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입 열면 다친다, 그러니까 군대다?

공금횡령 내부고발자 황 중령은 징계받고 진급 탈락…의혹산 준장은 무혐의, 사건 종결 유도 소장은 서면경고
등록 2012-02-03 10:31 수정 2020-05-03 04:26
군 조직은 폐쇄적이다. 그래서 어이없고 무섭다. 내부고발자는 징계당하고 소송까지 내야 하지만, 비리 혐의자는 처벌도 받지 않고 편안히 전역하면 그만이다. <한겨레> 김봉규

군 조직은 폐쇄적이다. 그래서 어이없고 무섭다. 내부고발자는 징계당하고 소송까지 내야 하지만, 비리 혐의자는 처벌도 받지 않고 편안히 전역하면 그만이다. <한겨레> 김봉규

이 지난해 보도한 1990년 이후 대표적 공익신고 사건 36건 가운데 5건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군과 관련된 것들이었다(869호 표지이야기 ‘정의의 인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참조). ‘민간인’들이 낮은 포복으로 철조망을 돌파하더라도 도저히 알 수 없는 비리들이 계급장을 내던진 내부고발자들의 용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군 관련 제보자 5명 모두 감옥에 가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처절히 맛봤다. 반면 정작 비리를 저지른 이들은 ‘승승’하고, 옷을 벗더라도 ‘장구’한다. 직업군인에게 진급은 명예이자 목표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비리가 뻔히 보여도 질끈 눈감아 버리는 이유다. 공익제보 관련 단체들은 “외부 감시 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군 같은 조직에서는 내부고발자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내부고발자는 징계당하고, 비리를 저지른 이는 풀려나고, 군은 입을 싹 닫는, ‘그러니까 군대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한 사건이 여기 또 있다.

2010년 11월,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으로 장성 진급 심사를 앞둔 이아무개(육사 38기) 대령의 공금횡령 비리를 담은 A4용지 5장 분량의 익명 투서가 육군 중앙수사단장 앞으로 보내졌다. 구체적인 횡령 시기와 방법, 액수 등이 적시됐다. “1억여원 상당 공금을 횡령, 자신의 진급 로비를 위해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 대한 선물 및 향응 접대비 등으로 유용했다”는 폭발력 큰 예민한 내용이 담겼다. 이런 사람이 헌병 병과장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충정” 때문이라고 제보자는 적었다. 육군 중앙수사단 승장래(육사 37기) 단장은 이 대령의 범죄 혐의를 조사하기보다는 제보자 색출에 나섰다. 그러는 사이 이 대령은 별을 달아 준장이 됐고, 승 단장에 이어 육군 중앙수사단장 자리를 꿰찼다. 이에 제보자는 이듬해 1월 김관진 국방부 장관 앞으로 또다시 투서를 보냈다. 국방부 조사본부장(소장)으로 진급한 승 본부장은 형사처벌할 수준의 사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처벌을 피한 이 준장은 전역 지원서를 냈다. 대신 제보자 색출은 성과를 냈다. 이 전 준장의 비자금 조성 지시를 받았던 박아무개 소령의 하소연을 듣고 대신 투서를 보낸 황아무개 중령이 걸려들었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지난해 4월 이 전 준장의 횡령 혐의를 군이 덮으려 했다는 언론 보도가 터져나오자 김 장관의 재조사 지시가 떨어졌다. 두 달 뒤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 결과는 황 중령의 제보 내용이 상당 부분 사실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병사 빵값까지 빼돌렸던 치졸한 ‘장군님’

군검찰이 밝혀낸 이 전 준장의 혐의 내용은 이렇다.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대령)으로 부임하자마자 이 전 준장은 헌병단 예산 가운데 ‘현금화’가 가능한 항목들을 부하 실무자들에게 지정해줬다. 심지어 현금화할 구체적인 금액과 방법까지 알려줬다. ‘돈을 만들어내라’고 지시한 항목들을 보자. △병사 부식용 빵 구입비 △방탄모 도색비 △사무기기 유지비 △주방용품비 △병사 격려금 △사건처리비. 쪼잔하기 이를 데 없는 항목들이지만 쥐어짜니 돈이 나왔다. 병사 부식용 빵 구입비 횡령 방법을 보자. 이 대령은 빵 공급업체를 친분이 있는 이가 운영하는 업체로 변경해, 빵값을 높게 책정한 뒤 나중에 이를 돌려받는 수법을 썼다. 빵 운송도 업체가 직접하는 대신 부대 차량을 이용해 운임료를 빼돌렸다. 부대 차량은 연간 60여 차례나 빵을 실어날랐다. 이렇게 해서 1200만원이 쌓였다. 납품업체에 비품을 의뢰한 것처럼 속이거나, 비품 수를 부풀린 뒤 납품대금을 돌려받기도 했다. 이렇게 800만원을 빼돌렸다. 명절과 연말연시 경호·경비 행사에 동원된 병사들에게 쓰라고 상급부대에서 내려온 격려금 일부도 중간에서 사라졌다. 상급부대에서 격려금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 대령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회계처리 없이 개인 용도로 쓰거나 일부만 집행하고 일부는 빼돌렸다. 이렇게 1320만원을 횡령했다. 헌병 수사관들의 출장여비도 빼돌렸다. 수사관 개인 계좌로 입금한 뒤 돌려받거나, 현금으로 지급한 것처럼 서류를 허위로 작성했다. 이렇게 해서 또 1300만원을 따로 챙겼다. 2007~2008년 이 대령은 모두 4700여만원을 횡령했다. 박 소령의 “상급 지휘관 로비” 진술에도 불구하고 이 전 준장의 진급 로비 의혹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군검찰은 밝혔다.

