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집단 고민을 그대로 드러내는 영화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상식에서 소거돼온 조선인 협력자들을 길게 묘사해 ‘친일영화’라 비판받고, 통쾌한 탈출 과정을 보여주는 ‘전쟁신’으로 민족주의를 고양하는 애국영화, 즉 ‘국뽕영화’라 비판받기도 한다. 류승완 감독은 양 갈래의 비판을 염두에 둔 듯 여러 영화적 장치를 고안해냈다.
협력자와 피해자 사이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그리고 일본제국에 협력했던 조선인 문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배에 고통받은 피해자이자, 제국의 전쟁에 협력한 식민지인이기도 했다. 이 모순된 사실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해방 이후 70년 넘는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도 모호하다. 어떤 때는 제국의 시선이었다가 어떤 때는 피해민족의 시선이라는 양가적 모습을 한 몸에 가지고 있다.
강제동원 문제에 전문 연구자 입장에서 맞닥뜨리는 질문도 그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제국의 언어로 만들어진 ‘공식 사료’와 체현적으로 만들어진 식민지배 기억이라는 또 다른 사료를 엮어 역사를 기술한다. 이는 가 맞닥뜨리고 해결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에 충실했다는 는 제국의 언어로 만들어진 사료와 우리가 체현해낸 기억이라 불리는 사료가 동시에 존재하고 그것을 어떻게 역사화할지 질문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 도입부에서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 하시마 탄광으로 들어오는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의 모습을 길게 비춘다. 그와 함께 하시마 탄광의 여러 임금지급 조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회사는 기숙사를 제공한다. 다만 그 비용은 매월 지급되는 임금에서 공제한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탄광까지 오는 모든 이동경비와 숙박비용을 제공한다. 다만 그 비용은 매월 지급되는 임금에서 공제한다.” “회사는 탄광에서 사용되는 여러 장비들을 지급한다. 다만 그 비용은 매월 지급되는 임금에서 공제한다.”
조선인들이 고생스럽고 무질서하게 섬으로 들어오는 모습과 장비를 들고 무표정하게 지하탄광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길게 비추면서 감독은 하시마 탄광의 계약조건을 배경음성으로 흘린다. 에서 강제동원을 둘러싼 역사적 문제를 가장 잘 표현한 장면으로 꼽고 싶다.
제국주의 대변하는 비틀린 사료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대다수 조선인 노동자들 가운데, 느닷없이 이뤄지는 이런 설명을 이해한 이는 얼마나 됐을까. 실제 일제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의 노무계약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배경음성으로 표현되는 것은 이른바 일본제국이 남긴 공식 사료다. 이를 보면 조선인 강제동원은 노동기간, 노동조건 등을 문서화해 피고용자의 동의를 얻어 이뤄진 합리적 고용계약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양립하기 힘든 우리 기억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계약이 있다. 조선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강제동원은 느닷없이 트럭에 태워져 도착해보니 일본의 어느 탄광 지역이었으며, 작업 현장에서 열악한 식사를 제공받았고, 매일 죽도록 일하는데 임금은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고통의 연속일 뿐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일본의 군이나 관헌이 조선인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사료를 발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제국과 식민지 제도의 비틀린 사료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조선인 강제동원은 1938년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해 이듬해 7월 시행된 국민징용령에 따라 이뤄졌다고 한다. 법과 제도를 통해 강제적이지만 ‘합법적’으로 동원한 것이고, 그 피해 보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해결됐다는 것이다. 이에 근거해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배·보상 요구를 거부했고, 일본 법원도 그 논리로 피해자의 요구를 기각해왔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이 겪은 강제동원 사실은 문서 기록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징용령에 따른 동원은 법적 강제동원이기 때문에 원호(援護)를 통한 국가보상이 약속돼 있었다. 법에 따라 강제동원한 만큼 그로 인한 피동원자의 피해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계약 방식이다. 이에 따라 식민지 조선에서 국민징용령이 시행됐다. 그러나 제도 도입 초기에는 국가와 직접 계약을 맺는 ‘징용’이 아니라 ‘모집’이나 ‘관 알선’의 방식으로 노무자를 동원했다. 모집은 일본 기업의 채용 공고에 조선인 노무자가 응모했다는 ‘자발성’에 근거하고, ‘관 알선은 식민지 국가기구가 일본 기업에 조선인 노동자를 취업할 수 있게 알선한다는 ‘행정 지원’을 전제한다. 모집이든 관 알선이든 실제 근무 형태는 징용과 다르지 않았지만, 계약으로 발생하는 문제의 책임을 회사에 떠넘긴 것이다. 국가가 저지른 전쟁에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 회사가 책임지는 이익 구조를 만들었다. 이 구조에서 조선인은 때로 제국의 일원이 된다. 돈을 벌기 위해 위안부를 동원하는 업자가 되기도 하고, 영화에서 ‘노무계’로 표현되듯 조선인 노동자 관리인이 되기도 한다.
조선인 피해자들은 강제동원의 경험을 회상하며 “모집당해 탕꼬(탄광) 갔었어”라고 말한다. 모집은 기업의 요청에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나서는 행위이기 때문에 ‘모집당하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모집당하다’에 거절할 수 없는 강제동원 사실을 ‘모집’이란 말로 표현하는 제국의 사료에 대해 “우리는 당한 것”이라는 조선인의 저항 의지가 담겨 있다.
‘모집당하다’에 담긴 진실
‘모집당하다’란 형용모순은 단순한 ‘기억 착오’가 아니라, 식민지 제도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낸 ‘사실 언어’다. 의 장점은 두 사료의 차이를 포착해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두 사료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치열한 긴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강제동원 피해는 우리에게 미해결의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한혜인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객원연구원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일본 미야자키현 규모 6.9 지진…난카이 대지진 관련성 조사
법조계 “경호처 지휘부, 윤석열 영장 막다 부상자 나오면 최고 35년”
“윤석열이 칼이라도 들라고…” 경호처 수뇌부, 제보자 색출 혈안
”윤석열 체포 협조하면 선처”…경호처 설득 나선 공수처·경찰
소방청장 “이상민, 계엄 때 한겨레 단전·단수 지시” [영상]
“꺾는 노래는 내 것” 나훈아, 좌우로 너무 꺾어버린 고별 무대
언제까지 들어줄 것인가 [그림판]
“경호처분들 시늉만 하거나, 거부하세요”...가로막힌 법학교수의 외침
[단독] 국힘 의총서 “계엄 자체로 위법인지…” “오죽하면 그랬겠나”
“노조 활동하며 이런 경험 처음”…내란에 분노한 시민들이 힘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