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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529명, 직장생활 ‘욕망의 불똥’ 인사를 평가하다… 고과 잘 받으면 업무 실력 덕, 못 받으면 체계 불공정한 탓?!
등록 2011-05-12 16:25 수정 2020-05-03 04:26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직장도 카이스트다.” 회식 다음날 근태관리 안 되는 직장인이 뒤늦게 영재끼를 보일 리는 없다. “상대평가는 누구에게나 ‘서남표’다.” 인사평가 얘기다. 대기업 11년차 회사원 김아무개(37)씨. 영재들의 집합소에서 갑자기 한국 사회 무한경쟁의 상징이 돼버린 카이스트의 징벌적 등록금이 남 얘기 같지 않다. “아무리 공정하게 한다 해도 모두가 불만이니 인사평가는 그렇다 치자. ‘FA 시장’이 열리면 더 초라해진다.” 노예처럼 묶였다 자유계약(FA) 자격을 얻고 대박을 치거나 쪽박을 차는 프로선수들이 있다. 직장인도 마찬가지란다. “요즘은 현 부서에서 일정 기간 이상 ‘의무복무’를 해야 다른 부서로 옮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 기간이 끝나면 누구한테는 여러 팀에서 서로 오퍼가 들어간다. 반면에 찾는 사람 없는 누군가는 지금 있는 부서라도 꼭 붙들고 있어야 한다. 새로 영입되는 사람한테 밀려나지 않으려고, 쓸려나가지 않으려고 젖은 낙엽처럼 찰싹 바닥에 붙어야 한다.” 정권 교체기마다 관공서별로 필사적으로 펼쳐진다는 ‘젖은 낙엽 신공’이 유파를 불문하고 일반 기업에도 그 범용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스리쿠션’ 발령의 희생양

공기업 10년차 직원 박아무개(38)씨. 정기인사철도 아닌데 최근 소속 부서가 바뀌는 날벼락 인사 발령을 받았다. 4년간 있던 부서에서 자기만 빠지는 ‘원포인트 인사’였다. “4년 동안 편하게 있었는데 회사에서 눈치챘나 보다.” 애써 위안을 삼지만 정신적 공황 상태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스리쿠션’ 인사였다. 애초 다른 사람이 가야 할 자리였는데, 그가 파견으로 자리를 비운 탓에 다른 직원에게 유탄이 튀었다. 그 직원은 피했고 이씨는 정면으로 맞았다. 이씨는 10년 동안 4차례 부서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전혀 해본 적이 없는 기획부서로 발령이 나 부담이 크다. 살아남은 부서원들이 유탄을 대신 맞고 전사한 이씨에게 위로주를 샀다. 떠나기 전 잔무 처리 때문에 술자리에 늦게 갔더니 안주는 살아남은 자들이 다 먹고 쓰린 술만 남아 있었단다. “어쩌겠나. 가서 죽도록 일해야지.”

파리만 날린다고, 때 되면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봉급쟁이들은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자영업자들은 모르는 고통이 있다. 취업 준비생과 855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이 들으면 한가한 소리일 수 있지만, 850만 명 정규직 봉급쟁이들에게 ‘인사’는 ‘만사’다. 욕망이다. 승진이 ‘회사형 인간’의 연대기를 통시적으로 구성한다면, 인사고과와 이 부서에서 저 부서로 옮기는 수평 발령은 때로는 성취감을, 때로는 유목민적 통증을 동반하며 회사형 인간을 공시적으로 재현한다.

3년 전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긴 이아무개(40)씨. 기존 부서에서 업무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데 인사가 났다. 정기인사였다. 의무복무 기간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었다. 게다가 3지망까지 써내는 인사희망원에 ‘스테이’를 썼다. 부서에서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다른 동료 2명도 마찬가지였다. 인사가 나던 날 밤 부서원들과 통음을 했다. 믿고 의지하고 일을 맡겼던 생때같은 팀원들을 한꺼번에 잃은 팀장은 알 잃은 갈매기처럼 ‘꺽꺽’ 울었다. 이씨는 새 부서에서 팀장 자리를 맡았다. 승진은 아니면서 책임과 일만 늘었다. 인사 직후 ‘배째라’는 심정이었지만, 책임감이 머리·어깨·발·무릎을 모두 눌렀다.

그래, 상대평가의 수혜자들은 자기들끼리 살라고 하자. 수많은 김씨, 이씨, 박씨. 그들과 굳은 연대감을 표출하는 직장인들이 여기 모였다. ‘너와 나를 서로 다투게 하라.’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벌어지는 진리와 거짓의 싸움에서는 언제나 진리가 승리한다더라. 그러면 인사평가의 자유시장에서 승리하는 자, 그 누구인가. 아니, 인사평가는 과연 공정한 자유시장인가. 이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의뢰해 직장인 529명의 ‘인사 그 후’, 환희와 상처가 오고 가는 내면 풍경을 들여다봤다.(표 참조)

‘나 잘났소’ 있지만 ‘내 탓이오’는 없다
» 자료 제공 : 잡코리아

» 자료 제공 : 잡코리아

직장은 공기업·대기업·중소기업·외국계 기업, 직급은 평사원, 직장인의 꽃이라는 대리, 과장·차장·부장·임원으로 서로 갈렸지만 그들의 애환은 비슷했다. 529명 가운데 2010년도 인사평가 결과를 받아봤다는 이들은 313명이었다. ‘인사평가 결과에 만족한다’가 175명(55.9%), ‘불만족스럽다’가 138명(44.1%)이었다. 반은 웃고 반은 찡그렸다. 4·27 재보선 결과처럼 ‘반반’은 우리 사회의 황금비가 돼가는 듯하다.

