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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해고 어려운 부탁

극우 성향 인터넷 매체와 MBC 경영진의 부적절한 관계… 정권 충성과 노조 탄압을 위해 몸부림친 여론 조작의 흔적들
등록 2016-02-06 15:46 수정 2020-05-03 04:28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선거에서는 여론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여론조사기관이나 언론에서 보도하는 여론은 과연 제대로 민심을 반영한 것일까? 실제 여론이 강력한 권력에 의해 조작될 가능성은 없을까?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는 것일까?




권력과 여론 조작의 유혹

민주주의는 그리스 아테네에 기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공직자를 뽑는 선거가 아테네에서 일반화됐을 것이라고 흔히 추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사실이다. 아테네에선 공직자를 뽑는 과정에 선거보다 추첨을 주로 사용했다. 적절한 자격의 후보들을 추천받은 뒤 무작위로 추첨해서 공직에 임명했다. 아테네에서 선거를 피한 이유는 선거의 귀족주의적 편향성 때문이다. 선거에선 시간과 돈이 많고 인지도까지 높은 귀족이 평민보다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혈연에 의한 신분사회는 폐지됐지만 여전히 귀족적 특권을 누리려는 집단이 많다. 특히 선거가 일반화되면서 언론 매체 등을 장악해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하려는 흐름이 등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히틀러 치하의 괴벨스였다. “거짓말도 자꾸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는 괴벨스의 말은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고, 실제 많은 정치인들이 지금도 실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군사정부 시절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정부가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을 장악한 적이 있다. 박정희·전두환 정부 시절 비판적인 성향의 언론인들을 대량 해직하고, 언론을 북한처럼 정권의 선전·선동 도구로 만들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의 자유는 점차 확산됐다. 정부가 개인 소유의 언론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는 많이 사라졌다. 공영언론의 경우 정부가 사실상 소유권을 갖고 있어서 간접적 통제를 받을 수 있지만, 민주화의 흐름 속에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많이 확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2008년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정권 차원의 언론 장악이 다시 시작됐다. 1차적 대상은 정부가 소유권을 가진 KBS와 MBC, YTN, 연합뉴스 등 공영언론이었다. 기자와 PD, 아나운서 등 구성원들의 저항을 무자비한 탄압으로 억눌렀다.
하지만 언론 장악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은 쉽게 극복하기 어려웠다. 최근 MBC에서 공개된 경영진과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성향 인터넷 매체 간의 녹취록 파문은 바로 이 점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2012년은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 등을 동원한 댓글 사건으로 유명한 해이다. 이명박 정권은 대선을 앞두고 국가 정보기관들을 총동원해 야당을 음해하고 여당을 띄우는 여론 조작에 나섰다. 새누리당도 자체적으로 이른바 ‘십알단’을 만들어 비슷한 공작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MBC에서도 진행됐다.

MBC가 2012년 노조 파업 도중 해고한 최승호 PD(왼쪽)와 박성제 기자(가운데)가 1월26일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입구로 들어가려 하자 경비원들이 제지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MBC가 2012년 노조 파업 도중 해고한 최승호 PD(왼쪽)와 박성제 기자(가운데)가 1월26일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입구로 들어가려 하자 경비원들이 제지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궁지 몰린 경영진 와 접촉

2012년 1월30일 MBC 노조가 공정방송과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뒤 여론은 대체로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언론의 계속된 편파 보도에 분노하던 시민들은 MBC 노조의 파업에 많은 지지를 보냈다.

특히 파업 기간 중 연이어 터져나온 김재철 전 사장의 각종 비리 의혹에 보수 성향 인사들까지 등을 돌렸다. 당시 김 전 사장은 2년 동안 법인카드를 하루 평균 100만원씩 사용했고, 무용수 J씨에게 20억원이 넘는 돈을 몰아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MBC는 여론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급기야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부적절한 시도에 나섰다.

