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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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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얘기 말라는 말이 제일 나쁜 말”

2016년 촛불혁명 곳곳에서 활약한 카페맘·동네맘 8명을 만나다

“엄마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생활이 바뀐다는 걸 알고 있다”
등록 2016-12-22 17:29 수정 2020-05-03 04:28
12월14일 송파구 마천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송파맘들. 왼쪽부터 김영경(51), 양선(47), 한선아(41), 임은정(41), 김성숙(33)씨. 마천동에 사는 이들은 한동네에 살고 자녀를 같은 학교에 보내면서 함께 촛불을 들게 됐다고 했다. 김영경씨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이들을 만났다. 카페298 제공

12월14일 송파구 마천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송파맘들. 왼쪽부터 김영경(51), 양선(47), 한선아(41), 임은정(41), 김성숙(33)씨. 마천동에 사는 이들은 한동네에 살고 자녀를 같은 학교에 보내면서 함께 촛불을 들게 됐다고 했다. 김영경씨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이들을 만났다. 카페298 제공

2016년 촛불혁명이 일어나는 거리 곳곳에 엄마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하루 전날인 12월8일 저녁 서울 여의도동 국회 정문으로 통하는 지하철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앞에서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때부터 유명세를 탄 전통의 강호 ‘82쿡’ 엄마들이 초코파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6천여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5번 출구 앞에도 또 다른 엄마들이 있었다. ‘송파 닥치고’라는 스티커를 간판처럼 붙인 3.5t 트럭에 올라 밥버거, 컵라면, 바나나, 커피를 시민들에게 제공한 이들은 30여 명이 교대로 탄핵안 가결이 확정된 12월9일 오후까지 1박2일간 국회 앞을 지켰다. 같은 지역에 사는 엄마들이 육아·생활 정보를 공유하는 ‘맘카페’ 회원들이었다.

이곳에서 밤을 새운 김성숙(33)씨는 기자에게 “카페에서 나왔으니까 우리는 ‘커피트럭’이라고 불렀다”며 웃었다. “국회 앞 집회에 가고 싶었는데 맘카페에서 커피트럭을 하자는 제안을 보고 돈도 내고 직접 참여했어요. 짧은 시간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후원금이 모여서 음식을 넉넉히 준비했어요. 탄핵 가결 소식이 알려지고 남편한테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기분 좋았죠.”

송파구 ‘카페맘’들이 국회 앞 커피트럭에 올랐던 12월8일 저녁, 서울 용산구 효창동 ‘동네맘’들은 ‘효창공원역 동네촛불’을 주도했다. 용산구에 연습실이 있는 동네밴드 ‘돌아오는 삼각지’를 초대 가수로 섭외하고 사회 보는 일까지 모두 동네 엄마 10여 명이 맡았다. 촛불, 플래카드 등 집회 물품 조달 담당 김은희(41)씨는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시위 때는 광화문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 이번에는 아이 반 친구 엄마들, 동네 도서관에 오는 엄마들이랑 우리 동네에서 촛불을 들었다”고 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때 엄마들이 ‘유모차 부대’였다면, 2016년 촛불혁명 엄마들은 ‘카페맘’ ‘동네맘’으로 진화했다. 엄마들은 인터넷 카페나 동네를 기반으로 연대했고, 촛불집회 참여를 넘어 직접행동에 나섰다. 왜 2016년 엄마들은 2008년보다 더 강해졌을까. 이 촛불혁명 거리에서 활동한 카페맘·동네맘 8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세월호’ 정부 대응 목도하고 모인 ‘앵그리맘’

12월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한강진역 근처 카페에서 만난 지역 카페맘 ㄱ(41)씨, ㄴ(40)씨, ㄷ(37)씨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서울 일정이 있을 때마다 떡·빵·과일 등을 챙기는 ‘간식맘’이다. 12월9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회 본회의장에 왔을 때도 150명 분의 간식을 제공했다. 최근 열린 일곱 차례 촛불집회마다 “2시쯤 광화문에 간식을 갖다드리고 집에 와서 밥 차려놓고, 다시 광화문에 나가는” 일을 반복했다. 카페 회원들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으면 동네 마트, 빵집, 떡집을 돌며 간식거리를 사서 세월호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실무’는 지역 카페맘 3명의 몫이었다.

