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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품은 사회변혁의 힘

제3회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 공동체 복원과 공존 가능성을 탐색하는 젊은 사회적기업가들을 만나다
등록 2016-06-21 14:36 수정 2020-05-03 04:28
6월15일 서울시청에서 ‘청년, 마을에서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열린 제3회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이 끝나고 마련된 ‘백스테이지챗’에서 연사들과 청중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용일 기자

6월15일 서울시청에서 ‘청년, 마을에서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열린 제3회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이 끝나고 마련된 ‘백스테이지챗’에서 연사들과 청중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용일 기자

“동네 사람들이 뭔가 버리기 전에 고스케에게 (가질 건지) 물어보라고 해요. 그럼 저는 항상 ‘예스’라고 하죠.”

일본에서 카페 겸 셰어하우스 ‘가사코’를 운영하는 가토 고스케는 지역 주민과 여행객을 하나로 엮는 사업을 한다. 요코하마에 있는 오래된 주택에 터를 잡고 셰어하우스를 차린 고스케는 전세계 사람들을 연결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이 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2년 동안 일하다가 2011년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했다. 포르투갈에서 일본까지 31개국을 지나왔다. 여행하면서 만난 아이들에게 작은 끈을 나눠줬다. ‘아이들의 연결망’이라는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부정을 긍정으로 전복하는 청년들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연결고리는 여전히 이어졌다. 지난 5년 동안 42개국, 9468명의 어린이와 어른들을 만났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가사코를 차렸다. 요코하마 산을 오르던 중 산기슭에서 지은 지 40년 넘은 주택을 발견했다. 거기에 여행자와 지역 주민이 만나는 공간을 꾸리기로 했다. 야심차게 문을 열었으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었죠. 왜 안 오냐고. 그랬더니 너무 이상해서 못 오겠다더라고요.”

낡고 기이한 분위기의 주택에 사람들은 발 들여놓기를 꺼렸다. 그래서 고스케는 한 달에 한 번 신문을 발간하면서 가사코의 취지와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열리는 모든 이벤트에 참여하며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어색해하는 집 안의 음산한 인테리어를 바꾸기에는 돈과 기술이 없었다.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이 나섰다. 주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가며 사람을 소개해줬다. 가사코는 주민과 여행객이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으며 교류하고, 여행객이 동네 아이들에게 각국의 전통문화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공유 공간’으로 거듭났다.

지난 6월15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청년, 마을에서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열린 제3회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에 연사로 참여한 가토 고스케의 경험담이다.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고 , 네트워킹 스타트업 ‘씨닷’이 공동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제1109호~1113호에 소개된 한국, 인도네시아, 타이, 베트남, 캄보디아, 홍콩, 대만 등의 사회혁신가들을 비롯한 사회적기업가 15명이 나와 마을에서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며 겪은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공유했다. 사회적경제에 관심 있는 시민들의 열기도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비영리단체 활동가, 사회적기업가, 학생 등 600여 명이 참석했다.

모두 4개 세션으로 마련된 이번 포럼은 사회적기업가 정신, 마을에 뛰어든 청년 사회적기업가들의 경험담, 마을 사람들과의 공동사업, 세계의 마을 중심 사회적기업과 아시아의 미래 등의 주제로 진행됐다. 연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을 잇는 큰 힘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사회적기업 협력조직 ‘월드인아시아’ 설립자인 가토 데쓰오는 청년 사회혁신가들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예컨대 고령사회의 사회혁신가들이란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될 수 있어요.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죠.”

지역과 사회적기업가, 함께 살아요

포럼에 참여한 연사와 청중은 마을을 살리고 바꾸는 경험을 나누며 서로에게 영감을 줬다. 하지만 사회적경제가 먼저 자리잡기 시작한 서구에 비해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사회적기업’이라는 단어조차 통용되지 않아 우여곡절이 많았다.

타이에서 공정무역 카페 ‘아카아마 커피’를 운영하는 아유 리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청년이었다. 그가 치앙마이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전기와 인터넷은 물론이고 길마저 제대로 닦여 있지 않던 동네로 들어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도시에 수많은 기회가 있는데 왜 마을로 돌아왔냐”고 핀잔했다.

청년들의 열정은 오랜 세월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의심받았다. 아유는 부모님께 늘 물었다. “주민들이 왜 저를 믿어주지 않을까요.” 부모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마을 사람들을 더 잘살게 해주겠다는) 너 같은 사람들이 이미 많이 방문했어. 외부에서 온 젊은 애를 누가 믿겠니.”

멜리아 위나타는 인도네시아에서 ‘두안얌’을 공동창립해 가임여성들에게 직업을 제공하며 삶을 개선하는 사업을 한다. 멜리아는 일을 시작하기 전 인도네시아 동부 누사가라티무르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뭐가 문제일까요.” 답변을 들으며 깨달은 점은 수많은 비영리단체와 국제단체의 지원이 쏟아지지만 이것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성들을 도우려면 비즈니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들에겐 이미 기술이 있었거든요.” 7개 마을 주민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공예품은 품질이 좋아 호텔 비품 등으로 납품되고 소매점에서도 판매된다.

서울 동대문 창신동에 있는 문화예술 플랫폼 ‘OOO간’(공공공간) 공동대표 홍성재씨는 마을과 함께하는 사회적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찾았다고 했다. “한때 마을 벽화 사업이 붐을 이뤘어요. 그런데 추후 유지·보수 비용이 책정돼 있지 않았죠. (벽화가 완성되고 나면) 사람들이 사진 찍으러 몰려오는데, 거주민들은 오히려 주거 환경이 나빠지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는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가치가 커지는 사업, 서비스, 일감을 통해 결국 산업 자체도 건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4시간 동안 이어진 포럼이 끝나고 서울시 비영리단체(NPO) 지원센터 ‘품’에 마련된 ‘백스테이지챗’에서는 청중과 연사들이 좀더 긴밀한 시간을 가졌다. 나라별로 분류된 테이블에 나눠 앉은 이들은 ‘사회적경제’라는 하나의 화두로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무대 뒤에서도 이어진 청년 관계망

대전에서 온 대학생 박찬송(23)씨가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카페와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교육사업을 펼치는 ‘킨예 인터내셔널’ 멜리나 찬의 강연이 인상 깊었습니다. 포럼을 마치고 용기를 내 얘기를 나눴는데 명함을 주면서 우리는 ‘코워커’이니까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연락 달라며 먼저 제안했어요.” ‘마을’과 ‘사회적경제’라는 열쇳말로 모인 청년들은 이렇게, 허물없이 서로를 협력자라 부르며 좀더 나은 미래를 탐색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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