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때 필요한 권리죠.”
지난 8월20일,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 대표인 장서연 공익법무법인 공감 변호사는 웃으며 말했다. 이날 서울 성산동 ‘인권중심 사람’에서 열린 SOGI 제2회 컬로퀴엄 ‘동성결합 제도화의 의미와 법적 쟁점’은 그렇게 시작됐다. 장서연 대표는 “좋을 때는 좋지만 헤어질 때는 많이 싸운다”며 “파트너십 제도는 커플이 헤어질 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동성결합은 동성결혼과 파트너십 제도를 아우르는 제도”라며 “제도화되기 전까지는 몸은 섞되 재산은 섞지 말라”며 농담 섞인 인사말을 던졌다. 9월7일로 예정된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당연한 결혼식’을 앞두고 있어 컬로퀴엄의 의미는 더했다. 이들 커플은 결혼식 뒤, 동성결합을 제도화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 ‘양성의 평등’ 해석이 핵심
이날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의 류민희 변호사가 ‘동성결합의 법적 쟁점과 제도화 가능성’을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그는 먼저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서 성소수자들이 ‘결혼보호법’ 위헌 판결을 자축하는 광경을 보면서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묘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며 “동성결합은 언뜻 생각하면 외국에서 한국으로 수입된 논의 같지만 사실은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2004년 이상철·박종근씨가 공개 결혼식을 올리고 서울 은평구청에 혼인신고를 냈지만, ‘수리할 수 없다’는 통고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법정 투쟁은 이어지지 않았다.
류민희 변호사는 발제문에서 헌법상 쟁점에 대해 설명했다. 헌법 제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 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학술논문 등을 통해 이 조항에 대한 해석이 나왔다. ‘양성의 평등’을 둘러싼 해석이 핵심이다. 그는 “이 조항에 따라 동성혼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견해도 많다”고 전했다. 반면 이은우 변호사 등의 해석에 따르면, 이 조항은 혼인과 가족 생활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침해하는 걸 배격하는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혼인의 전제가 양성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은 체계상 맞지 않는다. 예컨대 가족이 성립되는 계기가 되는 입양의 경우, 입양의 조건으로 양성일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류 변호사는 “이런 문구가 헌법에 등장한 맥락은 가부장제와 여성 차별의 잔재가 있는 한국 가족제도와 가족법에 대한 헌법상의 특별한 평등의 요청으로 보인다”고 견해를 덧붙였다. 실제 뉴질랜드 등의 결혼법은 ‘남녀 사이’(between men and women)라는 문구로 결혼의 조건을 한정했다. 그러나 한국 헌법상 ‘양성의 평등’은 해석의 여지가 넓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동성혼에 대한 법적 판단은 없었지만, 동성 간 사실혼에 대한 판례는 있었다. 2004년 7월 인천지방법원은 ‘사실혼 관계 해소로 인한 재산 분할 및 위자료’ 청구건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는 1980년부터 20여 년 동안 동거인과 살았지만, 폭행 등 피고의 책임으로 사실혼 관계가 파탄됐다며 위자료 및 재산 분할을 요구했다. 이에 법원은 “부부 공동 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생활의 실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당시 피고가 사실혼 관계를 부인한 상태라 이것이 동성결합을 부정하는 판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류민희 변호사는 “사실혼 법리의 확장은 어렵다”며 “다만 주택임대차보호법 같은 개별법이 보호하는 범위에 동성관계를 포함시키라는 소송을 해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걸림돌 없애간 네덜란드, 소송 중요한 미국실제 동성결합이 도입된 나라의 상황도 소개됐다. 네덜란드는 1979년부터 임대차·사회보장 등에서 동거 커플에게 결혼 커플에 준하는 권리와 혜택을 주기 시작했다. 1997년 동반자등록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지만, 양육과 연금 등에서는 차별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추가 입법을 통해 이런 차이는 점차 사라졌다. 나중에는 이름만 빼면 동반자 등록과 결혼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류민희 변호사는 “네덜란드 사례는 동성애자에게 결혼을 개방하기 위해 법적 걸림돌을 점차 없애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네덜란드에서 ‘입법적 방법’으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면, 미국에서는 ‘소송적 방법’이 중요했다. 1990년대 하와이 등에서 동성결혼이 인정되자 엄청난 역풍이 몰아쳤다. 보수적인 주에서는 주민발의 등을 통해 동성결혼 가능성을 막는 움직임이 번졌다.
1990년대 초까지 성소수자운동도 엇갈린 태도를 보였다. 1989년 동성결혼 소송이 벌어지자 동성애자 단체인 람다 리걸의 여성 변호사는 “결혼이 언제부터 해방으로 가는 길이 됐느냐?”는 의견을 밝혔지만, 남성 변호사는 “결혼할 권리를 쟁취하라”고 주장했다. 역풍이 불자 우회적(side-door) 방법이 나왔다. 미국에서는 결혼법 소송을 내는 대신 배우자 권리 소송 등을 통해 결혼의 문을 열어갔다. 이런 소송이 무르익자 매사추세츠주 성소수자 법률운동단체 ‘GLAD’는 2001년 결혼법 소송을 냈다. 저명한 가족법 교수들은 물론 매사추세츠주변호사협회 등이 이들에게 유리한 의견서를 써줬다. 이렇게 치밀한 소송 과정을 통해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는 진행됐다.
류민희 변호사에 이어 오정진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제에 나섰다. 그는 “법의 이름으로 권리가 독점되고 있기 때문에 법제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안다”면서도 “계속 마음에 걸리는 단어는 인정과 허용”이라고 말했다. 욕망이 요청으로 변환되는 순간, “그러면 내가 허용해줄까?” 하는 심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동성혼은 국가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며 “결혼과 가족제도는 그쯤은 흡수해서 적응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오 교수는 “평등을 요청하기보다는 말해야 한다”며 “나아가 평등뿐만 아니라 자유에 근거해 말하자”고 제안했다. 자유는 타인(이성애자)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등을 요청하기보다 말해야 한다”
이어진 청중 토론에서도 법률혼이 다른 성소수자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비혼여성 같은 이들과 연대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토론회 바깥 세상에선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동성결혼이 지구촌 이슈가 되기까지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당연히 한국도 지구의 일부다. 이날 컬로퀴엄에서 동성결합의 딜레마를 담은 말이 소개돼 청중이 ‘빵’ 터졌다. “I support gay marrige. I believe they have a right to be as miserable as the rest of us.” 번역하면 “나는 동성결혼을 지지한다. 그들도 우리만큼 불행해질 권리가 있다고 믿으니까.” 미국의 코미디언 킨키 프리드먼이 한 말이란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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