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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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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도 법원도 아닌 조선일보의 승리

참여정부 들어선 2003년 이후, 보수언론이 찍고 검찰이 국가보안법

기소하고 무죄 판결 나도 보도하지 않으면서 ‘전교조=종북’ 프레임 강화
등록 2014-07-09 14:24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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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30일치 사설 ‘친북·종북 군 간부 두고 북 위협에 맞설 수 없다’를 읽어보자.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주적으로 미국(34%)을 북한(33%)보다 많이 꼽아 충격을 주었다. 2004년 설문조사에서 주적으로 미국을 꼽은 응답자들은 ‘전교조 교사들에게 그렇게 배웠다’고 답했다.”

‘교사=노동자냐’ ‘초심론’ 이어 ‘종북론’

한민구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정확한 통계를 갖고 있지 않지만 극소수 친북·종북 성향의 군 간부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는 “군의 대북관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10년 전의 이 설문조사를 근거로 들었다. 그리고 “군 내부를 붉게 물”들게 한 검은손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지목했다. 보수언론이 무한 반복하는 ‘전교조=친북·종북’ 프레임이다. 전교조만큼 종북 프레임에 적극 활용된 대상도 없다.

송원재(57) 교사는 1989년 전교조가 창립될 때부터 보수언론의 공격이 집요했다고 말했다. 송 교사는 1981년 난곡중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뒤, 1989년 전교조 설립 당시 해직됐다가 1994년 복직했다. “창립 때는 ‘교사가 왜 노동자냐’ ‘정치운동 그만두고 교육에나 신경 써라’고 했다. 1999년 합법화된 이후에는 ‘초심으로 돌아가라’라는 초심론을 내걸었다. 과거에 그렇게 욕하고선 그때로 돌아가라니. 그다음엔 전교조 통일위원회의 ‘북한 바로 알기’를 두고 친북·종북 활동으로 몰아세웠다. 그렇게 언론이 찍으면 검찰이 교사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한다. 무죄판결이 나지만 그것은 또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전교조=종북’ 프레임은 강화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합당한 근거 없는 논리적 비약도, 왜곡 보도도 서슴지 않는다.


“가 지향하는 엘리트 교육, 입시 경쟁 교육을 가로막는 전교조를 그냥 놔둘 수 없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사설에서 근거로 밝힌 2004년 육군사관생도 설문조사가 대표적이다. 이 설문조사의 원본 출처는 어디일까. 2008년 4월4일치 ‘육군 교장이 기획한 ‘軍대안교과서’’라는 김충배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의 인터뷰 기사였다. 김 전 교장은 “설문지나 설문 결과는 갖고 있지 않다. 전역한 뒤 2005년 육사로 전화를 걸어 응답 수치를 받았다”고 말했다( 2008년 8월8일치). 게다가 “‘앞으로 우리의 주적이 누가 될 것인가’라고 물었는지,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고 물었는지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전언일 뿐, 정확성과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고백이다. 그런데도 전교조를 비판하기 위해 이 설문조사를 보수언론은 8년이나 우려먹고 있다.

가 전교조 ‘죽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03년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라고 전교조 신문 은 분석했다(2004년 10월20일 칼럼). “대부분 악의적인 비방 기사였다. 사설까지 동원해서 ‘전교조’ 이름을 불러가며 욕설을 퍼붓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찍힌 뒤 뒤틀린 교사의 운명

‘전교조는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가르쳐왔다’(2005년 11월9일치)가 그랬다. “전교조는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읽히는 동화 자료에 ‘빨치산이었던 춘자네 아버지는 경찰에 끌려가 죽고, 송서방 아저씨는 인민군 부역자라고 해서 너무 많이 두들겨맞아 미쳐서 발가벗은 채 온 동네를 뛰어다니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얘기까지 실어놓았다.” 전교조의 편향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 끌어온 사례는 의 책 서문이었다. 유명 동화작가인 권정생 선생이 쓴 는 문화관광부(1984년), 국립중앙도서관(1989년)이 선정한 추천도서로, 도 권장도서로 꼽은 바 있다. 이 책을 원작으로 방송 드라마가 만들어졌고 가족이 함께 보는 연극도 있었다. 하지만 전교조가 이 책을 공동수업안으로 활용하는 순간, ‘종북’의 증거로 둔갑해버렸다. 전교조가 정정보도를 요구하며 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자 는 “에서 발췌한 내용임”을 뒤늦게 밝혔다.

가 한번 찍으면 교사의 운명은 뒤틀린다. 2006년 12월 초 는 김형근씨에 관한 큼지막한 비판 기사를 실었다. 북한을 찬양하는 빨치산 행사에 학생을 데리고 동참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전북 임실 관촌중에 재직하던 2005년 5월28일, 전북 순창군 화문산에서 열린 ‘남녘통일 애국열사 추모제’에 학생과 학부모 180여 명과 함께 참여했다. 행사 참여 1년6개월 만에 나온 보도에 검찰은 그의 집과 학교를 압수수색했다. 2008년 1월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2010년 2월17일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자유민주주의 정통성을 해칠 만한 실질적 해악성이 없다.” 2심도 그랬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었다.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응·가세한다는 의사를 외부에 표시한 경우에 충분히 해당한다.” 결국 김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전교조에 종북 딱지 붙이기에 대해 허위 사실이며 명예훼손이라고 분명히 밝혔지만 보수언론은 꿈쩍하지 않는다.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등은 2009년 전교조 교사의 일제고사 거부 논란이 있자 현수막을 내걸었다. “김정일이 이뻐하는 주체사상 세뇌하는 종북집단 전교조, 북한에서 월급 받아라!” 법원은 “전교조 등이 주체사상을 교육하고 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 허위 사실이다. 정당한 비판의 수준을 넘은 모멸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이라며 전교조에 2천만원, 전교조 교사들에게 2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보수언론 등은 여전히 전교조를 ‘종북 좌파세력’이라고 일컫는다.

포기할 수 없는 ‘꽃놀이패’

왜 전교조를 그토록 증오할까.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교육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 지향하는 엘리트 교육, 입시 경쟁 교육을 가로막는 전교조를 그냥 놔둘 수 없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등 보수세력이 취했던 ‘두 국민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념을 동원해 나라를 둘로 나누고, 그 절반의 지지에 기반해 나라를 통치하는 전략을 영국의 정치이론가 밥 제솝은 ‘두 국민 전략’이라고 불렀다.”(김호기 연세대 교수 페이스북 글) ‘내부의 적’을 공격함으로써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6·4 지방선거 다음날 가 ‘여도 야도 아닌 전교조의 압승’이라는 제목을 뽑은 이유다. 전교조에 종북 딱지 붙이기는 포기할 수 없는 ‘꽃놀이패’인 셈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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