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를 쥔 강사는 왈칵 눈물부터 쏟아냈다. 한마디 시작조차 못한 채. 2월27일 금요일 저녁 ‘고통과 마주하기’ 첫 강좌에 나온 최현정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 대표는 오랜 기간 폭력 피해자들의 상처와 마주해온 분이라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회복은 어떻게 가능한지 담담하게 짚어줄 거라 기대했던 차였다. 당혹스러웠다. 청중을 둘러봤다. 붉어진 눈망울, 낮은 흐느낌, 가슴을 움켜잡은 손. 순식간에 밀려든 저 감정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심장이 콩닥거렸다. “어디 가서 강의하듯 트라우마에 대한 지식을 나열하는 게 이 책을 깊이 읽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느껴지는 그대로, 가장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이야기들을 나누어주시겠어요?” 눈물을 추스른 최현정씨의 제안에 청중은 이내 화자가 되어 가슴에 얹힌 바윗덩어리들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겐 유가족들의 마음과 발걸음을 기록하기 위해 함께 뛰어다닌 동료들이 있었고, 인권운동 커뮤니티라는 애도의 공동체가 있었다. 반면 이날 시민들이 뱉어낸 지배적 심성은 외로움이었다. 슬픔과 두려움을 지지받지 못한 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 처음엔 공감했던 이들이 등을 돌려버린 외로움. 서성이다 도망다니다 슬픔을 삼켜왔던 외로움.
“사람들이 당연히 의혹을 가져야 하고 충분히 애도해야 할 것 같은데 외면하고 매도하고 그러니까, 슬퍼도 울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초기에 함께 분노했던 친구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했더니 거부하더라고요. 이제는 사람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구나, 잊고 싶은 거구나….” “책에 담긴 이야기를 혼자서 대면하려니 너무 힘들었어요. 가슴이 뻐근하고 팔꿈치도 저릿하고. 이걸 표현할 수 없고 소통할 수 없다는 게 무섭고. 사람들의 고통이 상상되는 게 무섭고.” “지난해 내내 세월호로부터, 제 감정으로부터 도망 다녔어요. 울음을 계속 참다보니 턱이 아프더군요.”
시간은 당연히도 고르게 흐르지 않았다. 출간 이후 작가들은 이 책을 함께 읽는 게 누구보다도 외로웠을 유가족들을 덜 외롭게 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건넸었다. 그런데 이 자리를 통해 새삼스레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세월호의 시간을, 다른 감정의 역사를 지나왔다는 게 느껴졌다. 책을 한두 장 읽고 쉼 호흡을 하고서야 다시 책을 펴는, 아직 책의 첫 장을 넘기지도 못한 이들도 참 외롭고 무서웠겠구나.
트라우마는 대개 강렬한 두려움, 무력감, 통제의 상실, 자기 붕괴의 위협을 동반한다고 한다. 두려움과 무력감에 휩싸이다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기 통합에 실패하면서 자기 자신도 세상도 믿기 힘들어진다는 것. 그런데 시민들의 외로움 역시 세상과 관계에 대한 불신, 무력감과 연결돼 있었다.
“세월호 사고가 빨리 해결되기를 기대했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니까 너무 두려웠어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침몰하는 것 같고. 무리한 요구도, 부당한 요구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흘러갈까. 9월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전반적인 불신에 휩싸였어요. 사람들이 그냥 벌어진 사건·사고처럼 얘기하니까. 친구들이 제 차에 달린 노란 리본을 뗐으면 좋겠다고 얘기할 때, 관광업을 하는 친척이 장사 안 된다며 노란 리본만 보면 치가 떨린다고 얘기할 때 ‘아, 내가 죽어도 이런 반응이 나오겠구나’ 싶고. 신뢰를 갖고 사람들을 대하기가 힘들어요.” “믿고 따랐던 선생님들이 너넨 고3이니까 동요하지 말라는 얘기를 했을 때 너무 큰 배신감이 느껴졌어요.”
책에서 동생을 잃은 신승아 학생은 거인이 되어 배를 끌어올리는 상상을 자주 한다고 했다. 돌이킬 수 없는 그 순간을 바꾸고 싶은 간절함과 죄책감은 지금도 유가족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죄책감은 유가족만의 것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려고 했는데 하다보니 더 많은 무력감, 죄책감이 들었어요. 우리가 이렇게 해도 그이들이 돌아올 수 없으니까.” 세월호는 유가족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깊은 상흔을 남겼다.
최현정씨는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어떤 위안이 찾아들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다가서는 순간, 그 고통과 마주하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발견하는 위안. 애도와 직면의 방식은 다를지라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라는 공감이 전해주는 위안. 그 위안은 유가족을 향해서도 팔을 뻗었다. “바라보고 싶었던 눈들이 여기에서 나를 봐주었구나, 함께 고통을 느끼고 있구나 싶어서 무서웠던 마음이 약간 가신 듯해요. 유가족들은 세상이 한꺼번에 뒤를 도는 차가움을 느꼈을 텐데 그분들이 이 자리에서 봤던 눈들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위안을 받으셨으면 해요.” 아마도 이런 마음들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책에 실린 길채원 학생 어머니, 허영무씨의 이야기처럼 유가족들이 ‘내가 덜 바보구나, 덜 외롭구나, 덜 억울하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책에서 한 어머님이 도대체 뭘 잊지 않겠다는 거냐는 질문을 던지시는데 그 말씀이 머리를 치더군요. 여러분은 무엇을 기억하고 싶으신가요?” 최현정씨가 던진 마지막 질문 앞에서 소용돌이치던 마음에 선명한 빛이 찾아들었다. 그래, 이 질문 앞에서 도망쳐서는 안 되지.
고통에서 기억으로“진실이 이대로 묻힐까 두려운데, 이 책에 활자로 아로새기듯 적혀 있는 말들이 진실의 기준이 돼줄 거라 믿어요.” “제가 느꼈던 무력감, 죄책감을 잊지 않는 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세월호 유가족의 고통’에서 ‘사람들의 삶 안에 있는 세월호의 고통’으로 관심을 확산하는 것, 서로의 고통을 마주하며 함께 흔들리는 것, 그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연결하는 것. 그 속에 상처를 통합하며 살아갈 힘이 커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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