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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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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의 반란’ 하늘에서 아빠도 함께할 거야

고 권문석씨가 못다 이룬 꿈 이어 알바연대·노조 홍보팀장으로

일하는 아내 강서희씨, 남편 1주기에 22개월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 2014-06-10 17:05 수정 2020-05-03 04:27
2013년 6월2일, 알바노동자들의 대변인으로 살아온 젊은 사회운동가가 세상을 떠났다. 서른다섯. 심장이 멎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리는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활동에 앞장서며 과로했던 탓이다. 고 권문석. 세상에는 아내와 돌도 되지 않은 딸이 남았다. 아내는 남편의 꿈을 잇기로 했다. 눈물을 멈추고 행복해지기로 했다. 그래서 지난해 겨울 알바연대로 일자리를 옮겼다. 알바노조는 유쾌하면서도 급진적인 여러 활동을 펼치며 새로운 노동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 권문석씨의 1주기를 맞아, 아내 강서희씨가 22개월 된 딸 도연이에게 쓴 편지를 싣는다. _편집자


도연이에게

아빠 ‘권문석’이 세상을 뜬 지 1년이 됐네. 엄마는 오늘 너에게 ‘아빠가 했던, 그리고 엄마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 사회운동가로 살아온 네 아빠는 언제나 “풍요롭지는 않지만 행복한 삶을 살자”고 말해왔단다. 사회당 기본소득위원장,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진보신당 정책위원, 알바연대 대변인…. 아빠가 맡았던 일이 참 많았구나.

135명이던 조합원 수는 어느덧 300명

아빠가 마지막으로 도연이와 함께 한 건 목욕이었어. 아빠는 침대에 엎드려 목욕한 너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았지. 그날 밤 엄마가 너와 함께 방에서 잠든 사이에, 혼자 TV를 보던 아빠의 심장이 갑자기 멈췄어. 새벽에 엄마가 울면서 119에 전화하는 소리에 네가 깨어 기어나왔지. 그러고는 누워 있는 아빠에게 “아빠”라고 불렀어. 엄마는 아직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

지난 6월1일 서울 종각에서 열린 ‘고 권문석 1주기 추모제’ 행사에서 권문석씨의 딸 도연이가 전시된 아빠의 사진을 만지고 있다(위쪽).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최저임금 1만원을 꼭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알바노조 제공

지난 6월1일 서울 종각에서 열린 ‘고 권문석 1주기 추모제’ 행사에서 권문석씨의 딸 도연이가 전시된 아빠의 사진을 만지고 있다(위쪽).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최저임금 1만원을 꼭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알바노조 제공

지난여름에 아빠의 49재를 지내면서 엄마는 참 많이 울었어. 돌도 안 된 네가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고 따라 울어서, 엄마는 울음을 멈추기로 했어. 대신 “행복하자”라는 아빠의 말대로 도연이와 행복하게 지내기로 했지. 기어다니던 너는 이제 말을 시작했고,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율동을 할 만큼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구나.

도연아, 엄마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아빠가 일했던 ‘알바연대’로 이직했단다. 아빠와 함께 일했던 구교현 삼촌(알바노조 위원장)이 엄마에게 이직을 권했어. 엄마는 아빠가 쓰고 싶었던 알바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될까 해서 흔쾌히 같이 일하기로 했어. 기자로, 출판디자이너로 일했던 엄마는 지금 알바노조와 알바연대 홍보팀장으로 일하고 있단다.

아빠는 “최저임금 1만원 캠페인을 하면서 만난 알바들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려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말하곤 했지. 엄마가 알바노조 일을 시작한 2013년 11월 알바노조의 첫 총회가 열렸어. 5월1일 첫 ‘알바데이’를 마치고 상기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던 아빠의 모습이 생각나더구나. 총회 때 135명이던 조합원 수는 어느덧 300명이 넘었어. 알바노동자가 전국에 500만 명이라니, 300명이면 0.01%도 안 되지만 꾸준히 온·오프라인 상담이 들어오는 걸 보면 알바노동자 문제가 정말 심각하구나 싶다.

