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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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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불법파견도 세계 1위?

10명 가운데 8명 사내하청인 인천공항
사내하청 노조 “세계공항서비스평가 1위 걸맞게 열악한 처우 개선해달라”
등록 2013-11-23 15:25 수정 2020-05-03 04:27
인천 중구 운서동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노동자들. 이들처럼 공항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민간위탁 계약을 맺은 업체 소속의 직원이다.김명진

인천 중구 운서동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노동자들. 이들처럼 공항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민간위탁 계약을 맺은 업체 소속의 직원이다.김명진

그곳에서는 해가 지지 않는 듯하다. 인천국제공항 유리창 돔 바깥은 이미 한밤이지만, 터미널은 여전히 환한 조명이 비춘 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 10월18일 밤, 국제선 항공편을 이용하기 위해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교통센터와 여객터미널을 이어주는 구름다리를 따라 공항 3층에 들어섰다.

공사 정규직 1003명, 민간위탁 6105명

자정을 향하는 시간이었지만, 터미널은 인파로 붐볐다. 여행객들 사이로 양치기처럼 손수레 수십 개를 나란히 몰고 가는 공항 직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항공사 직원의 손짓을 따라, 미로처럼 빨간 줄을 쳐놓은 출국 수속 데스크로 향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 옆 남자화장실 입구로 다가가니 ‘미끄럼 주의’를 알리는 노란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환경미화원은 청소 도구가 담긴 노란색 카트를 세워둔 채, 화장실 입구 왼편의 장애인화장실 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늦은 밤이라 출국장은 한 곳만 열려 있었다. 그 바람에 밤 비행기 손님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보안검색대로 향하는 빽빽한 줄에서는 ‘툭, 툭’ 바구니를 건네는 소리와 ‘삑’ 검색대의 경보음이 들렸다. “들어오세요.” 검색대 너머 보안요원이 손짓을 했다.

법무부 직원이 말없이 내민 여권을 받아들고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공항 직원들 용어인 ‘에어사이드’(Air Side·출국 게이트의 안쪽)로 넘어온 것이다. 대낮처럼 불을 밝힌 면세점을 따라 이어지는 무빙워크 가운데 한쪽이 멈춰 있었다. 하늘색 작업복 차림의 기술자 2명이 몸을 수그린 채, 무빙워크 발판을 뜯어내 그 아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층 아래 공항 신청사로 향하는 모노레일 승강장도 이미 여행객으로 가득 찼다. 스크린도어 앞에는 주황색 조끼를 입은 직원이 서 있었다.

탑승동 창밖에는 노란 특수차량을 모는 이들이 항공기 근처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탑승구 입구에서 항공사 직원들이 손님맞이에 나섰다. 비행기 이륙 30분 전이다.

자, 여기서 문제. 이날 기자가 인천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마주친 인천국제공항공사(공사) 직원은 모두 몇 명이었을까? 문제를 풀기는 어렵지 않다. 정답은 ‘0’. 서울 여의도의 7배 크기인 인천공항(5616만8천㎡)에는 3만5천여 명의 인력이 상주한다. 여기에는 법무부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각 항공사, 면세점 직원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인천공항공사로부터 민간위탁을 받은 하청업체의 노동자다. 윤후덕 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3년 현재 공사의 정규직은 1003명이고 민간위탁 직원은 모두 610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전체 직원의 86%에 이르는 규모다.

하청노동자는 공사 직원이 아니지만 ‘IIAC’(인천국제공항공사)가 새겨진 제복을 입는다. 손수레 등 여객터미널 관리, 화장실 등의 여객터미널 환경미화, 무빙워크 등 승강시설 관리 등 모두 42개 업체에서 고용된 노동자가 인천공항 안에서 다양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그래픽 참조). 공사 직원들은 공항 관리를 위한 사무 업무와 기계·건축 등의 전문 업무를 맡고 있다.

