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인 카지노 업체 그랜드코리아레저(GKL)가 외국인 관광객 모집 명목으로 룸살롱에서 지출한 비용이 연간 10억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GKL은 외국인 전용 ‘세븐럭 카지노’를 운영하는 공기업으로 한국관광공사가 전체 지분의 51%를 소유하고 있다.
‘텐프로’ ‘풀살롱’ 등에 연 17억원 사용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GKL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회사는 2015년 17억3천만원, 2016년 1월부터 6월까지 7억7천만원을 유흥업소에서 사용한 것으로 나왔다. 특히 GKL이 이용한 유흥업소 중에는 이른바 ‘텐프로’라는 고급 룸살롱과 ‘풀살롱’ 등 성매매 의심 업체도 여러 곳 포함돼 있다.
2015년 GKL이 유흥업소에서 결제한 횟수는 총 575회, 평균지출액은 301만원이었으며, 2016년 1~6월에는 각각 256회, 302만원 규모였다. 최고 지출액은 2015년 3월 ㅎ업체에서 쓴 780만원이었다. 지출은 대부분 세븐럭 카지노가 위치한 서울 강남과 부산의 유흥업소에서 이뤄졌다.
GKL의 유흥업소 이용과 관련한 의혹은 2012년에도 나왔다. 2012년 국정감사에서 박대출 새누리당 의원은 2010년 8월부터 2년간 세븐럭 카지노를 방문한 외국인 고객이 강남의 유명 룸살롱인 ‘어제오늘내일’(YTT)을 536차례 방문해 11억7천여만원을 사용했다며 ‘성매매 관광’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룸살롱이던 YTT는 당시 성매매 알선과 탈세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었다. 이같은 논란이 이어지자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2012년 12월26일부터 사흘간 GKL을 상대로 특정감사에 나섰다.
하지만 문체부는 감사 결과 보고서에 “유흥업소에서 집행한 법인카드 사용 내역만으로는 국정감사 및 언론 등에서 제기한 불법행위(성매매 알선) 의혹을 확인하기에 한계가 있음. 검찰 수사가 진행 중에 있어 수사 결과에 따라 조치할 사안으로 판단됨”이라고 결론 내렸다. 산하기관의 문제점을 찾아내 시정 조처를 해야 할 의무를 지닌 문체부가 자기 책임을 검찰에 떠넘겨버린 셈이다. 이후 검찰은 YTT를 상대로 수사를 벌였고, 업체의 실소유주 김아무개(56)씨는 성매매 4400여 건을 알선한 죄 등이 인정돼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으나, 이후에도 문체부는 GKL에 별다른 추가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흥업소에서 쓴 마일리지 GKL이 결제GKL이 유흥업소에서 사용한 돈은 ‘콤프’라고 불리는 일종의 마일리지다. 고객이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액수의 일부를 적립해 보존해주는 형식이다. 2015년 GKL이 사용한 콤프 규모는 총 747억6400여만원이다. 같은 해 GKL 매출은 4966억여원으로 전체의 15% 수준이 콤프로 사용된 것이다.
콤프 사용액 가운데는 숙박이 286억8300만원, 운송이 247억9700만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유흥업소 이용이 포함된 식음료 제공에 지출한 금액은 91억6900만원으로 세 번째로 많다. 콤프는 2천만원짜리 롤렉스 시계부터 노트북, 아이패드 등을 선물로 주는 데도 사용된다. 숙박과 이동비, 고가의 선물을 콤프로 제공하는 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성매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유흥업소에서 콤프를 사용하는 건 불법의 소지가 있다.
노웅래 의원실이 변종 룸살롱에서도 콤프 사용이 가능한지 묻자 문체부는 “정상적으로 허가를 받고 운영 중인 유흥주점 영업장에서 콤프 사용은 가능하다”면서도 “변종 유흥주점에서 불법적 행위와 관련한 영업장 및 고객에 대한 콤프 사용 승인은 불가하다고 판단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정식 허가를 받은 상당수 유흥업소에서 불법 성매매 등이 이뤄진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런 답변은 별 의미가 없다.
이와 관련해 GKL 쪽은 “콤프는 고객이 사용하는 것이고 GKL은 대신 결제만 하는 것뿐이다. 사실상 고객의 돈인 셈이다. 유흥업소에서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 해당 업소에서만 콤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어렵고 고객이 요청하는데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어렵다”고 해명했다.
콤프 사용 범위는 문체부 고시인 ‘카지노업 영업준칙’에서 규정하고 있다. 준칙 제52조를 보면 콤프는 고객 운송 및 숙박, 식음료 및 주류 제공, 골프 비용, 물품, 기타 서비스 제공 등의 명목에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유흥업소 등 불법행위가 이어질 우려가 있는 곳에서 콤프 사용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는 상황이다.
문체부 단 한 번도 제대로 감사 안 해이 때문에 고객 유치에 목매야 하는 업체의 도덕성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카지노 업계 관계자는 “유흥업소에서 콤프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제기를 하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불법의 소지를 없애려면 유흥업소 같은 곳에서는 콤프를 아예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물론 이 경우 고객이 줄어드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매매로 연결될 수 있는 유흥업소에서 돈을 쓰는 것은 공기업의 자세를 잃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내에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 16곳과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공기업) 등 총 17곳이 운영 중이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민간기업인 파라다이스(5곳)와 GKL(3곳)이 전체 업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중 유일한 공기업인 GKL은 ‘관광객 유치 증진 및 외화 획득’ ‘카지노 산업 국제 경쟁력 제고’ ‘이익금의 관광인프라 구축’ ‘사회공헌 활동을 통한 사회적 책임 수행’ 등의 설립 목적을 가지고 2006년 서울 삼성동에 개장했다. 설립 취지에 공익적 목적이 포함된 공기업인 셈이다.
노웅래 의원은 “GKL이 외국 고액 도박자들에 대해 과다한 유치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을 넘나들며 공기업의 윤리와 책무를 저버리고 있다”며 “주무 부처인 문체부는 GKL에 대해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기관 감사를 시행하지 않는 등 관리·감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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