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뜨거운 이슈가 됐던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은 결국 가해자들이 출교 조처를 당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폭력의 가해자들이 어느 정도 처벌받았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그러나 잊지 말고 직시해야 할 부분이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학생들 사이에서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점 외에도 충격적인 사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경직된 구조 속에서 용인된 폭력</font></font>
우선 사건이 공개되자마자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문란함’을 입증하려고 설문조사를 했다는 사실이다. 교수들도 가해자들을 비호하며 사건을 ‘적당한’ 선에서 무마시키려 했다는 점도 놀랍다. 게다가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약 100일 동안 고려대 의과대학 내에서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는 이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의과대학 사회라면, 안타깝게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일단 의과대학의 권위주의적 문화를 이해해야 이 사건을 파악할 수 있다. 의과대학 교육과정과 수련과정에서는 ‘권위’를 넘어 ‘권위주의’까지 용납되는 경우가 많다. 권위주의는 다름 아닌 의과대학의 교육 시스템을 자양분으로 먹고 자란다. 이를테면 의과대학에서는 한 과목만 F학점을 받으면 1년을 다시 다녀야 한다. 1천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다시 내야 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교수에게 ‘찍혀’ F학점을 맞은 경우라면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한 번 ‘찍힌’ 관계가 다음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좁은 의사 사회에서는 의사로서 살아가는 동안 이런 ‘낙인’이 평생 따라다닐 수도 있다.
이렇게 경직된 구조 속에서 권위주의는 쉽게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유명 의사들의 폭행과 관련된 비화, 위 연차의 아래 연차에 대한 폭력은 뜬소문이 아니라 실제로 목격된다. 비록 교수가 학생에게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아도, 군대처럼 견고하게 짜인 학번 서열을 타고 폭력은 파도처럼 밀려 내려온다. 학생회라도 제 기능을 하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의과대학 학생회는 의사 파업을 기점으로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들은 본과 4학년이었는데, 이는 본과에서는 학번 간 서열의 정점에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조건은 고려대 의과대학 학생 전체를 침묵하게 하는 데 적잖은 구실을 했을 것이다.
구조화된 권위주의는 동기 간의 폭력도 쉽게 용인할 수 있게 한다. 동기 사이에서 사고가 나면, 그 학번 전체가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의대생들에겐 자신이 아닌 다른 동기생의 태도 때문에 학번 전체가 위 학번에게 ‘훈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은 동기들 사이에서 침묵을 강요당한다. 이번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2차 폭력과 집단의 보이지 않는 폭력은 이렇게 용인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의과대학 교육의 문제도 있다. 의대생이 대부분 임상의사가 되지만, 교육과정을 통해 환자를 전인적으로 대할 수 있는 자질을 키우기 위한 교육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의대생들에게 ‘의사’의 상을 바라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고대생 출교란 ‘대증 요법’만으론 불충분</font></font>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등 일부 모임은 이번 사건에 대해 올바른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의사 사회에는 여전히 문제가 크게 남아 있다. 대한의사협회 협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오바마’가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를 뜻한다”며 건배사를 하는 현실이다. 의사 사회의 질병이 이번의 출교라는 ‘대증요법’으로 완치될 것이라 기대하기 힘든 이유다. 의과대학 내 권위주의 문화를 개선하려면 ‘수술’이 필요하다. 이것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제다.
최규진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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