부실수사 책임 서로 떠넘기는 군·민간검찰

군검찰은 이 전 준장 사건을 민간검찰에 이첩하고, 박 소령 등 관련자 처벌은 민간검찰 수사가 끝나면 일괄처리하기로 했다. 승 본부장에 대해서도 “범죄 혐의를 인지하고도 제때 수사에 착수하지 않고 의원 전역으로 사건 조기 종결을 유도했다”며 징계를 의뢰했다.

그럼, 정의는 바로 섰을까. 이 전 준장은 어떻게 됐을까. 군검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지난 1월 초 이 전 준장에 대해 ‘무혐의 내사종결’했다. 검찰 관계자는 “군검찰에서 박 소령의 진술을 근거로 사건을 이첩했는데 소령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돈을 조성한 것까지는 인정을 하는데 이 전 준장에게 얼마를 줬는지, 돈의 사용처가 어디인지 특정을 못한다. 일부는 (군 인사에 영향력이 있는) 예비역에게 상납을 했다고 하는데 그 역시 특정이 안 된다. 이 전 준장을 기소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민간검찰 쪽에서는 “기본적으로 군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우리가 군을 압수수색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군검찰 수사가 진척이 없다. 사건이 넘어온 뒤 8개월이 됐는데도 추가 증거를 보내오지 않는다. 군검찰이 사건 실무자인 박 소령도 기소 못하고 있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이 전 준장의 전역 지원을 왜 받아줬는지 의아하다. 지금이라도 군에서 보완수사를 해온다면 이 전 준장에 대해 재수사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군 당국은 민간검찰로 책임을 돌린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 전 준장에 대해 민간검찰에서 무혐의 결정을 했다. 횡령을 지시한 사람이 혐의 없음으로 끝났는데 박 소령을 입건·기소하는 게 의미가 없지 않느냐. 박 소령의 경우 비위 사실이 있으니 그에 맞는 처분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 전 준장은 싹 빠져나간 셈이다. 이 전 준장의 ‘무혐의 방면’을 사실상 도와줘 징계 의뢰된 승 본부장은 어떻게 됐을까. 징계 여부를 묻자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경징계에 해당하는 서면경고를 받았다”고 답했다. ‘조심하고 다음부터 잘하라’는 서면경고를 징계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그마저도 소리·소문 없이 이뤄졌다. 승 본부장도 싹 빠져나간 셈이다.

황 중령, 징계처분 취소소송 제기

후배 장교를 위해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무거운 총대를 대신 멘 황 중령은 어떻게 됐을까. 군 당국은 “지휘계통과 절차를 거치지 않은 진급 관련 투서 행위로 군 기강을 문란케 했다”며 지난해 8월 황 중령을 감봉 3개월에 처했다. 다른 비리 연루자들에 대한 징계는 진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진급 심사 대상자인 황 중령만 서둘러 징계위에 회부됐다. △지휘계통에 따라 정상적으로 제보하지 않았고(군인복무규율 위반) △개인 노트북으로 투서를 작성했고(보안규정 위반) △다른 이의 이름으로 투서를 보냈다(품위유지 위반) 등이 징계 사유가 됐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부패방지 및 내부공익신고업무 훈령’ 등 관련 법에 따르면, 신분보장·책임감면 대상에 해당하는 항목들이다.

황 중령은 대령 진급 심사에서 떨어졌다. 내부공익신고자 신변 보호를 규정한 국방부 훈령도 무시됐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공익제보자에 해당한다”는 의견도 무시됐다. 항고를 했지만 감봉 3개월에서 견책으로 징계 수위가 다소 떨어졌을 뿐 징계는 그대로 유지됐다. 앞서 수많은 내부고발자들이 조직에서 도태되는 공식이 그대로 재현됐다. 황 중령의 변호를 맡은 최강욱 변호사는 지난 1월 중순 대전지방법원에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냈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