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22일(박완서). 9월3일(이소선) 두 어머니가 세상을 뜨셨습니다. 어머니를 잃는 것은 자식에겐 머리 둘 데 없어진 슬픔이지만, 누군가의 어미로 살다가 자식을 잃는 것은 사람으로서 상상하기 두려운 고통입니다.
아들과의 약속, 41년의 갚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아들 전태일의 마지막 외침은 그의 어머니에겐 불덩이였습니다. “‘내가 헛되게 죽으면 안 되잖아요. 엄마가 제발 내 말 좀 들어주세요. …나 잊어버리고 부탁하고 가게, 엄마 크게, 크게 대답해주세요.’ 그라는 거라. ‘크게 대답하라’ 소리치면 피가 퍽 쏟아지고, ‘크게 대답하라’ 그라면 또 피가 퍽 쏟아지고….”() 죽어가는 아들 앞에서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고 소리쳤던 이소선씨는 이후 41년 동안 약속 갚음에 나섰습니다. 180번의 구류, 4번의 수감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민주화운동가로, 노동운동가로 살았습니다. 청계피복노조, 동일방직, YH무역, 박종철 고문치사 진상규명 투쟁,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설립, 쌍용차, 기륭전자, 영정이 마지막으로 이른 한진중공업 크레인까지 어머니가 두려워한 것은 자식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소에 그러셨죠. ‘태일이 얼굴을 어떻게 보냐’고요.…태일이 때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으냐’고.”(전순옥씨 878호 인터뷰 중에서)
여기 또 다른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는 1988년 남편을 폐암으로, 아들을 사고로 연달아 잃었습니다. “원태야,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참척의 고통’을 겪고 남은 부모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른 사람들은 알 길이 없습니다. 거기에서 주저앉지 않고 를 통해 2000년대로 넘어갈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기억을 잊어야 하는데, 제가 그 기억을 잊어버리면 우리 애는 이 세상에 안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가 될 수 있잖아요? 기억을 지우고 극복하는 일은 참 잔인한 일이에요.”(이해인 수녀와의 에서)
“어쩜 그렇게 혹독한 추위 그렇게 무자비한 전쟁이 다 있었을까. 이념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다만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이다”고 했던 박완서씨와 “자꾸 조금씩 양보하고 싸우면 절대 이길 수 없다”던 이소선씨. 두 어머니의 길은 분명 달랐습니다. 우리들도 모두 다릅니다. 우리들 모두 “엄마를 연거푸 부르면 넘치게 사랑받던” 누군가의 자식이었다는 점만 빼고는요.
남편과 자식을 잃고 쓰다
“한번은 이런 꿈도 꾸었어요. 어느 날 애를 가슴에 품고 가는데 애가 점점 가벼워지는 거라. 그래서 내가 막 그랬어요. 내 몸속으로 스며라. 사랑하는 아들아, 내 안으로 스며들어라. 내가 널 나의 몸속에 깃들게 해주마.”(박완서) “오늘 여기 오신 분들만 하나가 되면 우리 모두 할 수 있습니다.”(이소선) 두 어머니는 자식 곁에 묻혔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우리들은, 이제 누구의 자식입니까.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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