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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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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균충·지균충· 안성종자·조려대…

서울대·중앙대·한국외대 등 대학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학벌 카스트…

대학 간 서열화 경쟁에서 학교 내 캠퍼스 간 구별짓기를 거쳐

학과 안으로까지 파고들며 ‘차별의 세분화’
등록 2014-07-19 16:22 수정 2020-05-03 04:27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2일 아침 서울 강남구 도곡동 숙명여고 시험장 앞에서 학부모들이 수험장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2일 아침 서울 강남구 도곡동 숙명여고 시험장 앞에서 학부모들이 수험장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ㄱ씨는 서울대 학생이다. 한국 사회 학벌의 꼭짓점이라 불리는 대학에 다닌다. 서울대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그의 부모님은 “전교 1등이 한국 1등이 됐구나”라며 좋아하셨다. 현실은 부모님의 기쁨만큼 찬란하지 않았다.

ㄱ씨는 농어촌 전형으로 서울대에 입학했다. 부모님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그를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의 일부 이용자들은 ‘기균충’이라 불렀다. 농어촌 전형이 포함되는 기회균형선발전형에 ‘벌레 충’(蟲)자를 붙인 말이다. 커뮤니티에선 지역균형선발을 비하한 ‘지균충’이란 말도 사용됐다. 서울대가 대학 서열의 최상위일지라도, 서울대에서 그의 서열은 벌레에 불과했던 셈이다.

<font size="3">지방캠퍼스 졸업장은 쓰레기라 비하</font>

‘어차피 같은 졸업장 받을 거면서 꼴값들 한다’고 불쾌해하면서도 ㄱ씨는 자신이 외국인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보단 낫다고 믿는다. “외국인특별전형은 운 좋게 잘 태어나 해외에서 살다 온 애들이 쉽게 대학 가는 거잖아요. 서류만으로 합격하는데 제가 걔네들보다 수학 점수는 훨씬 높을걸요.”

대학 이름을 놓고 다투던 서열화 경쟁이 학교 내 캠퍼스 간 구별짓기를 거쳐 학과 안으로까지 파고들며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이 문제를 조명한 연세대 학내 언론은 ‘일부의 생각을 일반화했다’는 이유로 동료 학생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학벌 카스트 논란’은 연세대뿐 아니라 대학사회 전반에서 심화되고 있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2011년 한국외국어대와 중앙대는 캠퍼스 간 갈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캠퍼스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한국외국어대 서울캠퍼스 학생들은 비상학생총회를 성사시키며 본관을 점거했다. 당시 학생회장은 삭발까지 했다. 서울캠퍼스 2012학번 학생 ㅇ씨는 친구가 용인캠퍼스 소속이다.

“친구랑 학과가 비슷해요. 커리큘럼이나 교재도 비슷하고 교수님도 겹쳐요. 그런데 통합 얘기를 들은 뒤부턴 정말 친한 친구인데도 학교 얘기는 서로 피하게 되더라고요. 캠퍼스에 따라 입학 성적이 다르잖아요. 사실 좀 싫었죠.”

중앙대 서울캠퍼스 경영학부 학생들도 안성캠퍼스 상경학부와의 통폐합에 반대하며 릴레이 글쓰기 운동을 벌였다. 중앙대 온라인 커뮤니티 ‘중앙인’엔 통합을 비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안성종자’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그 글을 보고 안성캠퍼스에 재학 중인 ㅂ씨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사람을 씨에 비유하는 거잖아요. 비하하는 거죠.”

그 학기 말에는 ‘안성캠퍼스 졸업장은 쓰레기’라는 말도 등장했다. 안성캠퍼스의 한 학생이 “올해 졸업 선물이 뭐죠?”라고 물은 글에 “쓰레기”라는 댓글이 달린 것이다. 안성캠퍼스 학생들을 흑석캠퍼스의 네임브랜드에 기생하는 존재로 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고려대 조치원캠퍼스와 연세대 원주캠퍼스를 각각 ‘조려대’와 ‘원세대’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font size="3">“입학 점수 정말 낮았는데 ‘전과한 주제에’…”</font>

대학생들 사이에서 학교 서열화는 이미 상당한 ‘진도’를 나간 상태다. 대개 ‘입결’(입시결과)을 중심으로 의약학계열·상경계열·공학계열 학생들의 우월감이 높다. 고려대에 재학 중인 ㅁ씨는 “이를테면 ‘인문계는 상경계열 빼고는 한 일이 없다’는 말이나, ‘어문계열은 왜 취미생활을 학과 전공으로 하고 있냐’는 식의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고 했다.