이진숙 당시 MBC 기획조정홍보본부장이 이 작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종군기자로 잘 알려진 이진숙 전 본부장은 김재철 사장 시절 홍보국장에 임명되면서 이른바 “김재철의 입” 노릇을 했다. 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본부장은 2012년 4∼5월께 공훈의 대표를 접촉해 ‘리스크 매니지먼트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에서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MBC 노조를 비방해달라는 내용이다. MBC는 그 대가로 6천만원의 착수금과 함께 2012년 12월까지 매달 2천만원을 제공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김재철 전 MBC 사장이 2015년 2월13일 서울남부지법 법정을 나서는 모습. 연합뉴스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김재철 전 MBC 사장이 2015년 2월13일 서울남부지법 법정을 나서는 모습. 연합뉴스 

이런 내용의 제보를 받은 MBC 노조가 2012년 12월 사실 확인을 요구하자, 공훈의 대표는 MBC와 계약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은 MBC 노조를 비방하지 않아 계약을 중도에 해지했다고 주장했다. 공 대표는 “당시 SNS에서는 노조 쪽 목소리만 나오고 회사 쪽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것도 일종의 불균형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을 전달하려고 했는데, 의견이 잘 안 맞았다”고 진술했다. 자신들은 “MBC가 쓰던 기존 트위터 계정을 쓰려고 했지만, MBC 경영진은 가상 계정을 만들어서 작업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의견을 내고 싶은 데서 자기 목소리를 내야지 가상 계좌를 만드는 건…”이라며 그는 말을 흐렸다.

요컨대 MBC 경영진은 일종의 대포 계정을 만들어서 노조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요구했지만, 공 대표는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 대표는 한 달여 만에 계약을 해지했다. 공 대표는 MBC에서 받은 정확한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월 2천만원에 착수금 6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계약을 해지했다면 착수금만 받은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 쪽에서 인력도 투입했고, 리소스도 투입했다”며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사실상 시인했다.

는 당시 공훈의 대표가 회장을 맡고, 김행 전 기자가 부회장을 맡았다. 배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지시로 2008년 가 주도해 만든 소셜 전문 회사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 쪽과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노조 비방 기사 쓰고 간판프로 출연하고

실제 공훈의 대표는 2012년 10월 대선이 한창이던 때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홍보미디어전략기획단장에 임명된 적이 있다. 김행 전 부회장 역시 “대선 기간 종편 채널에 수시로 출연해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소셜 분석 결과를 발표”했고, 그 공로로 박근혜 정부 첫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진숙 전 본부장은 이외에 여론 조작을 위해 또 다른 창구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와의 계약 해지를 전후한 2012년 5∼6월쯤 라는 낯선 인터넷 매체에서 갑자기 노조를 비방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고, 기사는 등의 인터넷 매체에 함께 게재됐다.

이들의 기사는 당시 MBC 제2노조(속칭 선임자 노조)의 이아무개 위원장을 통해 사내 게시판에 수시로 올려지는 등 사 쪽 관계자들과 이들 매체 간의 공모 흔적이 뚜렷이 나타났다. 2∼3개월 뒤부터는 대표 변희재까지 가세해 트위터 등에 MBC 노조를 종북세력으로 비방하는 글을 자주 올리기 시작했다.

1월25일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과 박한명 편집국장 등 간의 2014년 대화 녹취록에 따르면, 이들의 개입 역시 이진숙 전 본부장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결과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의 박한명은 녹취록에서 다음과 같이 실토했다.

“어느 날 전(원책) (자유기업원) 원장님이 저를 불러갖고 저한테 그러시는 거예요. ‘야, 어저께 이진숙 본부장하고 MBC 사람들 만났다’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그 자료들을 봉투에다가 꽁꽁 싸가지고 이만큼을 주더라고요, 저한테.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 팩트가 다르다, 니가 좀 보고 싸워줬으면 좋겠다’.”