이들은 마치 부업처럼 세월호 유가족에게 간식을 제공한 계기로 2014년 4월16일을 꼽았다. 정부를 비판하는 친구를 ‘빨갱이’라며 불편해했다는 ㄱ씨는 “IPTV를 보며 요가를 따라 하다 뭘 잘못 만져서 ‘전원 구조’ 자막이 뜬 뉴스를 봤다. 다행이다 생각하고 요가를 계속했는데 오후 뉴스를 보니 전원 구조가 오보였다고 하더라. 그 뒤부터 모든 게 망가졌다”고 했다.

ㄴ씨는 “바다가 잔잔해 보여 금방 구할 것 같았다. 어린이집에서 애들 데리고 와보니 전원 구조에 실패한 것을 알았다. 이거 뭐지, 어떻게 하지, 분노가 치밀어올랐다”고 했다. 2008년 촛불시위 때 촛불을 들지 않았다는 ㄷ씨는 “오전에 친구 집에서 ‘전원 구조래’ 하고 TV를 껐다. 애들 데리고 나갔다가 2시쯤 들어와서 TV를 켰다. ‘언니 못 구했대.’ 나도 울고 언니도 울었다. 우리 애들이 옆에서 뛰어다녔다. 그 모든 게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때부터 이들이 속한 맘카페에선 ‘앵그리맘’들이 오프라인 모임을 열었고, 서울 중구 청계광장이나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대면했다.

‘무능한 국가가 내 새끼도 죽일 수 있다’
가족 단위, 동네 단위로 엄마들이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촛불혁명의 거리를 누볐다. 지난 11월12일 제3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엄마와 아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정용일 기자

가족 단위, 동네 단위로 엄마들이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촛불혁명의 거리를 누볐다. 지난 11월12일 제3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엄마와 아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정용일 기자

참사로 희생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또래인 10~20대를 ‘세월호 세대’로 명명해 이들이 공유하는 경험이나 감정의 사회적 분석은 일찍부터 있었다. 반면 ‘내 새끼’가 있는 한국 엄마들이 세월호를 경험하고 공통의 감정과 기억을 갖게 된 사실은 간과돼왔다.

12월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마천동 한 카페에서 동네맘 5명을 만났을 때, 양선(47)씨는 ‘2014년 4월16일을 기억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말보다 먼저 나온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동석한 엄마들도 덩달아 울었다. 양씨는 “아이가 고1이었다. 유가족들이 내 또래였다”고 했다. 그날 이후 동네 주민센터나 복지관 등에서 자원봉사하던 양씨의 활동 내용은 ‘세월호’로 통일됐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금요일에 동네맘들과 세월호 노란 리본을 만들고,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의 생일상을 차리는 친구(경기도 일산 거주)를 돕기도 한다.

김성숙(33)씨는 “2014년 4월16일 TV 방송은 사실상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생중계했다. 내 아이도 이렇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대한민국에 살면서 처음 들었다. 성폭행당해 죽거나 어린이집에서 사고로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세월호를 오늘 일처럼 또렷하게 복기하는 카페맘·동네맘들의 기억은 대체로 ‘구조 실패’에 집중돼 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로부터 2년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엄마들이 떨치지 못하는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무능한 국가가 내 새끼를 죽일 수 있다’는 공포였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엄마들이 낡은 국가의 기득권 세력을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를 요구하는 2016년 촛불혁명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당연하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방해하고 세월호 유가족을 모욕해온 대통령, 정부, 새누리당, 보수 언론은 카페맘·동네맘들의 직접행동을 자극했다. ‘간식맘’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선 것도 2015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를 불법 시위로 규정하고 진압에 나선 정부 탓이었다. 세월호 추모제에서 경찰이 광화문 분향소에 가던 시민들에게 최루액을 살포하고, 집회 참여자 해산 과정에서 유가족이 갈비뼈 네 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이어진 광화문 농성에선 경찰의 포위로 유가족들이 인도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소변 보는 일까지 있었다.

