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청년들이 처음 나를 만나면 눈을 마주치지 못했어요. 젊은 나이에 귀향, 귀촌을 한다는 것만으로 무언가 실패했거나 뒤처진 사람, 패배자로 비칠 것이란 두려움이 있었던 거죠.”
임경수 박사(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초빙연구위원)는 “도시에서 무한 경쟁에 내몰리던 청년들이 지역으로 오면, 그동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곳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탈출하는 법을 배운다”고 했다.
12월16일 서울 홍익대 입구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제1회 한겨레청춘포럼에서 ‘도시에서 지역으로 탈출’에 성공한 사례들이 이어졌다.
봄엔게스트하우스는 대학 시절을 강원도 춘천에서 보낸 청년들이 ‘동네방네협동조합’을 꾸리고, 시장에 방치된 여인숙을 개조해 만든 것이다. 한 해 4천여 명이 다녀간다. 2만원 정도인 이용료 가운데 3천원은 시장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으로 돌려준다. 상권이 무너지고 슬럼화돼가던 지역이다.
상인들도 청년들에게 반색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버려지다시피 한 공터를 활용해 문화공연, 캠핑, 클럽도 운영했다. 포럼에 참석한 조한솔 ‘동네방네협동조합’ 대표는 “마을 세탁소에 빨랫감을 맡기고, 지역 빵집에서 아침 식사에 필요한 음식을 사려고 한다. 청년 기업과 지역 상권이 연계하는 모델을 확대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논산의 한 치킨집은 매일 낮 청년들이 생산한 농산물, 수제차, 수제비누 등을 직거래하는 장터로 변신한다. 치킨집 사장님이 청년들을 위해 낮 시간 동안 가게를 내줬다. 청년들은 이곳을 장터로 활용하고, 이용료는 지역사회에 내는 기부금으로 대신한다.
논산시가 운영하는 희망마을지원센터에서는 상품으로서 선호도가 낮은 15g 이하 딸기를 지역 청년들이 판매하도록 돕거나, 청년 게스트하우스 운영 등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유재호 지원센터 팀장은 “지역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주거 등 공간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청년들이니까 연애도 하고, 그러러면 문화 공간도 필요하다. 언젠가 아이도 생길 거다. 이런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청년종합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권 대안학교인 금산간디학교에서는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청년문화기획자를 양성한다. 청년들의 아이디어로 강좌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강사나 사업에 참여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박성연 금산간디학교 고등과정 교사는 “간디학교에서 해마다 20명씩 졸업생을 배출하는데, 막상 사회에 나가면 아르바이트 등 착취 구조에 내몰리고 있다. 이들이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충남 홍성 ‘젊은협업농장’처럼 청년들을 중심으로 쌈채소 농장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청년들이 일정한 수입을 얻어가면서, 농업기술을 배우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등을 통해 대학 과정을 밟을 수 있는 일-학습 병행 체제를 갖추고 있다. 젊은 농부 정영환씨는 “2~3년 뒤에는 청년농장이 지역에서 문화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청춘포럼은 귀농·귀촌·귀향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는 청년들과 지역에 만들어진 일자리를 이어주는 ‘청춘스테이션(정거장)’ 사업의 하나로 이 주관한다. 청년들이 만든 기존의 착한 일자리를 ‘청춘 정거장’으로 지정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전국에 청년 일자리 거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임 박사는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는 청년들이 일하며 머물 ‘정거장’을 만들 것이다. 한 달에 1곳을 만들면 1년이면 12곳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 커다란 ‘청년 일자리 노선도’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2회 한겨레청춘포럼은 2016년 1월 말 전북 완주에서 열린다. 포럼은 완주군 삼례읍의 게스트하우스 ‘삼삼오오’를 첫 청춘스테이션으로 지정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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