즉 전원책 변호사가 이진숙 전 본부장을 만난 뒤 자신에게 MBC 사보를 한 묶음 주면서 노조를 상대로 한 여론전을 지시했고, 자신은 이후 3년이 넘도록 노조 비방에 몰두해왔다는 것이다.

같은 녹취록에 따르면 박한명은 이후 이진숙 전 본부장은 물론 MBC 제2노조 소속의 이아무개, 최아무개 그리고 박아무개 전 MBC 아카데미 사장 등과 수시로 교류했고, 제3노조 위원장 김아무개로부터는 매주 한 차례씩 MBC 등과 관련된 정보를 받아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진숙 전 본부장은 2014년 초 대전MBC 사장으로 발령이 난다. 당시 MBC 본사 사장에 도전했지만 안광한 현 사장에게 밀린 것이다. 이후 이진숙 전 본부장의 업무는 백종문 현 본부장이 인수인계를 받았다. 백 본부장은 2014년 2월 말 취임 두 달도 안 되어 기자들과 만났다.

흥미로운 것은 박한명이 백 본부장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당장 청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한명은 20여 개 극우 성향의 인터넷 매체 기자가 통틀어 20명 정도라고 밝히면서 자신들은 월급이 없어서 “돈”에 가장 취약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다. 백종문 본부장 역시 이들에게 실질적인 재정적 도움이 되는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응수했다.

이진숙 전 본부장이 와 SNS 댓글 작업에 한 달 2천만원의 계약을 한 점으로 볼 때 실제 MBC가 3년6개월 동안 노조 비방을 꾸준히 해온 등과 어떤 계약을 맺었을 것인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당사자들이 일절 금전관계를 부인하고 있는 만큼 수사기관의 조사를 통해 밝혀질 필요성이 있다.

이들은 또 이 자리에서 프로그램을 꼭 찍어 방송 출연 등의 요구를 대놓고 했다. 노조가 MBC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해본 결과, 박한명은 2014년 11월 백종문 본부장과 만난 지 한 달 뒤인 2014년 12월26일 에 출연해 인터뷰를 진행했고, 다시 두 달 뒤인 2015년 2월10일에는 의 패널로 출연해 토론하기도 했다. 이들의 방송 출연 로비가 성공한 것이 아닌가. 와 홈페이지에는 1월29일 오전 현재까지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광고가 걸려 있다. 방문진은 MBC의 대주주다.
녹취록 파문 이후인 지난 1월27일 노사협의회에서 안광한 MBC 사장은 를 향해 “조그만 손바닥 같은 매체”라며 시답잖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 “손바닥 같은 매체”의 편집국장을 어떻게 이나 의 패널로 출연시키고, 방문진이 그곳에 광고를 줬는지 규명해야 할 것이다.


보다 더 저열하다




MBC와 일베 성향 매체의 결탁은 영화 의 한 장면이다. 공영방송 경영진이 고급 한정식 요릿집에서 부적절한 인사들과 잇따라 만나,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노조를 파괴할 공작을 논한 것이다. 백종문 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다.
“파업에 참여해 회사를 망가뜨린 사람들이 50여 명”인데 “(비판적 성향의) PD는 프로그램 다 배제시켰다”. 경력사원을 뽑으면서 “인사 검증을 한답시고 (출신) 지역도 보고 여러 가지 다 봤”다고도 말했다. 2012년 6월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의 해고 역시 증거가 없지만 노조 파괴를 위한 본보기 차원에서 실시했음을 실토했다. 자신이 정권 차원의 방송 장악에 충성을 다했음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MBC와 일베 성향 매체의 결탁은 영화 보다 수준이 훨씬 저열하다. 한 나라의 여론을 좌우하는 “조국일보”도 아니고, “조그만 손바닥 같은 매체”에 굴복해 공영방송 경영진이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은 차라리 비극에 가깝다. “수준 낮은 사람들”이 청와대를 장악해 “완장을 찬” 결과일 것이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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