불만족스럽다는 이들을 먼저 살펴보자. 자신이 인사고과를 잘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평가 시스템 자체가 공정하지 않기 때문’(55명·39.9%)이라며 판 자체를 불신하는 이가 가장 많았다. 이어 ‘상사에게 아부하지 않았기 때문’(38명·27.5%)이라는 다소 충격적 이유가 두 번째였다. 인사에 정실이 개입했다는 불신이다. 70%에 가까운 직장인들이 인사평가 시스템을 불공정하다고 본 것이다. 이번 정부의 ‘국시’라는 공정사회는 그렇게 민간에서조차 흔들리고 있었다. 반면에 ‘내 탓이오’를 말하는 이는 매우 적었다. ‘상사와 주변 동료들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않아서’(18명·13%), ‘잦은 지각·조퇴 등 불성실한 근무태도 때문’(8명·5.8%) 등의 이유에는 적은 인원이 손을 들었다.

인사평가에 만족한 이들은 ‘성실한 근무태도’(74명·42.9%), ‘뛰어난 업무 실력’(41명·23.4%), ‘상사·동료와의 원만한 인간관계’(39명·22.3%)를 자신이 고과를 잘 받은 이유로 꼽았다. 90% 가까운 이들이 ‘내가 잘났기 때문’이라고 답한 것이다.

남 탓은 ‘패배’한 이들의 만고불변의 습속일까. 우리 회사 인사평가는 공정한가? 57.7%(305명)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우리 회사 인사평가 시스템은 체계적인가? 75.8%(401명)가 ‘형식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인사평가가 ‘주관적’이라고 평가(369명·69.8%)한 이도 많았다. 내 탓도 있지만 회사 탓도 있다는 얘기다.

» '회사형 인간'들에게 인사는 만사다. 인사평가 결과에 따라 누구는 배를 째고, 누구는 혀 깨물고, 누구는 머리털이 빠지고, 누군가는 충성을 다한다. 그리고, 또다시 인사철은 돌아온다.

» '회사형 인간'들에게 인사는 만사다. 인사평가 결과에 따라 누구는 배를 째고, 누구는 혀 깨물고, 누구는 머리털이 빠지고, 누군가는 충성을 다한다. 그리고, 또다시 인사철은 돌아온다.

인사평가 결과에 낙담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직을 생각했다(47명·34.1%). 한마디로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 정신의 발로다. ‘배째라. 더 이상 쨀 곳도 없다’며 일 안 한다는 고백(17명·12.3%)도 많았다. 주변 동료들이 피곤해지는 유형이다. 그러나 재기를 꿈꾸며 ‘혀 깨물고 일하는 와신상담형’(40명·29%)도 곳곳에 있었다. 공정하지 못한 시스템이라면서도, 믿을 것은 역시 시스템뿐이라는 이들이다. 문제는 인사평가를 잘 받은 사람 가운데 52%(91명)는 고과를 받아든 뒤 ‘더 열심히 일하고’, 16.6%(29명)는 ‘회사와 상사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한다’는 점이다. 이 시대의 황금비가 깨지지 않고 견고해지는 이유일지 모른다.

‘와신상담’에서 ‘배째라’까지

인사평가에 속 쓰려 한 이들의 정신적 외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딴 생각을 하거나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34명·24.6%), ‘직장이나 가정에서 이유 없이 자주 화를 낸다’(29명·21%), ‘소화불량·탈모 등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다’(24명·17.4%),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17명·12.3%), ‘술·담배가 늘었다’(15명·10.9%). 잡코리아의 정주희 대리는 “직장인들이 인사평가 시스템을 불신하는 데는 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수직평가가 많기 때문”이라며 “상당수 회사들이 실적에 대한 인센티브 등 보상을 주는 시스템인데, 고과를 잘 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케어’도 필요하다. 일부 업체에서는 이런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기업 직원 박씨처럼 갑자기 부서가 바뀌는 날벼락 인사를 경험한 이들은 529명 가운데 249명(47.1%)에 달했다. 이들도 부서가 바뀐 뒤 ‘와신상담형’(92명·36.9%), ‘이직 생각하는 일탈형’(51명·20.5%), ‘배째라형’(23명·9.2%) 등으로 나뉘었다.

