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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시절 빚내는 청춘

대학생 누적 대출 10조원 코앞… 가계 실질소득 반영한 ‘표준등록금’ 도입해야
등록 2016-03-29 17:54 수정 2020-05-03 04:28

“어머니 오셔서 내 몸 보시면 어떠실까/ 친구들이 지키고 있는 내 차가운 몸 보시면 어떠실까/ 나를 쫓던 전경 형들은 병원을 둘러싸고 있구나/ 차가워지는 내 영혼을….”
1996년 4월10일 연세대생 노수석(당시 20살·법학)씨가 구슬픈 애도사와 함께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서 잠들었다. 앞서 그는 3월29일 서울에서 등록금 인상 저지와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거리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의 과잉 진압에 따른 급성 심장마비로 숨졌다. 폭력적으로 인상되던 대학 등록금이 노씨 같은 대학생들을 거리로 떠밀었다. 사립대생 한 해 등록금이 쌀 37가마 가격에 이르던 때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노수석 이후 20년, 달라진 게 없다</font></font>

정부는 ‘반값 등록금 완성’을 홍보하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여전히 한 해 1천만원 안팎의 고액 등록금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3월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학생들이 ‘선별적 국가장학금 폐지와 실질적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정부는 ‘반값 등록금 완성’을 홍보하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여전히 한 해 1천만원 안팎의 고액 등록금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3월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학생들이 ‘선별적 국가장학금 폐지와 실질적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등록금 500만원 시대’도 이때 시작됐다. 전년 대비 사립대 등록금 인상폭이 최대 25%에 이르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9%였던 해다. 등록금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다시 물가의 몇 배로 등록금이 오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리고 대학은 이 돈으로 배를 불리는 쳇바퀴를 돌았다. 노씨의 죽음 이후 20년이 흘렀다. 상황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대학교육연구소와 함께 1996년 이후 20년간 대학 등록금 문제를 비교해봤다.

지난해 연간 대학 등록금 ‘1천만원 시대’가 열렸다(그림1 참조). 사립대 의학계열 1인당 연간 평균 등록금이 1011만원이었다. 1996년 한 해 500만원대(의학계열 평균 502만원) 등록금이 등장한 뒤, 꼭 20년 만이다. 예체능과 이공계 쪽이 770만~830만원, 상대적으로 등록금이 싼 인문사회계열도 641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대학연구소가 낸 ‘대학생 삶의 비용에 관한 리포트’를 보면, 대학생 한 명이 한 해 주거비와 생활비로 쓰는 돈이 평균 1200만원 정도다. 대학생 둘을 둔 가정이라면, 한 해 4천만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지난해 가구당 평균 처분가능소득인 4297만원(2인 이상 가구 기준)과 견주면, 소득을 모조리 학비에 써야 한다는 계산이다. 처분가능소득이 2천만원대 이하인 소득 3분위(2675만원) 이하 가정은 빚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나마 신분 상승의 밑돌 구실을 했던 대학에서 ‘사다리 걷어차기’가 더 심화되는 것이다.

‘비싼 등록금’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금세 알 수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물가를 고려해 ‘구매력지수’로 환산한 ‘국가별 대학 등록금 순위’를 보면, 한국 사립대학의 한 해 평균 등록금은 8554달러(약 997만원)으로 미국(2만1189달러·약 2471만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그림2 참조).

