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1일 일요일 아침이었다. 흑산면사무소에서 일하는 최한웅(47·전남 신안읍 흑산면 진리)씨는 거실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티리링. 갑자기 유리창이 흔들렸다. 그는 문득 집 옆으로 굴착기가 지나갔는 줄 알았다. “아버지, 지진 났나봐요.” 함께 식사를 하던 그의 아버지가 답했다. “아니네 이 사람아. 지진은 무슨. 어서 밥이나 들게.”
신안 지진 난 날, 일본 남동부 해역 지진
최씨 가족이 긴가민가했던 일요일 아침 ‘정체불명의 떨림’은 지진이 맞았다. 최씨도 뉴스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기상청은 이날 “전남 신안군 흑산면 북서쪽 101km 바다에서 리히터 규모 4.9의 지진이 일어났으며,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지진은 한 번 더 왔다. 이날 오후 4시께 같은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2.4의 지진이 일어났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느끼기 쉽지 않은 지진이었다.
피부로 와닿지 않았지만 이날 아침 일어난 지진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따지면 6번째로 센 규모였다. 기상청이 1978년 지진 관측을 처음 시작한 뒤, 1980년 1월8일 북한 지역인 평안북도 서부 의주 부근에서 일어난 리히터 규모 5.2의 지진이 가장 컸다. 남한 지역에서는 2004년 5월29일 경북 울진에서 동쪽으로 약 80km 떨어진 바다에서 일어난 리히터 규모 5.0의 지진이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안 앞바다 지진’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바로 전날 일어난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문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동아시아 곳곳에서도 지진이 이어졌다.
지난 4월20일 아침 중국 서부 쓰촨성 야안시 루산현에서 벌어진 지진은 리히터 규모 7.0의 강진이었다. 사망·실종자가 200명이 넘고, 부상자도 1만 명을 넘어섰다. 지진의 규모보다 모두를 당혹하게 한 건, 2008년 쓰촨성 원촨 대지진에 이어 5년 만에 비슷한 지역에서 또다시 강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이었다. 지진은 동아시아 전역으로 번지는 듯 보였다. 신안 앞바다에서 지진이 감지된 날, 일본 남동부 해역에서도 지진이 일어났다. 지난 4월21일 일본 기상청은 “도쿄 남쪽 643km 떨어져 있는 혼슈섬(일본 본토) 남동부 해역에서 리히터 규모 6.7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대만 동쪽 바다에서도 리히터 규모 5.0과 규모 4.8의 지진이 3시간에 걸쳐 일어났다.
이처럼 4월 주말을 강타한 동아시아 지역의 지진은 우리나라에서도 지진 공포증을 키우고 있다. 더 이상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 지대’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근 이런 분위기에 대해 “객관적 근거 없이 단순히 지진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은 최근 일어난 지진에 대한 의문점을 모아 기상청과 소방방재청, 학계 등 전문가들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가 중국·일본처럼 큰 지진을 겪을 가능성은 여전히 낮지만, 그 말이 ‘지진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정리해볼 수 있다.
‘남한판’ 대지진설은 과장된 해석
중국 쓰촨성 대지진과 신안 앞바다·일본 혼슈섬 지진은 서로 관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한·중·일에서 벌어진 지진이 아예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지구라는 공간은 폐쇄적이기 때문에 ‘나비효과’가 미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그러나 지진의 직접적 원인은 한·중·일 모두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은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이 충돌해 일어난 지진이며, 일본은 유라시아판과 북미판이 맞닿아 지진의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윤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신안 앞바다 지진은 약 1억2천만 년 전 백악기에 함몰된 서해 바닷속 분지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른바 ‘지진 연쇄반응’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했다.
한반도를 지나는 ‘남한판’이 발견돼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대지진이 닥칠 수 있다? 중국 쓰촨성 지진이 일어난 뒤, 국내에서 가장 잘못 알려진 지진에 대한 정보다. 한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 내용은 “그동안 한반도는 유라시아판 위에 있어 상대적으로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알려졌는데, ‘남한판’(South Korea Block)이라는 작은 판 위에 있다는 사실이 새로 발견돼 앞으로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한판’이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와 중국 연구진이 2007년 한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당시 논문 연구에 참여했던 조정호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은 “논문에 언급한 ‘남한판’은 한반도가 유라시아판 안에 나눠지는 아무르판이 아닌 다른 작은 판에 있을 가능성을 연구한 것”이라며 “(유라시아판 같은) 독립적인 판의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지진과 연결하는 건 과장된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지진 발생이 늘고 있기 때문에 큰 지진이 날 수도 있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지진 발생이 늘고 있는 건 맞다. 처음 지진 관측을 시작한 1978년에는 모두 6번의 지진을 관측했지만, 지난해에는 52번의 지진이 일어났다. 거의 9배 늘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동안 지진 관측 기술이 발전하고 관측 지점도 늘어나면서 예전에는 놓쳤을 작은 지진도 쉽게 기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히터 규모 3 이상의 지진 발생 횟수는 지난 35년 동안 일정치 않다. 그러나 등에 큰 규모의 지진이 기록된 점을 들어, 확률적으로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도 있다. 이에 대해 이 책임연구원은 “배를 용접하듯 세 조각의 땅이 붙어 완성된 한반도에도 약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반도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핵발전소라는 지진보다 더 큰 위험일본에는 지진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 동해안도 영향을 받는다? 일본과 마주 보고 있는 동해안은 지진뿐만 아니라 쓰나미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일본 대륙은 지각 활동으로 오래전 한반도에서 떨어져나간 부분이다. 이 때문에 동해안은 서해안보다 상대적으로 불안정하다. 따라서 해상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몇 년 전부터 전문가들도 연안재해에 연구를 시작했다. 문제는 동해안에 밀집해 있는 핵발전소와 핵폐기물 처분장 시설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기상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10년 동안 부산 고리, 전남 영광, 경북 울진·월성 등 핵발전소 4곳의 반경 50km 이내에서 모두 75번 지진이 일어났다. 울진과 월성은 각각 27번, 26번, 영광은 14번, 고리는 8번이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서 보듯, 지진보다 더 큰 위험은 따로 있는지 모른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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