인사철에 다른 부서로부터 ‘오퍼’를 많이 받는 연차는 따로 있다고 한다. 대리에서 과장 중년차까지가 특히 인기란다. 그 정도 연차에 직급이면 일도 웬만큼 하는데다, 가장 큰 이유는 승진에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2명밖에 승진을 못 시키는데 승진 연한이 꽉 찬 사람이 그보다 많으면 연말 부서 분위기가 험해진다. 그러니 승진 연한이 됐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안 받으려 한다.”(대기업 직원 김씨) 게다가 상대평가이다 보니 본인이 일을 잘해도 승진 대상자들을 위해 인사고과에서 일부러 ‘바닥을 깔아줘야’ 하는 처지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올해 승진 못해봐라. 내년에 또 깔아줘야 한다.”

‘신규개발’이나 ‘글로벌’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기피 부서다. 여기로 날벼락 발령이 나면 스트레스 수치는 급격히 올라간다. 큰 기업은 계열사별로 연봉 차이가 크게 나는데, 신규 사업이나 해외 사업을 새로 벌일 경우 아무래도 성과를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죽도록 일하고 보고서만 쓰다가 돈도 못 받는다”는 푸념이 나온다. ‘현장경영 강화’라는 이름으로 본사에서 지방 지사로 ‘하방’시키는 경우도 있다.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강제 하방을 하다 보니 아이 교육, 집 문제 때문에 늪에 빠지게 된다. 인사로 사람이 순식간에 망가질 수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거란 위로

전문가들은 공정한 인사평가 문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처방을 내놓는다. 평가를 받는 사람도 평가 과정에 들어가는 참여형 평가, 다양한 평가지표 활용, 인사평가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에 대한 교육·훈련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평가란 없다. 대기업 15년차 직장인 김아무개(42)씨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풀린다.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살아가게 된다”고 했다. 의사에게서 날벼락 진단을 받은 뒤 보이는 심리적 단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내가 왜!’라며 부정하다가 결국에는 상황을 합리화하며 극복해내는 경지가 그것이다. 최근 부장으로 승진한 한아무개(43)씨는 “신규 부서로 발령이 났다가 그 부서가 대박이 터지는 경우도 있다. 그때 울며 간 동기들이 지금은 나보다 연봉을 많이 받는다”는 새옹지마의 지혜도 전수했다.

상흔은 남았고, 그래서 쓰라렸다. 시간은 정말로 약이었다. 인사 그 후, 이글이글 타오르던 분노, 채워지지 않은 욕망의 불똥은 결핍을 새긴 별똥별이 되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기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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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1153A4">인사고과의 역사</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품성론에서 업무 실적 중심으로</font></font>
1천 년 전 봉급쟁이 조상들도 인사고과에 괴로워했다. 고과(考課)는 과거시험을 통한 관료제가 일찍부터 자리잡은 고려 때부터 쓰였다. 관리의 인사고과제도를 뜻하는 ‘고공과지법’(考功課之法)에서 유래한 말로 고공(考功)과 같은 말이다. 조선왕조도 이 용어를 가져왔다. (1392년 7월28일)을 보면, 문무백관의 관제를 정하며 “이조는 관원들의 근무 성적을 심사해 우열을 매기고 고과하는 등의 일을 관장한다”고 나온다. (임용한 지음)를 보면, 조선 전기 인사고과 기준은 ‘출근성적’과 ‘포폄’(근무성적) 두 가지였다. 서울대 경영연구소에서 펴낸 를 보면, 조선 후기에는 ‘능력’과 ‘자질’을 등급별로 조합해 무려 1024등급으로 평가하는 방법이 제시되기도 했다.
우리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인사평가를 하기 시작한 것은 반세기 정도에 불과하다. 1960년대 신문기사를 찾아보면 인사관리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뉴스가 되기도 했다.
해방과 함께 일제 자본이 빠져나가고 그나마 남은 산업 기반도 한국전쟁으로 초토화해 인사평가라는 고급스러운 시스템이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자 기업 규모가 급속히 커졌다. 체계적인 인사관리가 필요해진 것이다. 를 보면, 1957년 한국전력의 전신인 조선전업주식회사에서 처음으로 인사평가제도를 도입했다. 1961년 호남비료에서도 인사평가제를 도입했고, 그해 ‘공무원근무평정기준’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시기 인사평가는 평가 목적보다는 학력 등의 기초자료 성격이 강했다. 게다가 업무 자체보다 성격·인품 등에 초점을 맞춘 ‘품성론’식 인사평가가 주를 이뤘다. 출근 상황도 주요한 평가 기준이 됐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연공서열에 따른 평가에 더해 능력·실력주의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재벌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자 인사제도도 비서실·기획조정실 등이 총괄하며 정교화됐다. 그러자 불만도 나타났다. 인사평가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불만 비율이 높게 나왔다. 제조업·은행업은 이 비율이 50%에 달했다. 1979년에 나온 대한항공 사사에는 “근무평정의 공정성 강화가 요구된다”는 기록이 나오기도 한다. 사람 중심에서 직무 중심으로 자리를 옮겨가던 인사평가제도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며 급속히 변화한다. 성과주의가 뿌리를 내리며 개인의 업적에 따라 급여에 차등을 두는 연봉제가 도입됐고, 인사평가도 그만큼 촘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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