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에서 18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홍자은(32)씨는 정부의 ‘공식’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이 제공하는 미세먼지 수치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앱 ‘에어코리아-우리동네 대기질’을 실행하면 이용자의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측정소 수치가 나온다. 그렇지만 홍씨가 볼 수 있는 수치는 ‘우리 동네’ 홍천군이 아닌 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또는 경기도 가평군 소재 측정소의 수치다. 홍천에는 미세먼지 측정소가 없다.
“춘천은 분지 지형이라 홍천과 다른데 춘천 수치를 보고 믿을 수 없죠. 강원도는 막연하게 공기가 좋겠지 하지만, 홍천만 해도 산 주변에 노란 띠가 보일 때가 있어 수치를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요.” 홍씨가 개인용 측정기로 잰 초미세먼지(PM2.5) 수치는 30㎍/㎥를 넘기 일쑤인데, 세계보건기구(WHO) 환경 기준으로 어린이 같은 민감군에게 유해한 영향을 주는 ‘나쁨’(26~50) 수준에 해당된다.
홍씨는 정확한 미세먼지 측정을 위해 개인용 측정기와 일본 기상청 홈페이지, 전세계 오염 대기 흐름을 보여주는 웹사이트(earth.nullschool.net)까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다. “(웹사이트에서) 홍천 쪽 하늘의 대기오염도 등을 확인하면 개인용 측정기의 정확도를 어느 정도 검증할 수 있어요.” 지난 4월5일 전화 통화에서 홍씨는 “미세먼지 마시는 것은 둘째치고 미세먼지 수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스트레스가 크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강원도 18개 시·군 가운데 정부 공식 앱에 미세먼지 수치를 제공하는 측정소가 설치된 곳은 4개 시·군(춘천, 원주, 동해, 삼척)뿐이다. 강원도 전역에 있는 측정소(7곳)의 절반 이상이 춘천(2곳)과 원주(2곳)에 몰려 있다. 이 분석한 결과, 강원도의 미세먼지 측정소 1곳당 면적(146.1km²)은 서울(15.5km²)의 9.4배에 달했다.
미세먼지 카페는 ‘민간 측정소’지난 4월2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세먼지 대책 촉구 집회를 열어 언론에 집중 보도된 바 있는 네이버 카페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cafe.naver.com/dustout)는 사실상 ‘민간 미세먼지 측정소’나 다름없다. 하루 평균 게시글 1200여 건이 올라오는데 70~80%는 개인용 측정기로 측정한 미세먼지 수치를 공유하는 글이다. 지난해 5월 개설된 이 카페의 회원 수는 4월2일 집회 이후 일주일 사이 3만8천여 명에서 4만6천여 명으로 급속히 늘었다. 이는 미세먼지에 대한 한국인들의 높은 관심과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골머리를 앓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WHO를 비롯한 세계 기준에 견줘 지나치게 낮은 미세먼지 환경 기준을 강화하고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등 적잖은 난제를 안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가 제공하는 기초 데이터 불신까지 생겨 첩첩산중이다.
국민들이 미세먼지 수치를 불신하는 가장 큰 원인은 측정소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은 측정소 1곳당 관할 면적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측정소 부족 현황을 파악해봤다. 지형 차이를 제거하고 17개 시·도를 동등 비교하기 위해 전체 국토 면적 가운데 16%에 해당하는 ‘도시 지역’(1만7613km², 2015년 기준)을 기준으로 삼았다. 측정소는 11종류의 대기오염 측정소 가운데 에어코리아에 미세먼지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도시 대기 측정소 264곳과 도로변 대치 측정소 37곳 등 301곳을 기준으로 했다.
17개 시·도를 동등 비교한 결과, 수도권과 일부 광역시를 제외한 시·도의 측정소 부족 현상이 심각했다. 특히 전남, 충남, 경북, 강원, 제주 등 하위 시·도 5곳 측정소 1곳당 관할 면적은 서울의 7배가 넘었다(표 참조). 전문가들은 대체로 서울의 측정소 배치를 적정하다고 보는데, 서울의 관할 면적(15.5km²)은 구별 평균 1.76곳이 설치돼 있다.
이같은 불균형에 대해 “지방의 경우 자연환경이 서울 등 대도시와 달라 같은 면적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는 통념이 있지만, 이는 대기오염 실상을 간과한 것이다. 지난해 환경부가 최초로 공개한 전국 560개 사업장의 연간 대기오염 물질 배출량 자료를 보면, 가장 많은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한 곳은 충남(12만2473t)으로 전체 배출량(40만3537t)의 30.2%를 차지했다. 그 밖에 대기오염 배출량 상위 5개 시·도에 이름을 올린 경남, 강원, 전남, 충북은 ‘공기 좋다’고 생각하는 지역이었다.