서열이 높다고 인정받는 학과는 전과나 복수전공 경쟁률도 높다. 전과와 복수전공은 대학을 바꾸지 않고 서열을 올리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통한다. 인하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ㅂ씨는 “경영학과 복수전공 커트라인은 항상 4.0점(만점 4.5) 이상을 유지하는 것 같다. 다른 인문사회계열뿐 아니라 공대에서도 종종 온다”고 말했다.

전과에 성공하더라도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는다. 경희대 국제캠퍼스를 막 졸업한 ㅅ씨의 친구는 1학년을 마치자마자 같은 캠퍼스 내 타 학과로 전과했다. “그 친구가 입학할 때 그 학과는 정원 미달이었어요. 게다가 걔는 수시로 들어왔거든요. 입학 점수가 정말 낮았는데, 전과를 하고 나서 이전 학과 친구들을 좀 무시하더라고요. 걔 친구들 사이에서 ‘전과한 주제에’라며 말이 많았어요.”

입학전형에 따른 차별은 체계적이다. 연세대 학생 커뮤니티 ‘세연넷’에서 학생들을 골품제에 비교해 서열화한 글을 학내 언론이 다뤄 논란이 됐다. 고려대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고려대 학생 커뮤니티 ‘고파스’를 가끔 이용한다는 ㅁ씨는 게시판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입결로 서열화하는 글들이 게시판에 꽤 많이 올라와요. 반박 댓글이 달리긴 하지만 심각한 문제죠. 입학전형이 수시인지 정시인지에, 무슨 학과인지, 어느 고등학교 출신인지까지 조건을 걸어 등급화한 것도 있었어요.”

2012년 한 입시 카페에서는 고려대 수시 합격자가 수능성적을 인증해 큰 이슈가 됐다. 외국어 성적이 9등급이었기 때문이다. ‘9등급 받은 학생도 고려대 간다’는 식의 댓글이 잇따랐다. ㅅ씨도 논술을 잘 써서 수시 1학기로 고려대에 입학했다. “수능을 안 보고 들어가니까 정시생들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입시 얘기를 해도 어떤 전형으로 들어왔는지 굳이 밝히지 않았죠.” 서로를 수능점수만으로 가름하고 있는 탓이다.

명지대를 졸업한 ㅎ씨도 “정시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은 농어촌 전형으로 들어온 친구가 학과 등급을 깎아먹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했다. 수능점수에 따라 학과에 대한 기여도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한국 대학사회는 파편화된 개인들이 서로를 꺾고 눌러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이 되고 말았다. 이렇다보니 입시철만 되면 포털 사이트에서 자신의 대학을 검색해보는 학생도 있다. ㅎ씨는 “부끄럽지만 ‘내가 다닌 대학이 비교 대학보다 낫다’는 평을 들어야 검색을 멈추게 된다”며 “일종의 인정투쟁인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학생들은 남과 자신을 끊임없이 맞세우며 비교우위를 찾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font size="3">학벌사회 한가운데에 갇힌 대학생들</font>

이런 캠퍼스 간, 단과대학 간, 학과 간 서열화는 대학본부에서 부추기는 경우가 많다. 입결이나 취업률을 기준으로 학과를 폐지해버리고 갑자기 특성화학과를 신설해 각종 지원을 쏟아붓는 식이다. 중앙대는 지난해 청소년·아동복지·가정복지·비교민속학 등 4개 전공을 선택률이 낮다는 이유로 폐지하고, 올해 산업보안학과를 신설했다. 이 학과는 정시 합격자에 한해 4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한다. 입학 성적이나 취업률이 낮은 학과 학생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대학 기업화에 반대하며 중앙대를 자퇴한 김창인씨는 학벌사회의 한가운데에 갇힌 대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대학은 신분 획득의 도구가 아니라 교육 공동체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대학생이 착해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적·구조적으로 대학의 정치를 복원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박선희 인턴기자 starking0726@naver.com·서지원 인턴기자 iddg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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