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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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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승리냐, 완전한 패배냐

사용자 쪽 입장 받아들인 통상임금 판결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 쏟아낸 대법관들의 소수 의견
장시간 노동 제동 걸릴 듯
등록 2013-12-25 14:20 수정 2020-05-03 04:27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도 근로자의 임금 청구권을 제한할 수 있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기업 경영 현실’을 앞세운 사용자 쪽 입장을 받아들인 결과다.김명진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도 근로자의 임금 청구권을 제한할 수 있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기업 경영 현실’을 앞세운 사용자 쪽 입장을 받아들인 결과다.김명진

“대법원 다수 의견은 타당성 있는 논리적 뒷받침 없이 단순히 ‘원고(근로자)가 피고(회사)로부터 연·월차수당과 퇴직금을 더 받아가는 걸 용인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법원은 최고의 법 해석 기관으로서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를 법에 따라 선언해야 한다. 그에 따른 경제적 우려를 최소화는 것은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법 원칙을 바로 세우고, 정부는 대법원 판결의 결론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동정책을 펼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대법원이 앞으로 시행될 노동정책까지 고려해 현행 법률의 해석을 거기에 맞추려 한다면 이는 법 해석의 왜곡이다.”

“통상임금 판결에서 근로자는 전패했다”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에 대해 누가 이렇게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을까. 놀랍게도 소수 의견을 낸 이인복·이상훈·김신 대법관이다. 대법원 다수 의견은 이날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도 ‘어떤 경우’에는 근로자의 임금 청구권이 제한될 수 있다고 단서 조항을 달았다. 바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위반했을 때다. 신의칙이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면서 권리 행사를 하면 안 된다는 근대사법 원칙이다.

통상임금에서 신의칙은 어떻게 위반되는가. 다수 의견이 정한 요건은 이렇다. 첫째, 정기상여금을 대법원 선고(12월18일) 전 노사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합의해 임금 조건을 정했다. 둘째, 뒤늦게 근로자가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추가 임금을 청구했다. 셋째, 추가 임금 때문에 회사 존립이 위태로울 만큼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발생한다. 세 가지 조건이 다 충족되면 신의칙에 위반돼 근로자는 추가 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소급 적용하지 않을 것임을 대법원이 천명한 것이다. ‘기업 경영 현실’과 ‘관행’ 등을 앞세운 사용자 쪽 입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소수 의견은 조목조목 반론한다. 첫째, 추상적인 신의칙이 실정법 강행규정에 앞설 수 없다. “사용자의 경제적 어려움이 근로자의 권리를 희생시킬 근거도 될 수 없다. 사용자는 자신이 제공받는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지 무슨 ‘손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둘째,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는 모호하고 불확정적이다. “도대체 추가 부담액이 어느 정도가 돼야 이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모호하고 불명확한 기준을 신의칙 요건으로 내세우면 근로기준법상 보장되는 권리가 사업장이나 개별 소송마다 달라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곧 근로자들에게 고루 보장돼야 할 권리가 형평에 맞지 않게 안정되거나 부정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셋째,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가 합의하는 관행이 있다면 대법원이 바로잡아야 한다. “관행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에 위반되므로 고쳐야 한다고 선언하는 게 옳다. 그렇지 않으면 대법원이 위법한 관행을 승인해주는 것이고 본연의 역할인 법의 올바른 해석·적용이 아니라 거꾸로 위법한 해석·적용을 하는 결과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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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의견은 소수 의견일 뿐이다. 하급심 판결은 다수 의견을 따른다. 노동법 전문가인 김선수 변호사는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에서 근로자는 전패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가 있어 임금을 사용자 쪽과 합의한 사업장은 대법원 판례라면 추가 임금을 받을 수 없고 노조가 없는 곳은 사용자를 상대로 법정싸움을 벌이기 어려우니까 어떤 근로자가 혜택을 입겠는가.” 실제 한국 제너럴모터스(GM) 근로자 9900명의 8천억원대 체불임금 소송은 ‘빨간불’이 켜졌다. 애초에 통상임금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은 GM 때문이었다. 지난 5월8일 미국 워싱턴에서 미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박근혜 대통령 초청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대니얼 애커슨 GM 회장이 말했다. “한국에 8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하려는데 통상임금 문제를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주었으면 한다.” 박 대통령은 “한국 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다. 꼭 풀어나가겠다”고 답했다. 이 발언은 대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어 논란이 일었다.

결론은 사실상 국제 민원이 성공한 꼴이 됐다. 1·2심에서 근로자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는 승소 판결을 받아냈지만 대법원이 소급 적용을 금지하는 ‘신의칙 요건’을 신설해 승소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법무법인 지평지성 김성수 변호사는 “앞으로 사용자는 통상임금의 판단 기준을 다투기보다는 근로자가 추가 수당을 청구함으로써 사용자 쪽이 입게 될 재정적 부담과 경영상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상임금 확대로 수당퇴직금 오를 것

통상임금 판결로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장시간 노동을 개선할 여지가 생겼다. 한국 근로자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이 20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05시간)보다 400시간 가까이 많다. 이는 멕시코(2317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것으로, 한국보다 경제 수준이 떨어지는 헝가리(1797시간)·체코(1700시간) 등 동구권보다 높다.

우리나라의 장시간 노동은 잦은 연장·야간·주말근로 탓에 발생한다. 사용자는 싼 맛에, 근로자는 저임금을 메우려고 초과근무를 선택한다. 하지만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이라고 명백히 밝힘에 따라 장기간 근로 관행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통상임금이 휴일·야근수당이나 퇴직금 등을 계산하는 기준이어서 통상임금 확대로 수당과 퇴직금이 따라 오르는 까닭이다.

노사정위원회가 지난 6월 조사한 자료를 보면, 중소기업 현장직 ㄱ(3년차)씨는 올해 4264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그러나 내년에는 연장근로·야간근로·휴일근로수당과 연차수당을 포함해 611만6천원이 오른다. 퇴직금도 128만7천원 늘어난다.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 ㄴ(3년차)씨의 연봉은 더 많아진다. 올해 6287만5천원인데 7907만5천원으로 불어난다. 퇴직 적립금도 339만6천원 더 받는다. 정기상여금이 ㄱ씨는 480%, ㄴ씨가 1050%인데 내년부터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이끌 가능성도

이번 통상임금 판결의 원고인 갑을오토텍 근로자를 대리한 김기덕 변호사는 “장기적으로 법정수당에 관한 근로자의 임금 권리를 보장하고 장시간 근로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한국 노사관계가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상임금 확대는 최저임금 인상도 이끌 가능성이 있다. 오계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정책논단 ‘통상임금 산업범위 확대에 따른 인사관리의 변화’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가 확대돼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 총액 상승률보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더 높아지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임금소득 불평등이 어느 정도 줄어들고 기업도 임금구성 체계 단순화 등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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