“그때 먹을 게 없으니까 밖에서 빵을 비닐에 담아 유가족한테 던져줬다. 안산에서는 밥을 해올 수 없었다. 그 상황을 보면서 맘카페에 ‘물도 안 들어간다. 먹을 게 없다. 경찰이 소변 보라고 페트병을 던져줬다’고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엄마들이 돈을 모아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여당, 보수 언론, 보수 단체들이 ‘지겹다’ ‘끝났다’고 했지만 2015년 4월부터 지금까지 카페맘들의 후원은 이어졌다. 돌잔치 안 하고 아낀 100만원을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써달라는 카페맘도 적지 않다. 간식맘 3명은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도 다음 간식 지원 대책회의를 했다.

“김성숙씨의 꿈은 국회의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에도 동네맘, 카페맘들은 촛불을 내려놓거나 지금껏 해온 다양한 방식의 직접행동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효창동 동네맘들은 매주 목요일 ‘동네촛불’을 이어간다. 김은희씨는 “15일 동네촛불은 안 하기로 했다. 애들이 독감에 걸려서 엄마들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를 맡은 엄마에게 ‘아쉽다’며 계속 문자가 온다”고 했다.

12월14일 각각 다른 장소에서 만난 맘들은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조종한’ 것으로 지목된 최순실이 아니라 김기춘을, 또는 구조나 시스템을 이야기했다. 간식맘 ㄷ씨는 “박근혜는 최순실의 허수아비가 아니라 진짜 권력들의 허수아비였다. 박근혜가 청와대에 있든 밖에 있든 나라 돌아가는 것은 똑같다. 국정 역사 교과서 강행한다 하고, 철도·가스 민영화하고 계속 엉망진창 돌아가는 것을 보니까 박근혜가 실세가 아니다. 박근혜 없어도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를 걷어내야 한다. 박근혜는 그 구조가 세워놓은 허수아비 가운데 상허수아비다”라고 했다. 송파맘 양선씨도 “시스템이 문제다. 황교안이 대통령이 된 듯 움직이게 만드는 시스템을 계속 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와 종교 얘기는 하지 말자는 것이 제일 나쁜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카페맘·동네맘들의 공통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통해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다”라는 것을 배웠다는 원로 송파맘 김영경(51)씨는 “정치·종교 얘기는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제일 나쁘다. 앞으로 3명 이상 모이면 무조건 정치 얘기만 할 거다. 엄마들한테 정치는 삶의 문제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생활이 바뀐다는 것을 엄마들은 이미 안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등학교 1학년 자녀가 같은 반이라 알게 됐다는 두 송파맘 임은정씨와 김성숙씨는 정치 얘기를 좋아하는 엄마 6명의 모임 이름을 ‘서민당’이라 지었다며 “김성숙씨의 꿈이 국회의원이다. 나는 대변인을 하기로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정치 이야기 ‘금지’하는 카페 많았지만

맘카페에 정치 관련 글을 주로 쓴다는 ㄱ씨는 “정치인들이 백날 이야기해봐야 안 된다. 의외로 맘카페에서 그런 일이 있었냐, 정말 몰랐다, 팩트(사실)를 알게 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ㄴ씨는 “정치·종교 얘기하지 말라는데 굉장히 우스운 말이다. 원래 맘카페에서 정치 얘기를 금지하는 데가 많았다. 요즘 강남 맘카페 등에서 약간씩 제한이 풀리고 있다. 정치 글에 ‘불편하다’ 댓글 달면, ‘님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됐다’는 댓글이 200~300개씩 달린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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