를 담기에 너무 적은 무게였다. 23주 5일 만에 세상에 나왔을 때, 지우는 작고 약했다. 이른둥이였다. 힘겹게 태어나 하루하루가 고비였다. 신체 장기가 다 생성되지 못한 채 태어났기 때문이다. 뇌출혈, 미숙아망막증, 심장대동맥개존증, 괴사성 장염, 탈장 진단이 잇따라 내려졌다. 망막이 없던 눈과 제자리를 찾지 못한 장기는 수술받아야 했다. 따스한 엄마 품을 알기도 전, 주삿바늘을 주렁주렁 꽂은 채 신생아중환자실(NICU)에서 4개월 동안 홀로 있었다. 백일도 병상에서 맞았다.

심장·대장 수술에 진단명만 28가지

“태어나고 이틀 만에 겨우 지우를 봤는데 너무 작아서 사람보다는 새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너무 빨갛고 작으니까.” 엄마 김아무개(29)씨는 지우를 낳기 전까지 자신이 이른둥이를 낳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초산 나이로 고위험군에 속하는 30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서 근무하는 일이 잦았던 직업 때문일까. 카지노 딜러로 일하는 김씨는 임신 후반기에 다시 회사에 복직한 뒤 출산했다. 그게 원인이지 않았을까 지우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22주째에 병원에 갔더니 양수가 터졌다고 하더라고요. 22주에 낳으면 생존 확률이 낮다고 해서 일주일 정도 겨우 버티다 23주 만에 낳았어요. 나중에 병원에 가보니 이른둥이가 많더라고요.”

지우는 차라리 다행이다. 25주 6일 만에 790g으로 태어난 윤후는 진단명만 28가지나 됐다. 8개월 입원 동안 눈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대장수술도 받았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복막투석도 받았다. 한 가지 증상을 치료하면 다른 증상이 잇따라 나타났다. 인공호흡기를 떼기까지 6개월 넘게 걸렸다. “지뢰밭을 걷는 것 같았어요. 동맥관개존증(대동맥과 폐동맥 연결 혈관인 동맥관이 출생 직후에도 닫히지 않고 계속 열려 있는 증상)이 발견돼 수술도 했어요.” 엄마 박아무개씨는 2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릿하다.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온 아기를 보면서 출생신고를 한 다음 바로 사망신고를 하게 될까봐 겁이 났어요. 힘들게 아기를 살리는 일이 잘하는 건지, 오히려 아기에게 못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하루에도 몇십 번 고민했죠. 정말 ‘피가 마른다’는 말뜻을 알겠더라고요.” 호흡기를 매단 윤후를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처음 받아 안던 날, 엄마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작디작은 온몸에 주사를 꼽은 채 그 아픈 수술을 견뎌낸 윤후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밖에 해줄 것이 없었다.

이른둥이가 늘고 있다. 줄곧 내리막을 걷는 출산율과 대조적이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은 올해 출생아 수를 36만 명대로 추정했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는 40만 명대를 유지했으나 올해는 심리적 저지선인 40만 명대조차 무너져 사상 첫 30만 명대 출생아 수를 기록할 전망이다. 반면 고령출산과 인공수정 비율은 늘어나 2004년 2만1749명이던 이른둥이는 2015년 현재 3만408명으로 50% 가까이 급증했다. 전체 출생아 수의 6.9%에 달한다.

MRI 촬영 가능한 인큐베이터 2대뿐
독일 의료기기 업체에서 생산한 특수 인큐베이터. 신생아용 특수 코일이 장착돼 인큐베이터 속 아기 그대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할 수 있다. SVOM 제공

독일 의료기기 업체에서 생산한 특수 인큐베이터. 신생아용 특수 코일이 장착돼 인큐베이터 속 아기 그대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할 수 있다. SVOM 제공

학계는 이른둥이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 결혼 연령이 높아져 산모의 노령화와 불임이 늘고 이에 따라 인공수정 등 인공임신술이 증가해 조산이나 쌍둥이 출산 가능성이 커진 결과로 본다. 조인성 전 경기도의사회장(소아과 전문의)은 8월16일 과의 통화에서 “이른둥이 출산율이 느는 것은 결혼연령이 높아진 것과 관련 있다. 초산 연령을 평균 30대 중반으로 보는데 예전보다 10년 정도 늦춰졌다. 학계에서는 35살이 넘으면 조산 위험이 높다고 본다. 이른둥이 증가는 저출산 시대의 한 반영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른둥이는 면역력이 약하고 신체 장기 발달이 미숙해 출생 직후부터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다. 뇌출혈을 앓은 지우의 경우, 뇌 촬영과 이에 따른 처방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른둥이의 특성상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이 쉽지 않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지속적으로 CT 촬영을 하면, 어쩔 수 없이 방사선에 피폭된다. 유아기에 CT를 3~4회 이상 찍었을 때 성인이 되어 갑상샘암에 걸릴 확률이 70% 이상 증가한다는 해외 연구 사례도 있다. 결국 피폭을 피하려고 초음파 검사에 의지해 진단과 처방이 이뤄지는 실정이다. 그러나 초음파 검사는 방사선을 활용한 MRI나 CT에 비해 판독성이 확연히 떨어진다.

