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0년간 한국 경제를 떠받치던 조선업이 위기를 맞았다. 부실경영, 방만한 관리감독은 뒤로하고 다시금 노동자의 정리해고만 언급되고 있다.”
영화 러닝타임 98분이 끝날 무렵, 마지막 화면을 채우는 자막이다. ‘왜 지금 이 영화를 보아야 하냐’ ‘왜 다시 한진중공업이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김정근(34) 감독이 내놓는 답이기도 하다. 은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배를 짓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다.
김주익 죽음 뒤, “내가 영상을 만들었다면”‘그림자 섬’(영도·影島)이라고 이름 붙은 곳에서 그림자처럼 살아온 이들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 영화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등진 노동자들의 그림자를 좇는다. 2011년 ‘85호 크레인’에서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등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입을 통해서다.
지금까지 ‘그림자’로만 살아온 노동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먼저 떠난 동료의 삶을, 영도조선소에서 지난 30년간 벌어졌던 싸움을 담담하게, 때론 한을 토해내듯이 구술한다. 회색 작업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앉은 이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거나, 촉촉하게 젖어 있다. 수염 덥수룩한, 야구모자를 눌러쓴 평범한 노동자들에게서 가장 찬란한 순간을 길어낸 건 순전히 감독의 힘이다.
2010년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 계획이 발표된 이후, 김정근 감독은 5년여 동안 ‘그림자’처럼 노동자들의 주변을 맴돌았다. 카메라를 들지 않고 “형님들”과 술도 꽤나 들이켰다. 2014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호평받아 대상을 받았지만, 개봉하기까지는 2년 가까이 더 기다려야 했다. 비용이 문제였다. 최근에는 소셜펀딩으로 영화 배급비 1500만원을 모았다. 500명 가까운 ‘개미’ 후원자들이 힘을 보탰다. 영화는 8월25일 개봉한다. 지난 8월9일 서울 서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김정근 감독을 만났다.
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찍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나.2003년 크레인 고공농성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 장례식에 참석했다. 부산의 시민사회단체 간사를 하면서 깨작깨작 영상을 제작할 때였는데, 어느 날 선배가 (고공농성 관련) 영상을 만들어보라는 거다. 일주일도 안 돼 김주익 지회장이 세상을 떴다. 조선소 독(dock) 바닥에 상복을 입고 앉아 있는 노동자들을 보는데 ‘내가 영상을 만들었다면 뭔가 달라질 단초는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죄책감이 앙금처럼 남았다.
그때부터 혹시 다음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2010년 정리해고가 발표되자 카메라를 들고 달려나갔다. 개인적으로는 공고 자퇴하고 나서 진로를 고민할 때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 중 한 곳이 한진중공업이다. 저기서 돈 벌어 영화 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다.
어떻게 다큐영화 감독이 됐나.아버지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공업고등학교로 전학했다. 선반, 밀링(milling) 배우는 게 적성에 안 맞아서 영화,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학교생활을 견뎠다. 고등학교 3학년 땐 학비도 내지 못할 만큼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결국 퇴학 처리됐다.
자퇴한 뒤 인쇄소에서 잠깐 일할 때, 청년단체에서 다큐멘터리 강좌를 들었는데 그게 너무 재밌었다. 김동원 감독의 을 보고 나서 다큐를 하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다. 시민단체 간사 일은 잠깐이었고, 집안 형편 때문에 다시 5년간 신발 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짧은 영상 만드는 작업은 계속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스스로 영상 편집하는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실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영화도 제작하고. (웃음) 영화를 찍을 때도 ‘나는 감독이고 너는 노동자’라는 구분이 없었기에 형님들이랑 더 막역하게 지냈다.
강서 형을 기억하며감독의 이런 시선은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는 인터뷰 장소인 사진관에 노동자들이 한 명씩 들어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조명과 카메라를 낯설게 쳐다보며 쑥스러워하는 미소 등을 비추면서 시작된다.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찰나다. 김정근 감독은 “지금까지 조명받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라서기 전의 예열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2012년 말, 노동자 11명을 인터뷰했고 이 가운데 5명의 이야기를 주로 따서 썼다. 속내 깊지 않은 이야기는 걸러냈다.
5년간 찍은 영상 분량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인터뷰로 영화를 채웠는데.엄청난 촬영분이 아깝긴 했다. (웃음) 애초 기획은 ‘복직하는 순간의 뒷모습’이었다. 그 뒷모습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복직은 안 되고, 2012년 대선이 끝난 뒤 (최)강서 형이 죽었다. 노조에서는 아무도 그가 죽을지 몰랐다. 농담도 잘하고 강한 사람이었다. 숨지기 이틀 전에도 밤새 일하고 와서 같이 라면 먹으며 소주 한잔 했던 형님이다. 그의 죽음은 영화의 기획과 판을 완전히 뒤바꾸게 했다. 투쟁 현장에서 만날 날선 언어만 내뱉는 노동자 모습이 아니라, 아무도 예상치 못한 동료의 죽음까지 견디고 난 뒤 노동자들의 마음 풍경, 표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인터뷰여야 했다.
인터뷰가 결코 쉽거나 안일한 방식은 아니다. 인터뷰 중간중간 굉장히 촘촘하게 각종 문서, 사진, 영상 자료를 넣어 최대한 그 순간을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인터뷰한 노동자들에겐 영화가 씻김굿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끝부분에 평소 강서 형을 찍었던 영상을 편집해 넣고, 마지막에 ‘강서 형을 기억하며’라고 쓴 이유도 그래서다.
관객에게 영화가 어떻게 보였으면 하나.한진중공업 이야기는 노동자들에겐 회한, 묵시록, 앞으로 닥칠 ‘오래된 미래’다. 조선업 구조조정에 직면한 노동자들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의 근육을 좀 단단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에서 ‘슬리퍼’와 ‘작업화’가 다르지 않다고 했지만, 사무직 노동자에게도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처한 노동 환경을 되짚어볼 기회가 될 거다. 젊은 예비 노동자들에겐 못난 아버지들이 절반의 승리든지, 뼈아픈 패배든지 간에 어떻게 노동 현장을 바꿔왔는지 돌아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
다음은 지하철 노동자앞으로도 계속 노동 다큐영화를 찍을 건가.지난해 9월부터 부산 지하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촬영 중이다. 기관사, 기술직 노동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는 물론이고 ‘무인선’으로 운행되는 지하철 4호선의 기계까지 전부 카메라에 담고 있다. 지하에서 일하는 노동자, 신체 리듬과 규칙이 야간 근무에 맞춰진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는 의미에서 영화 제목은 라고 붙였다.
※김정근 감독 인터뷰 영상<style>.embed-container { position: relative; padding-bottom: 56.25%; height: 0; overflow: hidden; max-width: 100%; } .embed-container iframe, .embed-container object, .embed-container embed { position: absolute; top: 0; left: 0; width: 100%; height: 100%; }</style>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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