비정규직 일반버스비, 정규직 리무진버스비

공항에 사내하청 노동자가 있는 건, 사실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공항의 특성상 다양한 업무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민간위탁’이 필수적이다. 2001년 문을 연 인천공항 역시 민간위탁을 공항 운영의 핵심으로 삼았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대규모 적자를 줄여보겠다는 의도였다. 처음엔 34개 업체와 민간위탁 계약을 맺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좀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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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13년이 넘었지만 인천공항의 핵심 운영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인천공항은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 1조6천억원에 영업이익만 8천억원을 기록했다. 적자를 줄이려고 시작한 ‘민간위탁’이 이제는 흑자 유지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민간위탁이 이어지면서 하청노동자 대다수는 반복적인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 현재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조 지부장인 조성덕씨는 공항 외곽 특수경비를 맡고 있는 업체의 직원이다. 그는 개항 때부터 이곳에서 일해 올해로 13년차다. 그가 인정받는 경력은, 신입사원보다 매달 15만원을 더 받는 월급뿐이다. “한 해 연봉이 2600만~2700만원이에요. 교통비·식대는 따로 나오는데 세금을 떼기 전 규모가 이 정도죠. 공항공사 정규직 직원은 초봉이 3600만원이 넘고, 전체 공항공사 직원의 임금 평균은 8700만원입니다. 똑같이 받을 수는 없지만, 공항에서 계속 일한 것에 대한 근속수당은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3년마다 반복되는 공사와의 재계약 때문에 고용 승계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인천공항은 우리나라에서 접근성이 안 좋은 작업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도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다르다고 해서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이 다른 건 아니잖습니까.” 인천공항에서는 정규직과 사내하청 직원의 교통비 책정 기준이 다르다. 조씨와 같은 민간위탁 업체의 직원은 매달 18만원을 교통비로 받는다. 그러나 공사 정규직 직원은 매달 40여만원을 교통비로 받는다(2011년 이후 25만원을 교통비로 두고 나머지는 기본급에 포함되도록 책정하는 것으로 변경).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은 사내하청 직원은 일반버스비 운임을 기준으로, 정규직은 리무진버스비를 기준으로 책정했기 때문이다.

조씨가 일하는 업체뿐만 아니라 인천공항에서는 공항소방대·폭발물처리반(EOD) 등 중요한 업무도 민간위탁 업체에 맡기고 있다. 그런 탓에 인천공항은 2013년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32개 평균 비정규직 고용률(22.5%)보다도 그 비중이 한참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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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청노동자들의 문제제기는 쉽지 않다. 용역업체들이 공사로부터 분기별로 받는 서비스수준협약(SLA) 평가에 따라 재계약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 점수다. ASQ는 국제공항협의회(ACI)가 주관하는 전세계 공항 이용 및 서비스 등에 대한 종합평가다. 인천공항은 8년 연속 아시아 지역에서 ASQ 1위를 차지하고 있다. ASQ는 항공기 탑승 승객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과 보안 검색, 여권·비자 심사, 탑승 수속, 공항 서비스 및 편의시설 등에 대한 만족도 등을 설문조사해 평가한다.

UNGC ‘노동존중경영상’ 받아 노동자들 분통

“ASQ 평가하면 연차도 취소되고 휴무도 취소되죠.” 인천공항의 환경미화 업체에서 근무하는 정명선(인천공항노조 환경지회장)씨의 말이다. 그의 업체는 여객터미널 화장실 청소를 맡고 있다. 그는 “평소에는 3교대로 돌아가지만, ASQ 평가가 있는 날에는 담당 구역을 쪼개는 탓에 노동강도가 세진다”고 말했다. 이는 공사가 하청노동자에게 사실상 지시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사내하청 노조원들은 공사에 고용불안 해소와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기 위해 지난 11월1일 개항 이래 처음으로 인천공항에서 파업을 진행했다. ASQ 평가를 하는 11월16일부터 무기한 파업을 벌이려 하자, 공사는 평가일을 하루 앞당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공백을 막고, 하청업체들은 파업에 참가한 이들의 징계에 나서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이처럼 공사와 하청노동자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인천공항의 고용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리고 있다. 이미경 민주당 의원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은 지난 7월 인천공항 민간위탁 업체들의 고용실태 등을 조사한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공사가 불법파견 고용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는 “공사가 용역업체와 계약서상 도급 대상 업무를 특정하지 않고, 업무 완료 기한도 정해두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천공항 하청노동자의 업무 형태가 특정 사업을 독립적으로 완수하는 도급보다 원청의 노무관리·업무지시를 받는 파견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다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지난 7월11일 공사 민간위탁 경비업체 직원이 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확인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공사가 인천공항 내 경비 업무를 도급받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업무를 감독하고 인사·노무 관리에 관여했다고 해도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의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대해 공사는 “대법원 판결로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는 인천공항공사가 시행하는 아웃소싱은 불법이라는 주장을 더 이상 반복하기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천공항지역지부는 “경비 업종에 한정된 판단으로 공사의 민간위탁 전체를 불법파견으로 본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게다가 파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공사가 11월12일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의 ‘가치경영대상’에서 ‘노동존중경영상’을 받으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이 상은 유엔이 정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협약을 가장 잘 이행한 기업에 주는 것으로 공사가 고용 및 업무에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인천공항의 성과는 단지 자신감과 정부의 지원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3만5천 명의 공항 상주 직원들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올해 초 공사 사장대행을 맡았던 이용근 부사장은 국제공항협의회에 ASQ 8연패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러나 그 ‘3만5천 명’ 안에는 하청노동자의 공로는 보이지 않는 듯하다. 이들은 여전히 인천공항 안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자’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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