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도 권리다. 청각장애인에게는 들어보라고 하는 대신 잘 들을 수 있는 보청기가 제공된다. 혹은 수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시각장애인에게도 앞을 보라고 요구하는 대신 점자를 통해 읽을 권리를 준다. 그런데 유독 지적능력에 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에게는 ‘스스로 이해하거나 이해를 시도하지 말 것’이 요구된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의사소통 도구가 제공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의 도구를 제공하는 것도 국가의 의무임이 법에 명시됐다. 올해 11월 시행되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 제10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령과 각종 복지지원 등 중요한 정책 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하여야 한다”고 정했다.
발달장애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복지지원 서비스, 사회보험·공공부조 등 사회서비스를 스스로 신청하려면 해당 법률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발달장애인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쉬운 버전의 발달장애인법’을 제공받는 것이 순서에 맞다.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는 이에 따라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을 제작위원으로 해 직접 책자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이 회의에는 5명의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주명희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 연구원 등 3명의 조력자가 함께 제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발달장애인법을 쉬운 언어로 바꾸기 위해 지금까지 12차례 회의를 거쳤다. 회의는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같은 법 조항에 쓰이는 단어들에 대해 평소 가진 생각을 나누고 어려운 단어를 쉬운 단어로 바꾸고 불필요한 단어를 빼는 방법 등을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예컨대 “발달장애인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신체와 재산에 관한 사항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제3조 1항)을 “발달장애인은 내 몸과 나의 돈, 물건에 대해서 내가 결정할 수 있다”로 바꿔 소개했다.
스스로의 장애에 대해 말하며 자기객관화를 하는 시간도 가졌다. ‘내가 가진 장애’에 대해 당사자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화가 나면 분노 조절이 안 돼서 막 싸우려 들고 제어가 안 돼서 욱하는 것 같아요.” “말이 느린 것하고 간질요. 아무리 친해도 내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참다 참다 폭발하고 욕도 하고 화내기도 해요.” “긴 문장을 말할 때 더듬더듬대는 것, 아는 사람인데 모른 체하는 것, 내가 생각했을 때 옳지 않으면 입력 안 하는 거요.”
그림으로 설명하는 법 조항추상적인 법 조항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지적장애인 김선교(27)씨는 발달장애인법 제10조를 다리 위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그림(사진)으로 표현했다. 주명희 연구원은 “김선교씨가 그린 그림을 보고 제10조의 어려운 문구가 한눈에 이해돼 깜짝 놀랐다. 김선교씨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것 같아 구성원들이 모두 즐거워했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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