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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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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크레인의 독수리들이 아프다

이소선 어머니 묘소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김진숙과 크레인 농성자들
버스 타기, 가스 끄기 따위를 잊을 만큼 아픈 그들처럼, 해고자의 시간 메우기
등록 2012-03-08 16:46 수정 2020-05-03 04:26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월20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의 이소선 어머니 묘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그도 울고 같이 간 이들도 울었다. ‘이소선’은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노동자들의 어머니’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월20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의 이소선 어머니 묘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그도 울고 같이 간 이들도 울었다. ‘이소선’은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노동자들의 어머니’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프레레…, 그 머꼬? 프레레젠트? 그 무신 호텔이고?”

“이라야, 니가 발음 좋게 함 말해봐라. 플레레? 프리레 호텔?”

그러는 사이 택시는 서울역 광장을 벌써 한 바퀴나 돌고 있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풀벌레 우는 소리를 하더니, 급기야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잠시 뒤 통화에 성과가 있었는지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진작에 이래 말하지. 기사 아저씨요, 그냥 브.라.자 호텔로 가주이소!”

“….”

심지 못한 모종, 오지 않은 봄

어느 지나간 유행가 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더니, 아… 정말 눈물이 났다.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나는 그날은 몸도 마음도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김진숙·박영제·박성호·정홍형·신동순, 85호 크레인 독수리들과의 첫 외출이었다. 그것도 싸움이 끝나면 만나러 오겠다는 이소선 어머니와의 늦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하는 버스는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농성장 앞에서 출발했다. 85호 크레인 독수리들과 희망버스를 주도했다고 구속당했던 송경동 시인,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을 비롯한 희망버스팀, 그리고 해고 뒤 복직을 위해 싸우는 쌍용차, 재능교육, 콜트·콜텍 등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였다. 그리운 이들이 모여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갔기 때문일까. 버스 안 분위기는 생각한 것보다 화기애애했다.

부끄럼 많은 85호 크레인 독수리들도 그 속에 자연스레 섞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눈인사로 웃어보기도 했다. 새삼 그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보고 있으면서도 곧 깨버릴 것 같은 꿈처럼 오래오래 담아두고 싶은 모습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버스가 마석 모란공원에 도착하자 숙연하고 경건해졌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 어머니 묘소 앞에 다다랐을 때, 85호 크레인 독수리 중 선뜻 어머니 묘소 앞에 다가서는 이는 없었다. 서성이다 돌아서서는 땅만 탁탁 차대는 그들 너머로, 다양한 색깔의 작은 꽃모종들이 묘소 주변에 종종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원래는 참배를 마치고 어머니 묘소 주변에 꽃모종을 심기로 했으나, 땅이 얼어 심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바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느꼈는데, 땅은 여전히 겨울을 품고 있었나 보다. 문득 김영란의 시가 생각났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사실은 내가 아픈 것 같아

5월에, 가지 끝에 핀다는 향기 없는 꽃, 모란. ‘모란이 피고 나면 봄이 오는 걸까. 모란이 피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동동거려졌다. 노동자들에게 기다림이란 일상과도 같아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인 듯하지만, 기다림이란 늘 지루하고 때론 그 기다림 속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노동자들에게 봄은 기다리기만 하면 오는 것일까. 문득 어머니 묘지에 따뜻한 봄 햇살 한 자락 뚝 떼어 비춰드리고 싶어졌다. 어머니께서 가장 먼저 봄을 맞으실 수 있도록.

‘만약’이라는 말은 늘 후회를 남긴다. 만약 소원하시던 대로 어머니를 희망버스에 오르시게 했다면 오늘이 덜 사무쳤을까? 만약 어머니를 좀더 일찍 만나뵈러 왔다면 조금 덜 죄스러웠을까? 하지만 때늦은 후회와 자책은 묘소 주변 곳곳에 펼쳐진 어머니 살아생전 사진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내렸다. 크레인을 내려와 한 번도 내뱉지 못한 말, 사실은 나도 너무 힘들고 겁이 났다는 말,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들은 그제야 운다.

