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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증거’가 될 이재현?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 회장 1심서 징역 4년 선고
‘최소한’의 형량이란 분석 속 다른 총수 재판 주목
등록 2014-02-18 17:22 수정 2020-05-03 04:27
강기훈씨가 2월1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유서 대필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박승화

강기훈씨가 2월1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유서 대필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박승화

기대는 빗나갔다. 이재현(54·사진) CJ그룹 회장은 ‘집행유예’의 행운을 거머쥐지 못했다. 횡령·배임·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은 1심 재판부에서 징역 4년에 벌금 260억원을 선고받았다. 총수의 실형 소식에 CJ는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최근까지 법원이 재벌 총수에게 유독 관대했던 관행에 비춰보면, 그에게는 아직 ‘반전’의 기회가 두 번이나 남아 있는 까닭이다.

만성신부전증 치료 위해 병원으로

서울중앙지법 형사20부(재판장 김용관)는 2월14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검찰이 CJ제일제당의 복리후생비·회의비 등 경비를 거짓으로 계상하는 수법으로 이 회장이 회삿돈을 횡령했다고 주장한 금액 603억원에 대해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비자금 조성만으로도 횡령”이라고 본 것이다. 이 회장이 국내외 차명계좌로 관리하던 주식을 사고팔아 수천억원대의 차익을 얻는 과정에서 259억원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도 유죄로 판단됐다. 검찰은 조세포탈액이 546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해왔지만, 재판부는 해외 특수목적법인(SPC)을 이용한 조세 절감 등은 합법적이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재현 회장의 조세범죄는 국가의 조세정의를 어지럽혔다. 비자금 조성 또한 기능적이고 은밀하게 조성돼 비정상적인 행태였으며 금액도 커 회사에 부실을 초래했다”고 실형을 선고한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이 회장은 운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징역 4년은 그가 저지른 불법행위를 감안하면 ‘최소한’의 형량이다. 로펌 소속 변호사의 설명이다. “대법원의 양형 기준에 따르면 횡령·배임 금액이 300억원 이상, 조세포탈세액이 200억원 이상이면 모든 감경을 받더라도 각각 최소 징역 4년, 5년을 선고하도록 돼 있다. 여러 혐의의 범죄를 처리할 때 형량을 단순 합산하는 건 아니지만, 이 회장은 두 개의 기준에 모두 해당되는데도 징역 4년만 받았으니 최소한을 선고받은 것이다.”

게다가 이제 겨우 1심 재판부의 판단을 받았을 뿐이다. 한국 법원에는 재벌 총수에게만 해당되는 ‘1심 실형-2·3심 집행유예형’이라는 공식이 있다.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심 실형-2심 실형’을 선고받아 이 공식이 깨지는 듯했지만, 최종심에선 결국 공식을 적용받았다. 서울고법은 앞서 2월11일 파기환송심에서 김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같은 날 2천억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구자원 LIG그룹 회장도 항소심에서 풀려났다. 마찬가지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판단이 내려진 덕분이다. 이들은 “우리 경제 건설에 이바지한 공로와 현재의 건강이 좋지 않은 점” 등을 인정받았다. 이 회장에게 남아 있는 ‘희망의 증거’다.

실형이 선고된 이 회장이 구치소에 수감되는 것도 아니다. 만성신부전증 치료를 위해 배우자의 신장을 이식받은 그는 지난해 7월18일 구속 기소된 뒤 한 달여 만인 8월20일부터 병원에 머물고 있다. 이번에도 재판부의 배려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김 회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도 호흡곤란과 우울증 증세로 3년 넘게 재판을 받는 동안 구치소에선 146일만 지냈다.

재벌들의 셈이 빨라지고 있다

재벌들의 셈도 빨라지고 있다. 당장 2월 말에는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된 뒤 1년 넘게 수감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상고심이 열릴 예정이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횡령·배임 혐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사기성 CP 발행 혐의),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횡령·배임 및 조세포탈) 등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다. 이재현 회장은 이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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