대기질 관련 연구 전문가인 구윤서 안양대 교수(환경에너지공학)는 “도시가 아닌 지역의 경우 측정망이 별로 없다. 특히 강원도나 충남 지역이 그렇다. 지금까지는 인구밀집 지역 위주로 측정소를 많이 설치했는데, 그렇게만 해서는 대기질의 전국적 공간 분포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초미세먼지 수치는 아예 안 믿는다”더 큰 문제는 유해성이 일반 미세먼지(PM10)보다 높은 초미세먼지다. 특히 초미세먼지 측정소가 턱없이 부족해 시민들의 불신을 부채질하고 있다. 2011년 환경 기준 적용 대상 대기오염 물질로 지정된 초미세먼지는 측정소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4년이 지난 2015년에야 환경 기준이 본격 적용됐다. 그러나 4년 동안 측정소는 완비되지 않았다. 초미세먼지 측정소는 191곳으로 일반 미세먼지 264곳에 견줘 여전히 부족하다. 경기도의 경우 일반 미세먼지 측정소가 73곳이지만, 초미세먼지 측정소는 39곳에 불과하다. 측정 수치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도 용인에서 27개월 아이를 키우는 임현정(32)씨는 초미세먼지의 정확한 수치 측정을 위해 정부가 공식 제공하는 초미세먼지 수치 말고도 외국 앱과 ‘중국산’ 개인용 수치기를 동원하고 있다. 임씨는 “에어코리아에서 초미세먼지 수치가 40~50 ㎍/㎥ 정도 뜨면, 일본 앱은 130 정도 나오고, 내 개인 수치기는 100 전후로 왔다 갔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제공하는) 초미세먼지 수치는 아예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WHO는 2013년 일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포괄하는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그렇지만 영·유아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더 큰 공포의 대상은 초미세먼지다. 일반 미세먼지의 경우 아이들이 숨을 쉬는 과정에서 기도에서 걸러지기도 하지만, 일반 미세먼지의 4분의 1 크기인 초미세먼지는 기도에서 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초미세먼지는 아이들의 폐 깊숙한 곳에 도달해 폐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교환되는 틈을 타 혈관에까지 침투할 수 있다. 미국에서 진행된 역학조사 결과를 담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보고서 (2014년)를 보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10㎍/㎥ 증가할 때 사망률이 1.5%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일반 미세먼지 사망 증가율(0.8%)의 2배이다.
최근 를 펴낸 남준희 녹색당 정책자문위원은 “미세먼지 관련 정보가 시·도별 평균 수치로 제공되는데, 호흡하는 순간 피해가 시작되는 미세먼지의 경우 지역 평균 정보는 의미가 없다. 경북 지역 평균이 낮아도 김천이나 경주의 유치원, 어린이집, 학교가 있는 동네의 미세먼지 농도는 높을 수 있다. 정확한 측정이 안 되니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차원에서 미세먼지가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발 미세먼지? 측정소 완비 없이 규명 안 돼시민들의 미세먼지 민감도는 더할 나위 없이 높아졌지만, 측정소 확충 등 정부 차원의 대응은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것으로 보인다. 충남도청 관계자는 “측정소 확충을 위해 2015년까지 지속적으로 국비를 신청했으나 환경부는 전국에 측정소가 너무 많아 더 이상 확충 계획이 없다며 국비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충남에선 2011년까지 미세먼지 배출량이 5천t 안팎이었다가 2012년 갑자기 3만t으로 늘었다. 미세먼지 수치 변화를 제대로 측정할 필요가 생겼지만 측정소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단 1곳도 확충되지 않아 여전히 8곳에 불과하다.
상황이 변한 것은 올해부터다. 충남도청은 국고 6곳, 자체 예산 11곳을 더해 올해만 모두 17곳의 측정소를 확충할 예정이다. 2014~2016년 측정소 확충 실적이 전무했던 전남도청 역시 올해만 측정소 4곳을 추가 설치하고 앞으로는 22개 모든 시·군에 최소 1곳씩 관련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올해 국고 지원을 받아 각 시·도에 설치되는 신설 측정소는 23~24곳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2015년에 수립한 ‘2016~2020 대기오염측정망 운영계획’을 개정해 측정소를 대폭 확충해나갈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과의 통화에서 “기존 계획을 수립하던 2015년과 현재 미세먼지 상황이 달라졌다. 곧 운영계획을 개정해 2018년까지 달성하기로 했던 목표를 올해 안에 달성하려 한다. 추가 설치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각 기초자치단체에 관련 정보를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작업을 마치면 비로소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국의 미세먼지 증가에 끼친 영향을 파악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질 것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최근 중국발 미세먼지 영향이 최대 80%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 자료의 조사 기간은 겨우 5일(3월17~21일)이었다. 그런 자료를 중국에 아무리 들이밀어봐야 소용없다. 전국 지역·오염원별로 미세먼지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에 종합적 정보가 있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아직 그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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