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방비로 농약에 노출된 농부들의 고통… 만성적 두통·어지럼증 시달려도 의료지원 부실
“누군 좋아서 뿌리남? 안 뿌리면 건질 것이 없으니께 그러제.”
방제복도 마스크도 없이 고추밭에 약을 뿌리던 김상만(60·임실군 운암면 용운리)씨가 한마디 툭 뱉었다. 경운기에 커다란 물통을 싣고 농약원액과 물을 섞어 담은 뒤 모터를 연결해 기다란 호스로 약을 뿜어내는 방식이었다. 등에 약통을 지고 뿌리던 것에 비해 해가 덜하다지만 살포자가 농약에 무방비로 노출되기는 마찬가지다. 김씨처럼 노지고추를 키우는 이들이나 과수재배를 하는 이들에게 요즘은 한창 농약철이다.
10여년 전 땡볕에서 약을 치다 정신을 잃어 겨우 살아났다는 김씨이건만, 두어해 지난 뒤부터 다시 약을 친다. 밭두렁에 앉아 약을 치는 동생을 바라보던 형 김규섭(65)씨 역시 “몇해 전 약을 치다 하늘이 노랗게 빙빙 돌아 자리보전한 일이 있다”고 말한다. “대변을 한 양동이나 쏟아내고 한 5일 누워 있었제. 그뒤로 농약 냄새만 맡아도 속엣것이 올라왔는디 지나니께 또 그러려니 하네.”
농약 살포 과정의 위해성 여부 측정
작은 땅에 소출을 많이 내려면 방법이 없다. 농약 묻은 먹을거리들이 사회문제가 될 때마다 두 사람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욕설부터 올라온다고 한다. 농민을 범죄인 취급할 게 아니라, 못나고 덜 생긴 먹을거리들부터 부디 사서 먹어달라는 게 그들의 지론이다.
용운리는 운암저수지의 상류에 해당하는 곳이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근 전주나 임실에서 배로만 들어올 수 있었다. 모두 33가구가 모여살고 산좋고 물좋아 동네에 기름기가 반지르르 흐르지만, 여느 농촌처럼 이곳에도 젊은이는 없다.
8월16일 아침. 용진농민한의원 부설 농촌질환연구소의 김길중(32) 한의사의 방문으로 동네가 잠깐 술렁였다. 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용진농민한의원이 손잡고 벌이는 현장검진이 있는 날이다. 아침나절엔 김상만씨가 약을 치던 도중 나섰고, 오후 2시에는 마을이장 이도연씨가 참여했다. 흡착지를 주렁주렁 매단 비옷을 입고 빨대처럼 생긴 흡입관이 달린 기구를 허리에 차고 약을 치면, 그것들을 떼어 위해성 여부를 측정하는 것이다. 살포과정에서의 검진인 셈이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흐르는 더위에 비옷 입고 약을 치다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농촌지도소에서는 약칠 때 방제복을 입고 방독면을 쓰라고 당부하지만 한여름에 꼭꼭 막힌 방제복을 입으면 일 끝내기도 전에 더위 먹고 쓰러지게 된다. 두 사람은 “농민들 좋으라고 하는 실험인께” 하며 흔쾌히 비옷을 입고 도구를 찼다.
혼자서 차에 기구를 싣고 다니며 현장검진을 하는 김길중 한의사는 “헛걸음도 각오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면 있는 이를 통해 참여자를 미리 설득해야 하고, 날씨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약치는 때’를 잘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때론 흔쾌히 허락한 피험자가 술에 곯아 떨어져 있거나, 갑자기 딴 작물문제로 집을 비우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 만성노출자에 대한 면역·신경학적 평가도 해야 하고, 농사일을 하지 않은 이들과 비교평가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정확하게 언제 끝날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김 한의사는 “원진녹색병원 연구원들이 달라붙고 전북 청년한의사회 회원들이 거들어도 방대한 현장연구이기 때문에 일손이 턱없이 달린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씨네 밭은 물가에 있었지만, 이장네 밭은 소나무숲을 나란히 하고 있었다.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고, 마스크를 썼지만 보기에도 아슬아슬했다. 농약살포 현장은 화생방 훈련장에 버금갈 정도라고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어 보였다. 약 안 치고 농사 지어 생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농약을 뿌리고나면 두통과 어지럼증은 기본이고 심한 경우에는 피부질환과 구토가 따른다. 독성이 심한 것은 살균살충제와 제초제이다. 보조제와 생장촉진제 등은 독성보다 호르몬문제로 항상 논란이 돼왔다. 전세계적으로 농약의 종류는 1200여종. 우리나라에서 쓰는 농약만 해도 70여종에 제품은 200가지가 넘는다. 거의 다 외국에서 생산된 농약원액을 들여와 희석해 판매하는 것들이다.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가 나서 밥상에 오르는 잔류농약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지만, 농약의 독성이 살포하는 이의 몸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체계적으로 진행된 일이 거의 없다.
순천향의대 천안병원 농약중독연구소 홍세용(52) 소장은 “한해에 수천명이 농약중독으로 입원치료를 받는데, 여름철 막바지 집중살포시기에 병원으로 실려오는 이들이 많다”며 “약성분이 점점 악성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만성중독증이 점점 심각하다”고 말한다.
97년 한국농촌의학회지는 우리나라 농민의 10명 중 7명은 농약중독 경험이 있고, 60살 이상 농민으로 올라가면 10명 중 9명으로 수치가 높아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게다가 나이든 농민들은 허리가 꼬부라지고 삭신이 저리고 기억을 잘 못하고 소변이 찔끔찔끔 나오는 증상을 비슷비슷하게 앓고 있다. 일명 ‘농부증’. 과도한 육체노동 끝에 얻은 천형과도 같은 병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의학적 인과관계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병 아닌 병’이다.
홍 소장은 “만성 농약중독이 분명히 농부증하고 관련이 있을 터인데, 의학적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민간연구소 입장에선 엄두도 못 낸다”고 하소연한다. 전문연구소나 의료기관이 거의 없는 상황에 몇몇 뜻있는 민간기관만 고군분투하는 형편이다. 농민질환을 지속적으로 살피는 기관으로는 용진농민한의원의 농촌질환연구소, 순천향의대의 농약중독연구소, 원진녹색병원의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정도를 손꼽을 수 있다.
농약중독과 농부증은 무슨 관계일까
김길중 한의사는 “사정이 이러하니 농민들은 의료나 산재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산업재해로 인한 질병은 연구도 진행돼 있고 미흡하나마 지원이나 보상도 이뤄지지만, 농민들은 자신이 앓는 병이 무엇인지 알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씨네 고추밭에서 마을로 돌아오니, 박옥순(76) 할머니가 길가에 나와 있었다. 그는 허리가 90도로 꺾였지만 지팡이에 의지한 채 늘 몸을 움직인다. 박 할머니는 “호미질을 너무 해서 허리가 굽었제”라고 말하며 연신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을 지어올렸다. 이날도 고추밭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라고 한다.
두 차례 농약살포 현장에 있었기 때문인가. 용운리를 떠나오는 내내 두통에 시달렸다. 평생 농사일로 골병든 이들이 농약에 찌들어 지내는 동안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나 싶었다. 무대책이 유일한 대책인가.
전북 임실=글·사진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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