어머니 묘소에 들어서면서부터 연신 눈물을 훔치던 김진숙 지도위원. 크레인 위에서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던 그도, “늦게 와서 죄송하다”는 그 짧은 말을 울음에 섞여 토해내듯 겨우 한다.

그것을 지켜보던 85호 크레인 독소리가 울고, 콜트·콜텍, 재능교육,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운다. 하나가 울면 또 다른 하나가 울고, 또 그들을 지켜보던 이들도 울고, 우리는 그렇게 같은 시간과 아픔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 소리 없는 눈물, 곳곳에 그들의 한숨과도 같은 담배 연기만 피어났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그런 그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어루만져 품어주셨겠지. 그래서 아쉬움과 그리움이 더욱 그들을 북받치게 했는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고백처럼 건네던, 자신이 아픈 것 같다던 막내 독수리의 말. 사실, 그의 고백처럼 그들은 지금 많이 아프다. 메모를 하지 않으면 어제 일도, 자신이 잡은 약속마저 잊어버리기 일쑤인 사람들. 가만히 서 있는 유리문에 애꿎은 얼굴을 들이박고, 입술에 선홍빛 피를 흘리며 아파서 우는 건지, 그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어 우는 건지 모르는 사람들.

싸움이 끝나도 필요한 치유의 시간

가스불을 켜놓은 채 외출해서 집에 불을 낼 뻔했던 날 밤, 술에 취해 전화해서는 “쓸쓸해” 하고 말하던 사람들. 버스 타는 일, 은행에 가는 일,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 물건을 사는 일, 이 모든 일을 다시 배워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85호 크레인 독수리들이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일, 그 시간 속에 허둥대는 일. 그들에겐 지금 이 모든 평화로운 보통의 일상이 낯설고 어지럽기만 하다.

남들에겐 대수롭지 않아 보이겠지만 그들은 지금, 매 순간이 전쟁 같던 309일을 버텼던 만큼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하물며 그들보다 훨씬 오랜 시간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 재능교육, 쌍용차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인가. 콜트·콜텍 동지들에게 “이 정도 투쟁하면 이제 전문가지. 아예 이걸로 직업을 바꿔야 하는 거 아냐” 하고 농담처럼 던진 어느 인사의 말이 가슴에 맺히던 날이 있었다. 6년이라는 시간 중에 힘들지 않을 때가 언제 있었을까. 어느 한순간이라도 이것이 내 삶이라고 받아들인 적이 있었을까.

어느 누구든 자신의 불행에 익숙해지는 사람은 없다. 그들의 아픔에 늘 깨어 있기, 느끼기, 그리고 함께 나누는 것이 인간으로서 짧은 예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재능교육 노동자의 다 찢어진 투쟁 조끼에도, ‘콜밴’(콜트·콜텍 노동자 밴드)의 흥겨운 노랫소리에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지키지 못한 쌍용차의 그 아까운 사람들에게도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어쩌면 지금, 각기 다른 모습의 시간이 그들을 둘러싸고 흐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해고 통보를 받기 전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던 시간은 멈춰버리고, 해고 뒤 새로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싸움이 끝나고서라도, 지나온 그 긴 시간을 다시금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왔던 시간, 애써 외면한 시간을 가족과 친구와 내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 퍼즐을 맞추듯 하나씩 찾고 맞춰나가는 일종의 치유의 시간 말이다. 크레인의 그들처럼.

그래서 너무 길어지면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의 시간이, 속절없이 길어지는 이 시간이 더 아픈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들의 그 시간 속에 하나쯤은 따뜻한 기억이, 마음을 나누고 어깨를 내주고 손을 잡아주던, 그런 다정한 기억이 있다면 그 시간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그들의 가슴에 쌓이는 시간이 더는 버겁지 않기를, 그들의 어깨에 짊어질 시간이 더는 무겁지 않기를….

황이라 민주노총 부산본부 상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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