국내 사립대 학생의 비중은 75%로, 미국(40%)보다 갑절가량 많다. 국공립대학 등록금의 경우, 한국(4773달러)은 미국(8202달러), 일본(5152달러)에 이은 3위였다. 이수연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사립대 비중이 현저하게 높은 한국에서 전체 학생들이 느끼는 등록금 부담은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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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4"><font color="#008ABD">세계 최고 수준 등록금, 정부는 역주행</font></font>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정책은 역주행을 하고 있다. 학비 부담을 줄일 방편인 교육 관련 예산은 더 줄고 있다. 실제로 1996년 교육예산은 15조5천억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64조9천억원)에서 24%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5년이 되자 교육예산은 51조2천억원으로 전체 예산(322조8천억원) 대비 15.9%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 비중은 형편없는 수준이다(그림3 참조). 고등교육에서 정부 부담 비중은 1998년 16.7%였다가, 2012년 들어 29.3%로 증가했다. 나머지는 모두 민간이 부담한다. 정부 부담 비중이 10%포인트가량 올랐다고 하지만, 국제 기준과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 OECD 평균치를 보면, 1998년 정부의 고등교육비 부담 비중이 77.3%에 이르렀다. 2012년에는 69.7%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한국과는 2배 이상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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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도 등록금 문제를 모른 체하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들은 가파르게 오르는 등록금을 이용해 ‘학교 덩치 키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2014년 사립대학 적립금 규모는 8조2천억원에 이른다. 1996년 1조1천억원이던 게 무려 7.4배나 불어났다. 적립금은 대학이 새 건물을 짓거나, 장학·연구 관련 용도로 쓰일 돈을 마련하자는 취지이지만, 용도를 알 수 없는 경우(기타 적립금)도 있다.

게다가 이런 돈을 쓰지 않고 일단 쌓아두자는 식이다. 이화여대, 홍익대, 연세대 등은 적립금으로 5천억원 이상을 비축하고 있다. 특히 홍익대는 1996년 371억원에 불과하던 적립금을 2014년 6943억원(18.7배)까지 불렸다. 적립금의 상당 부분은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충당된다.

정작 학생들의 교육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사립대 전체의 교육 여건 관련 지출 내용을 보면, 1996년 교비에서 교육 관련 기자재 구입비는 5.2%였다. 2014년에는 1.5%로 크게 줄었다. 금액으로 봐도 1996년 2730억원이던 게, 2014년에는 2750억원으로 겨우 2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도서 구입비로 쓴 비용의 비중도 1.4%에서 0.7%로 절반이 떨어져나갔고, 실험실습비는 1.1%에서 변함이 없었다. 그나마 교내 장학금은 5.4%에서 11.4%로 2배가량 늘었다. 대학연구소 쪽은 “장학금의 경우, 정부가 각종 재정지원 사업 평가로 확대를 강제해온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자금 빚’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5년 6월 말 현재 대학생과 대학원생의 누적 학자금 대출액이 9조5623억원에 이른다. 누적 대출자가 150만 명으로, 학생 한 명이 대학에서 지는 평균 빚이 64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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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말 기준, 학자금 대출로 신용유의자가 된 이들이 2만231명, 연체액이 1252억원에 이른다(그림4 참조). 학자금 대출 연체액이 100만원을 넘는 신용유의자가 2만여 명에 이른다. 1천만원 이상 고액 연체자도 3548명(17.6%)이나 된다. 2012~2013년 4만 명을 넘던 신용유의 학자금 대출자들이 2만여 명 줄었다. 2014년 9월 정부가 학자금 대출 장기연체자 가운데 심사를 거쳐 대출 원금의 30~50%를 감면해주는 채무 조정을 한 덕분이다. 남은 금액도 최장 10년까지 분할 상환하도록 했다. 하지만 채무조정을 받은 이들도 여전히 남은 원리금을 갚는 데 허덕이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졸업 뒤 1인당 빚만 평균 ‘640만원’</font></font>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반값 등록금’은 소득분위에 따라 장학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어서 ‘무늬만 반값’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대학 등록금을 ‘월평균 가처분소득’(2012~2014년 평균 약 340만원) 수준으로 정하는 ‘표준등록금 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사립대 등록금은 자연스럽게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국공립대 등록금은 사립대학의 50% 수준으로 정하면 역시 ‘반값 등록금’이 된다는 것이다.

이수연 연구원은 “2017년 기준 예산을 1조7천억원만 더 투입하면, 표준등록금을 통한 전면적인 ‘반값 등록금’을 현실화할 수 있다. 2023년에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지금보다 4천억원 정도만 예산을 추가하면 표준등록금 제도 시행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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