이우령 순천향대 교수(소아청소년과)는 “이른둥이는 촬영 자체가 어렵다. 게다가 MRI 장비를 사용하려면 아이를 인큐베이터에서 빼내야 한다. 이때 아기들이 저체온증에 걸릴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그래서 현재는 이른둥이들이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뒤 촬영해 결과를 파악하는 수준이다. 이 교수는 “자석으로 된 MRI 장비 안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특수 인큐베이터가 있지만 국내에 2대만 도입된 걸로 안다”고 말했다.

독일 의료기기 업체에서 생산한 특수 인큐베이터(사진)는 신생아용 특수 코일로 아기를 감싼 뒤 MRI 장비에서 촬영하는 원리다. 기존에는 성인용 코일을 사용해 찍다보니 신생아 신체 사이즈에 맞지 않아 영상 화질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는데 신생아용 코일 개발로 개선된 것이다. 문제는 대당 가격이 7억원대에 이른다는 점이다. 현재 이 장비를 갖춘 곳은 서울대와 전남대병원 2곳뿐이다. 국립대학병원이 아닌 일반 병원에선 정부 지원이 없으면 도입 자체가 어렵다.

진료비 부담률 10%로 줄었지만

이른둥이 진단 장비 도입과 더불어 퇴원 뒤 관리에도 국가가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른둥이들은 퇴원 뒤 1~2년 안에 재입원하는 비율이 다른 아이들보다 2배 이상 높다. 응급실이나 외래진료 이용도 잦은 편이다. 신체기관 발달이 더디고 면역 기능이 떨어져 합병증도 많이 발생한다. 심리적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 전 생애주기에 걸쳐 여러 건강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 추적관찰과 치료가 필수적이다. 그나마 올해 1월1일부터 정부가 36개월 미만 이른둥이의 외래진료비 본인부담률을 10%로 줄였다. 그러나 운동재활이나 집단놀이치료 등 기타 서비스는 여전히 부모가 부담해야 한다.

이른둥이를 둔 가정은 높은 의료비 부담에 휘청인다. 생후 4개월 만에 1.7kg 몸무게로 퇴원을 앞둔 지우는 적어도 3개월 동안은 인공호흡기를 달고 지내야 한다. 호흡기가 미발달된 이른둥이는 반드시 인공호흡기를 착용해야 하지만 한 달 대여료 40만원은 모두 부모 몫이다. “지우를 위해서도 저희를 위해서도 하루빨리 인공호흡기를 떼기 바라죠. 홑벌이 살림에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니까요.” 지우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한 사정은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대한신생아학회가 2016년 6~7월 전국 주요 병원 1007명의 이른둥이 부모를 대상으로 ‘이른둥이 가정의 의료비 부담 및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른둥이 평균 열 가정 중 한 가정(12.6%)은 자녀의 NICU(이른둥이를 위한 집중치료실) 퇴원 후 입원, 진료, 재활, 예방접종 등의 의료비로 1천만원 이상 소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500만∼999만원은 13%, 200만~499만원은 24.9%였다. 이 중 재태기간(임신기간)이 짧은 28주 미만 이른둥이는 1천만원 이상이 21.7%로 다른 이른둥이 가정보다 상대적으로 의료비 부담이 더 컸다. 그밖에 이른둥이 가정은 3인 가정이 44.4%로 가장 많았고, 60.6%는 월평균 소득이 300만원 미만이었다. 퇴원 뒤 의료비 때문에 지인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거나 금융권 대출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가 함께 이른둥이를 돌보다보니 세 가정 가운데 두 가정에서 직장인은 사직 혹은 장기휴직을 했고 자영업자는 폐업했다. 그 결과는 소득 감소였다. 결국 이른둥이를 둔 열 가정 가운데 여섯 가정은 ‘더 이상 아이 낳기를 희망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희망

신생아학회에선 국가가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하면 이른둥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해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일원이 된다고 말했다. 만혼이라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이른둥이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지원은 더딘 수준이다.

괴테, 피카소, 처칠도 이른둥이였다. 이른둥이 권리장전 1장은 “한 인간으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다. 이우령 순천향대 교수는 “저출산·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른둥이의 생존율을 높이는 적극적인 지원 정책과 이들의 성장을 추적관찰하는 정부 차원의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비록 작게 태어났지만 이른둥이는 결코 작지 않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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