아빠가 사람들에게 보여준 마지막 모습은 2013년 6월1일 알바연대 회원들을 상대로 한 강의였어. 이 강의에서 아빠는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이 7년째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 논리에 대한 반박글을 적어 제출하라”는 숙제를 남겼지. 아빠 후배인 박정훈 삼촌은 그 숙제에 대한 긴 답으로 얼마 전 이라는 책을 펴냈어. 표지에는 ‘권문석 기획’이라고 쓰여 있네. 아빠는 강의하러 가기 전날이면 늘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인 경제학 책을 읽곤 했단다. 재미나게 강의하고 싶었나봐. 그래서인지 은 고등학생이 봐도 이해하기 쉬운 글로 쓰여 있단다. 알바연대와 알바노조 1년간의 활동도 담겨 있어.

안산 공장 아줌마 시급이 5천원이래

블로거 ‘반달토끼’는 에 대한 만화 서평에서 “최저임금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일했던 경험,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 업무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사전 예고 없이 잘렸던 경험 등이 있기에 알바연대의 노력과 성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어. 그만큼 알바연대와 알바노조가 기존 노동조합이 하지 않던, 알바 노동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를 잘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우린 올해도 알바노동자 실태조사를 하고, 노동절에 ‘알바데이’ 집회를 열었어. 5월15일에는 ‘세계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날’ 행사를 서울 신촌 맥도널드 앞에서 열기도 했지. ‘고개 숙인’ 맥도널드 마스코트 분장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어. 6·4 지방선거에는 알바노조 활동가들이 ‘알바도 존중받는 서울’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서울시의원에 출마하기도 했단다. 알바상담소를 열었으니, 알바 상담·교육을 앞으로 더 체계적으로 진행할 계획이야.

6월이 되었으니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운동’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거야. 최저임금위원회가 6월 말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해야 하는데, 위원회가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거리가 멀어져 우리가 활동하는 게 예전보다 조금 어렵지 않을까 걱정도 되는구나. 지난해처럼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긴 힘들겠지만, 우린 지난해처럼 거리를 ‘유쾌하게’ 활보할 거야.

엄마는 지난주 경기도 안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40대 아주머니를 만났어. 그 아주머니는 시간당 5천원을 받는다고 하더라. 노동자가 주부라는 점, 일하는 시간을 아이 일정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무기로 삼아서 회사 쪽은 올해 최저임금인 5210원도 주지 않고 있더라. 야간수당·연장수당도 없이 무조건 시급 5천원이래. 하루 8시간 꼬박 일해도 월 90만원 남짓 받으니, 저축은 꿈도 못 꾼다 하더라고. 그저 최저임금만 받아도 좋겠다는 그 아주머니를 보면서, 엄마는 ‘최저임금 1만원’을 세상에 더 열심히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

“지금 당장 이뤄져야 할 최저임금 1만원”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깨고 새로운 사회를 기획하고 싶다. 알바연대가, 아니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이, 지금 당장 이뤄져야 할 최저임금 1만원이 새로운 사회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아빠가 첫 ‘알바데이’에 펴낸 작은 책자에 적었던 글이야. 알바노조 성공회대 지부장인 이장원 삼촌은 지난 6월1일 열린 1주기 추모제에서 아빠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더라. “문석 선배! 이제는 최저임금 1만원을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어색해하지 않아요. 더 열심히 해서 반드시 쟁취해내겠습니다.”

도연아, 아빠는 여기 없지만 마음속에 아빠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기억하자. 아빠는 하늘나라에서 도연이를, 엄마를, 그리고 아빠의 뒤를 이어가는 후배들을 지켜보고 있을 거야.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자. 사랑한다.

2014년 6월 엄마 강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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