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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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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지연하려 헌법소원 악용하는 현대차의 꼼수



6월13일 헌재에서 파견법 ‘고용의제’ 조항 위헌심판 공개변론
가능성 낮지만 위헌 결론 땐 파견근로자 정규직화 사실상 봉쇄
등록 2013-06-16 17:23 수정 2020-05-03 04:27

시간엔 후진이 없으나 역사는 퇴행하기도 한다. 시간이 타협 없이 15년을 전진하는 동안 법의 역사는 제자리조차 지키지 못했다. 옛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3항을 둘러싼 6월13일의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은 뒷걸음질쳐온 국내 노동자 보호법의 실상을 보여준다.
공개변론 대상 사건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7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과 울산공장 최병승씨의 부당해고 구제소송 등 2건이다. 위헌소송 청구인은 현대차, 피청구인은 고용노동부 장관이며, 사내하청 노동자는 이해당사자로 참여한다. 함께 다뤄질 예정이던 인터콘티넨탈호텔의 여성노동자 2명 부당해고 사건은 법률 대리인인 김앤장이 지난 6월4일 돌연 취하했다. 소송 상대와도 별도의 합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가 지난 5월1일 고공농성 중인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명촌중문 앞 철탑 위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2011년 2월 대법원이 최씨에게 ‘정규직 인정’ 판결을 내리자 현대차는 그해 3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가 지난 5월1일 고공농성 중인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명촌중문 앞 철탑 위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2011년 2월 대법원이 최씨에게 ‘정규직 인정’ 판결을 내리자 현대차는 그해 3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서면 공방 아닌 공개변론 하기로 한 헌재의 속내는

쟁점은 ‘고용의제’의 위헌성 여부다. 애초 1998년 제정된 옛 파견법은 노동자들이 거세게 반대했던 법안이다. 파견노동자 양산을 법적으로 보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용주가 파견근로자를 2년 이상 사용했을 때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고용의제는 노동자 중간착취 남용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때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 명분으로 파견법을 만들면서 노동계 설득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기도 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 조항에 따라 원청을 상대로 부당해고 무효소송을 제기하며 정규직화를 요구할 수 있었다. 2007년 7월1일 개정된 파견법은 고용의제를 ‘고용의무’로 바꿨다. ‘사용주가 파견근로자를 2년 이상 사용했을 때 직접 고용’해야 하는 의무만 부과하는 방식이다. 노동계는 이미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는 고용의제보다 한층 더 후퇴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현대차 사 쪽은 2005년부터 아산공장 및 울산공장 노동자들과 다퉈온 법적 분쟁을 끝내 헌재로까지 끌고 갔다. 아산공장 사건은 2010년 10월 서울고법에 옛 파견법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제청을 신청했다가 기각당한 바 있다. 울산공장의 경우도 2011년 2월 최병승씨를 정규직으로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으나 현대차는 헌재로 무대를 옮겼다. 고용의제의 힘을 빼면 두 소송은 물론 파견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를 일거에 무력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보통 서면 공방으로 이뤄지는 헌법소원 사건을 헌재가 공개변론 형태로 여는 배경도 뚜렷하지 않다. 국민적 관심사가 높다는 이유지만 그동안 헌재는 탄핵 사건이나 권한쟁의 사건을 주로 공개변론으로 진행했다. 공개변론 뒤 최종 결정이 언제 내려질지도 불명확하다.

헌재가 기간제법 4조(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를 고용할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무기계약 근로자로 본다) 사건을 고용의제 변론 2시간 앞에 붙인 것을 두고도 법조계는 의아해하고 있다. ‘2년 근무 뒤 무기계약직이 아닌 기간제로 계속 일하고 싶다’는 게 헌법소원 취지다. 어찌 보면 대립적 성격의 공개변론을 2시간 간격으로 잇달아 배치한 방식이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헌재가 두 사건을 맞붙여 ‘논리적 물타기’를 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현대차의 법률 대리인인 김앤장 출신이다.

고용의제의 위헌성을 다투는 핵심 의제는 ‘계약·기업의 자유 침해’ 여부다. 현대차는 고용의제가 합헌일 경우 ‘능력과 품성이 어떤지도 모르는 사내하청 노동자 수십만 명을 고용하고 임금 차액 수십조원을 소급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용의제가 ‘법률 분쟁 증가→노동시장 경직성 강화→비정규직 증가→노동시장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주장도 내세운다.

반면 노조 쪽은 ‘과장된 논리’란 입장이다. “정말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2년 이상 현대차 사업장에서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한 노동자에 대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라는 단순한 요구일 뿐”이란 얘기다. ‘수십조원’ 비용 주장도 지나치다고 본다. 2011년 6월 당시 신영수 한나라당 의원의 주최로 열린 ‘사업경쟁력과 사내하도급 활용’ 토론회에서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사내도급 8187명을 정규직화할 때 1573억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최근 3년간 평균 당기순이익이 4조3천억원임을 고려할 때 부담 가능한 비용이라고 노조 쪽은 판단하고 있다.

헌재가 다루고 있으니 판사들은 경거망동 말라?

노동계 쪽은 고용의제는 절대 위헌이 될 수 없다는 태도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 정책위원은 “고용의제 자체가 위헌이라면 불법파견뿐 아니라 합법파견조차 위헌이란 뜻”이라며 “헌재가 감히 위헌 결정을 하진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위헌 가능성이 크지 않은데도 현대차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목적은 수많은 사업장의 불법파견 소송을 현재 상태로 묶어두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헌재가 다루고 있으니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하급심 판사들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앤장은 2년 넘게 대법원에 계류 중인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해고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헌재 결정 이후로 미뤄줄 것을 지난 4월 초에 요청했다. 노동부는 일찌감치 “고용의제는 합헌”이라고 밝힌 상태다.

만에 하나 위헌 결정이 난다면 파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법 개정 전인 2007년 7월1일 이전의 불법파견 판결이 다 무효가 돼버린다. 2007년 1월 이후까지 일을 했다면 고용 의무를 통해 다시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한다. 현재 불법파견 집단소송 중인 현대차(1700여 명)와 금호타이어(130여 명), 쌍용자동차(4명), 기아자동차(540여 명) 등의 사건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벌금 외에 노동자들이 사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수단도 사라진다.

6월10일이면 철탑농성 237일째를 맞는 최병승씨는 “1998년 당시 정부가 불법적 간접고용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조항을 두고 이제 와서 위헌을 논쟁하는 것은 시대착오”라고 말했다. 그는 “고용의제가 위헌이 되면 기업규제 조처 전반이 무력화돼 강자 독식 사회로 가는 둑이 터지고 만다”며 “이번 기회에 고용의제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고용 노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가 설립된 지 10년째 되는 해다. 노조의 지난한 싸움은 불법파견 투쟁의 역사 그 자체다. 파견법 제정을 반대했던 그들이 파견법의 고용의제 조항을 앞장서서 지켜야 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전진하지 않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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