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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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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 레알 쇼를 보다

VS外傳 ‘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의 X와 Y잎 취중 인터뷰
등록 2011-12-29 16:01 수정 2020-05-03 04:26

 
만약 독자를 대상으로 기자들의 인기 투표를 한다면 누가 1위를 차지할까. 지난 4월 ‘부산저축은행 불법 인출’ 단독 기사로 24년 역사상 세 번째 사내 ‘대특종상’을 받은 하어영 ‘특종 전문’ 기자일까, 아니면 유려한 글쓰기로 부원들 사이에서 ‘스타 기자’란 아호가 붙는 신윤동욱 기자일까. 정작 가장 유력한 후보로 ‘X기자’를 떠올리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그가 2주에 한 번씩 쓰는 ‘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 고정 칼럼은 적잖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고 X기자 본인이 주로 주장하고 다닌다). 이 칼럼은 겉으로는 맛집 소개라는 콘셉트를 내걸고 있다. 그렇지만 실은 ‘술은 큐피드였고, 마음의 버튼이었고, 사랑의 묘약’이라 외치는 30대 부부의 엽기적인 음주의 기록이다. 맛집 따위에는 애초 관심도 없다. 부원들 사이에서도 이 부부의 ‘행각’을 두고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냐’라는 말이 오가는 참이었다. 서울 마포의 한 냉면집으로 부부를 호출했다. 도대체 어떤 자들인지 둘 다 한꺼번에 보기 위해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 보통 아니다.
 
‘주객전도’를 오디오북으로 듣는 느낌 
지난 12월20일 저녁, 냉면집에 문제의 ‘Y잎’이 등장했다. 눈매가 약간 ‘센티한’ 느낌을 주는 미인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첫인상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어제 먹은 술이 잘 안 깨서….” 옆에 있던 X기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소연을 시작했다. 사연은 대충 이랬다. X기자가 전날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할 때는 새벽 1시를 넘었다. 집은 가관이었다. 격한 술자리가 남긴 ‘참상’이 펼쳐졌다. Y잎은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고, 동네 주민이자 Y잎의 술 파트너인 승주 엄마도 널브러져 있었다. 승주 엄마는 X기자의 아들의 여자친구의 엄마다. 평상시에 조신한 여성이지만 술 앞에서는 장사도 없고 숙녀도 없었다. 먼저 도착한 승주 아빠가 집주인을 맞았다. 두 사내는 아내들이 벌인 술자리 위에 새로운 판을 벌였다. 맥주 한 페트가 사라졌다. 승주 아빠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내를 업고 집을 나선 때는 이미 새벽 3시를 넘겼다. “그래서 승주 아빠는 회사에 얘기하고 늦게 출근했대.” Y잎이 킥킥거리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런 걸 기시감이라고 하나. ‘주객전도’를 오디오북으로 듣는 느낌이랄까.
부부는 자리에 앉자 주문부터 했다. X기자가 따뜻한 시선을 던지며 이쪽을 향해 물었다. “소주를 먹을까요, 소맥(폭탄)을 먹을까요?” 선택지가 물경 두 가지나 되다니. 그렇게 ‘폭탄’이 수육과 녹두전 위로 어지럽게 오갈 즈음, 박용현 전 편집장이 술자리에 끼었다. X기자의 술자리 만담을 칼럼으로 승화하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어차피 맛집 소개도 더 이상 아닌데, 아예 술 소개로 칼럼 내용을 바꾸지?” 이제 떠났다고 아주 편하게 말을 던졌다.
 

»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멈추지 않는 부부의 ‘제조 공정’ 

밤은 깊었고, 술잔은 돌았다. 눈의 초점도 살살 풀렸다. 부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옥신각신하며 잘들 놀았다. 대형마트에서 술을 한꺼번에 사면 값은 싸지만 그렇게 집에 술이 있으면 너무 많이 마시게 돼서 집 앞 슈퍼를 주로 애용한다는 그들만의 ‘알뜰살림 요령’도 들었다. 육아를 하며 집에서 주로 술을 먹다 보니 생맥주를 못 먹고 주로 페트나 캔맥주만 먹어서 불만이라는 Y잎의 ‘고충사항’도 함께 들었다. 그러다 봐버렸다. 둘 다 대학생이던 연애 초기 ‘대시’를 한 쪽이 서로 자기가 아니라고 둘이서 우격다짐을 할 즈음이었다. 멱살이라도 잡을 듯 눈을 부라리며 Y잎을 바라보던 X기자가 글라스 4잔에 맥주를 따르자, 그 옆에서 빛의 속도로 소주를 부어 폭탄주를 완성하는 Y잎의 손길을. 드잡이질이라도 할 것 같은 순간에도 이 부부의 ‘제조 공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리면, 여지없이 Y잎이 내민 잔이 눈앞에 있었다. 그 잔을 다 받아먹다가, 기자는 그날 그만, 필름이 화르륵 끊겨버렸다. 이쯤 되면 알 만했다. 이들의 칼럼에 등장한 무수한 ‘화상’들이 왜 유독 이들 앞에서는 떡이 되고 곤죽이 되는지를.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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