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10일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에 실린 기사 ‘파리바게뜨 회장 부인이 매년 로열티 40억원 받는 까닭’ 때문이었다. 국내 최대 빵집 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 회장 부인 이미향씨가 상표권 사용료로 매년 40억원을 회사로부터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상표권 사용료? 회사가 자기 상표를 사용하면서 개인에게 사용료를 주는 건 뭐지? ‘본죽’이 떠올랐다. 지난 4월4일 KBS 에서 ‘10년차, 가맹점 사장의 눈물’이 방송되었다. 필자도 인터뷰 과정에서 ‘본죽’ 상표권을 대표이사 김철호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가 회사에 팔면서 106억원을 받은 걸 알게 됐다(당시 필자는 업무상 배임이란 의견을 냈으나 KBS 사내 변호사가 동의하지 않아 결국 방송에서는 빠졌다).
대표 개인이 받아가면서 가맹본부에는 비용‘파리바게뜨’나 ‘본죽’만의 문제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제남 의원실(정의당)에 연락해 프랜차이즈 본사들의 상표 현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가맹사업거래 사이트에 등록된 가맹본부만 3482개이고, 브랜드(상표) 개수도 4288개나 됐다. 일단 가맹점 수를 100개 이상으로 한정해서 특허청으로부터 자료를 받고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의원실은 물론 가맹거래사와 여러 단체 활동가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밤을 새우며 작업한 이도 있었지만 상표 사용료를 부당하게 받는 사례를 다 파악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상표권을 개인 명의로 갖고 있고, 상표료 내역을 공개된 자료로 확인 가능한 경우로 제한했다. 그 결과가 지난 9월9일 발표됐다.
‘프랜차이즈 오너 일가 상표권 장사 사례 공개’란 제목으로 국회 정론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불법 혹은 탈법 의혹이 큰 가맹본부 10개가 공개됐다. 다들 익숙한 브랜드였다. 성공한 사업가로 언론을 탔던 기업인도 많았다. △SPC그룹/파리크라상 △본아이에프(주)/본죽 △(주)탐앤탐스/탐앤탐스 △원앤원(주)/원할머니 △(주)코리아델로스케이디/치킨매니아 △(주)다비치안경체인/다비치 △(주)이바돔/이바돔 △(주)채선당/채선당 △알파(주)/알파, 오피스알파 △(주)못된고양이/못된고양이.
‘본죽’과 ‘파리크라상’은 제법 알려졌으니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탐앤탐스’는 김도균 대표가 법인 설립 뒤 개인 명의로 19건의 상표를 출원했고 최근 8년간 지급수수료 명목으로 324억원을 회사에서 받아갔다. 공정위에 공시된 가맹사업자 정보공개서에 따르면, 탐앤탐스는 가맹점주에게서 연간 960만원의 상표 사용 로열티를 받고 있다(본죽은 1년에 매장 규모에 따라 110만원에서 590만원의 로열티를 받는다). 가맹점 수 353개로 계산하면 1년에 34억원이나 된다. 보쌈·족발로 유명한 ‘원할머니’도 설립자의 사위인 박천희 대표 개인이 법인 설립 전 10건, 법인 설립 뒤 26건의 상표를 출원했고, 2005년부터 145억원의 로열티를 받았다.
가맹사업을 하면서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에게 상표 사용료를 받을 수 있다. 가맹사업이란 게 원래 상표를 점주들에게 사용하게 하고 그 대가를 받는 사업이다. 하지만 대표 개인이 받아가면 안 된다. 법인이 받으면 가맹본부에는 수입이지만, 대표 개인이 받으면 가맹본부에는 거꾸로 비용이 된다. 이 비용은 결국 가맹점주가 떠안거나 일부는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그래서 오너 일가의 ‘상표권 장사’란 소리를 듣는다. 상표권 장사를 목적으로 법인의 상표를 대표 개인 명의로 등록받는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결국 프랜차이즈 법인에는 상표권이 실종된 꼴이 된다.
정보공개서에 개인 이름이 버젓이가맹사업법은 가맹본부가 자신의 상표(법에는 ‘영업표지’라고 표현)를 가맹점주에게 사용하게 하고 그 대가로 가맹금을 받는 계속적 거래관계를 가맹사업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가맹본부는 자기 명의로 상표권을 확보해야 한다. 공정위가 만든 표준계약서에도 “가맹본부는 가맹사업자에게 사용하는 영업표지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이걸 공정위가 교육서비스업·도소매업·외식업 등 분야별로 배포한 게 2010년부터다.
그런데 공정위는 가맹본부가 영업표지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이 없는 줄 알면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앞에서 열거한 ‘원할머니’ ‘탐앤탐스’ 등 10곳의 가맹사업자 정보공개서에는 상표권자가 가맹본부가 아닌 개인으로 버젓이 기재돼 있는데도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2015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가맹본부·가맹점 간 불공정 관행 개선 유도”란 게 있으니, 아직 석 달 남은 하반기에 공정위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특허청도 한몫했다. 상표는 아무나 등록받을(상표를 출원해 등록함) 수 없다. ‘상표를 사용하는 자’라야 한다. 상표법도 그렇게 정하고 있다(제3조 “국내에서 상표를 사용하는 자 또는 사용하고자 하는 자는 자기의 상표를 등록받을 수 있다”). 그런데 특허청은 상표를 등록받으려고 신청한 자가 실제로 상표를 사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최소한 사용할 준비는 하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상표 브로커가 활개를 친다. 남이 쓸 만한 상표를 미리 등록받았다가 비싼 값에 되파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겠다며 특허청은 2012년에 상표 사용 의사 확인제도를 시행한다고 보도자료까지 냈다.
하지만 법인이 사용하는 상표인 줄 뻔히 알면서 개인이 출원을 해도 특허청은 그냥 받아주었다. 가맹사업에 사용하는 상표는 가맹본부가 상표권을 확보해야 하는데 대표이사나 가족 개인이 출원해도 군말 없이 등록해준 것이다.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사용 사실을 입증해야만 상표권 등록을 해주면 된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이렇게 하고 있다. 그럼 우린 왜 못할까?
필자가 보기에 특허청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허청의 주된 수입은 특허나 상표를 출원할 때 받는 수수료와 등록할 때 받는 등록료다. 실제 사용하는 상표만 등록해주면 상표 출원, 등록으로 생기던 특허청 수입이 절반 이상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허청이 내놓은 대안은 최대한 특허청 수입에 영향을 덜 주는 것들이다.
사용해야만 상표권 등록, 왜 안 될까이번 사건은 회사를 개인 사유물로 여기는 삐뚤어진 기업문화, 가맹점주와의 상생은 뒷전인 오너 일가의 사익 추구 행위, 그리고 행정 공백이 빚은 합작품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때문에 등골 빠지는 건 빈곤층으로 전락한 자영업자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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