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기형도, ‘비가2’ 중)
흥청거리는 세밑에, 아프게 저문 이름들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죽음의 행렬 속으로 떠난 19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 살인적인 밤샘 노동으로 사망한 20명의 4대강 노동자들. 지난 1월,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남은 밥과 김치를 달라”는 쪽지를 남기고 숨진 최고은 작가. 7월 등록금 대출금을 갚으려고 이마트 경기도 일산 탄현점에서 터보냉동기 점검 작업을 하다 질식사한 대학생 황승원씨. 8월 강원도 속초시 교동의 한 학원 건물 3층에서 고립된 고양이를 구조하다 순직한 김종현 소방교. 10월 “성적 때문에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는 이 세상을 떠나겠다”며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부산의 한 중학생. 12월 경기도 평택 참숯가구전시장 화재 진압에서 순직한 이재만 소방위, 한상윤 소방장. 12월9일 자정께 인천공항철도 계양역 부근에서 선로 보수작업을 하다 달려오던 기차에 치여 숨진 백인기씨 등 5명의 철도노동자들. 12월12일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의 나포작전 중에 순직한 이청호 경장.
<font color="#C21A8D">이들의 죽음을 기억할 이유</font>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죽음을 보며, 올 한 해도 대한민국 곳곳이 새남터였음을 느낍니다. 이별 없는 세상은 없겠으나, 때로 어떤 이별은 감당할 수 없는 큰 아픔을 낳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개별적이었지만, 우리는 이들의 죽음을 개별적인 영역에 안장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죽음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죽음에 사회의 책임이 깃들어 있는 까닭입니다. 노동자를, 학생을,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세상이 아니었다면, 죽지 않았을 많은 생명들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가장 우선하는 사회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입니다. 사람이 사람 대접 받는 세상이었다면, 스러지지 않을 목숨이었습니다.
이들과 우리가 인간이라는 얇은 끈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죽음을 기억할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 여전히 우리들 앞에 남아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죽음을 기억할 이유일 터입니다. 이들의 죽음이 일깨운 ‘세계의 비참’을 되새기며, 또 다른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을 때, 우리들은 이들을 온전히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들을 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으라”는 한 시인의 말은 우리 곁에, 우리들 모두의 기억 속에 이들이 살아 숨쉬어야 한다는 말로 되새겨야겠습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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