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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기소·재판… 갈 길 먼 CJ

이재현 CJ그룹 회장 구속 가능성 높아… 새로운 대법원 양형 기준에 따라 중형 받을 수도, 지배구조와 경영 조정 불가피
등록 2013-07-03 10:31 수정 2020-05-03 04:27

이재현(53) CJ그룹 회장은 비자금 조성 등의 의혹으로 지난 6월25일 오전 9시35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피의자 신분이었다. 150여 명의 기자들에 둘러싸인 채 이 회장은 말했다.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굉장히 죄송하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긴장한 목소리였다. 계열사 임원들에게 횡령·배임과 관련한 지시를 했는지, 2008년 비자금 의혹이 일었을 때 선대 유산이라고 말했던 당시 주장이 그대로인지를 기자들이 물었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이 회장은 2008년 CJ그룹 재무팀장의 살인 청부 사건에서 비자금 의혹이 제기돼 증여세와 양도세 1700억원을 자진 납세한 바 있다. 당시 CJ 쪽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 등 선대가 이 회장에게 차명으로 물려준 것이라고 소명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 6월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해 기자 150여 명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횡령·배임·조세포탈 혐의(1500억원 규모)를 받고 있는 이 회장의 구속 여부는 서울중앙지법이 7월1일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정한다.한겨레 류우종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 6월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해 기자 150여 명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횡령·배임·조세포탈 혐의(1500억원 규모)를 받고 있는 이 회장의 구속 여부는 서울중앙지법이 7월1일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정한다.한겨레 류우종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정찰제 불가능

이 회장은 크게 횡령·배임·조세포탈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회장이 CJ제일제당의 복리후생비, 회의비, 원자재 거래내역 등 경비를 거짓으로 계상해 회삿돈 600억원을 횡령한 혐의, 국내외 차명계좌로 관리하던 비자금으로 계열사 주식을 사고팔아 수천억원대의 차익을 얻는 과정에서 510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 일본에서 빌딩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회삿돈 350억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에 대해 수사해왔다.

자정을 넘긴 6월26일 새벽 2시30분, 약 17시간 만에 조사를 마치고 이 회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에 출석할 때는 부축 없이 들어섰지만 빠져나갈 때는 주변인의 부축을 받았다. 무척 피곤해 보였다. 그는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겠다고 했던 최근 발언에 대해 “임직원들의 선처를 부탁드린다”는 의미로 설명했다. “다시 한번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수사에 성실히 임했다.”

같은 날 오후 1시30분, 이 회장의 소환 조사가 끝난 지 11시간 만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검찰은 “이 회장의 혐의가 중대하다고 판단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피의자 조사를 마친 뒤 하루이틀 검토를 거쳐 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는 통상의 사례와 달리, 이례적으로 속도를 낸 것이다. 수사가 계획대로 풀렸고 혐의 입증에도 자신 있다는 의미다.

이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비자금 관리 혐의를 대체로 시인하면서도 “고의는 없었으며, 횡령·배임 등 구체적인 내용은 다 알지 못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CJ 재무팀의 국내외 비자금 관리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 자료와 임직원의 진술을 검찰이 이미 확보한 상태라, 혐의를 전면 부인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풀이된다. 대질신문도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애초에 이 회장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 이미 구속된 ‘금고지기’ 신동기 CJ글로벌홀딩스 부사장과 마주 앉힐 계획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대질신문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신 부사장은 이 회장과 공모한 혐의로 6월27일 구속 기소됐다.

운명의 날은 7월1일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오전 11시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이재현 회장의 구속 여부를 결정한다.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지만 법조계는 영장 발부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사안이 중대하다. 배임·횡령죄으로 회사에 끼친 손해가 1천억원에 이르고 조세포탈 세액도 500억원을 넘는다. 7월1일부터 새로운 대법원 양형 기준이 적용돼 이 회장은 더 무거운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는 처지다. 새 양형 기준에 따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의 경우 포탈세액이 10억~200억원이면 징역 4~6년, 200억원 이상이면 5~9년이 기본 형량이다. 과거에 비해 형량을 두 배가량 높여 재벌 회장에게 적용되던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정찰제가 아예 불가능하게 됐다.

과도기적인 ‘집단 비상경영 체제’

둘째, 증거인멸의 가능성이다. 검찰은 지난 6월3일 CJ 쪽의 조직적인 증거인멸 행위를 공개적으로 경고한 적이 있다. “CJ그룹의 일부 임직원이 조직적인 증거 은닉 또는 증거 인멸 행위를 한 의혹이 있어서 그룹 관계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검찰 관계자) CJ 쪽이 5월21일 검찰 압수수색을 앞두고 일부 컴퓨터를 새것으로 통째로 교체하고 국외 비자금 조성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홍콩·중국·일본 법인장들이 검찰에 나오지 않으면서 수사 대책 마련에 나선 정황이 검찰 수사망에 포착됐다.

만일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면 그룹 지배구조와 경영 활동에도 어느 정도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CJ그룹의 소유 구조는 단순하다. 지주회사인 CJ가 지배주주로 CJ제일제당, CJ CGV, KX홀딩스(물류 중간지주회사) 등 주요 계열사를 거느리고 그 아래로 계열사들이 뻗어나가는 구조다. 이 회장은 지난 3월 말 현재 지주사 지분 42.3%를 쥔 최대주주다. 가족이나 임원이 지분을 나눠 소유한 다른 재벌 그룹들과 달리, CJ에서 이 회장을 뺀다른 사람들의 지분은 미미하다. 과거 제일제당이라는 식품회사를 바이오·엔터테인먼트·미디어·유통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된 그룹으로 키운 것도 이 회장의 구상으로 알려졌다. 현재 식품·영화 등에서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는 등 탄탄한 사업구조를 자랑한다고는 해도, 회장이 구속되면 그룹 경영 전반이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CJ그룹은 이 회장의 경영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비상플랜’을 마련해둔 상태다. 이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74·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그룹 공동 대표이사 회장과 누나인 이미경(55) CJE&M 총괄부회장, 이관훈(58·전문경영인) 지주회사 대표 등 3대 축을 중심으로 과도기적 ‘집단 비상경영 체제’를 꾸리는 방식이다. CJ 경영진은 자금관리인 신동기 부사장이 구속된 6월 초부터 지주회사, 경영연구소,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사 플랜팀을 2개 조로 나눠 대응 시나리오를 검토해왔다. 검찰이 이 회장의 소환을 통보한 6월22일부터는 비상체제를 가동해 이관훈 대표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며 대응 전략을 논의해왔다.

박근혜 정부와 ‘코드 맞추기’ 나서

당장 눈에 띄는 변화로는 홍보 조직을 대폭 강화한 것을 꼽을수 있다. 신동휘 CJ제일제당 부사장을 그룹 홍보실장으로 발령하고, 신 부사장 밑에 홍보기획 담당 노혜령 상무, 대한통운 홍보팀장 겸 홍보1팀 담당 장영석 상무, 홍보2팀 담당 정길근 상무 등 3명의 임원을 배치했다. 박근혜 정부와 ‘코드 맞추기’에도 나섰다. 경력 단절 여성을 인턴으로 채용하는 리턴십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CJ E&M의 케이블 채널에서 ‘창조경제’를 홍보하는 영상을 대대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진행하는 첫 재벌 수사인 만큼 몸 낮추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구속·기소·재판 등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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