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6일 오후 경기도 수원의 경기지방경찰청 2층 회의실에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경찰은 손글씨로 빽빽한 편지 24장과 우편봉투 복사본, 우편 소인을 모아 복사한 A4용지를 카메라 앞에 하나하나 자신 있게 들어 보였다. 탤런트 고 장자연(당시 29살)씨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던 50통(230쪽)의 편지가 “장씨의 실제 필적과 다르다”고 이날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발표한 뒤였다. 경찰은 “편지는 정신질환의 의심이 있고, 고인과 관계없는 전아무개(31)씨가 필적을 흉내 내 작성한 것으로 위작으로 판단한다”며 편지가 ‘가짜’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지난 3월6일 SBS가 고인의 편지를 입수·보도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장씨의 죽음에 대해 경찰은 “재수사는 없다”고 밝혔다.
현재진행형인 의혹들
SBS의 보도 뒤 를 비롯한 모든 언론이 ‘장자연 편지’를 앞다퉈 보도했다. 포털 사이트와 트위터 등 온라인 공간도 뜨겁게 달궈졌다. 편지가 ‘가짜’라는 수사 결과가 나온 이상, 편지의 진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언론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언론과 우리 사회가 편지에 주목한 것은 2년 전 경찰 수사에서도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의혹을 풀 새로운 실마리로 봤기 때문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양후열 과장이 지난 3월1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과수에서 “고 장자연씨의 친필 논란 문건에 대한 필적 감정 결과 가짜로 판명됐다”고 발표하고 있다.한겨레 이종찬
2년 전 경찰은 전담 수사팀을 꾸리고 4개월여에 걸쳐 수사를 했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 대상자 가운데 장씨와 술자리를 갖거나 성접대를 강요한 의혹을 사고 있는 16명 중 5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강요죄 공범 등)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데 그쳤다. 검찰은 2009년 8월 장씨의 전 소속사 대표 김아무개(41)씨와 매니저 유아무개(32)씨만 폭행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고 나머지는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단체, 누리꾼들은 “장씨가 남긴 문건에서 거론됐던 고위 임원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의 혐의를 벗겨준 수사만 했다”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유력 인사들의 혐의가 벗겨진 비슷한 시기에 의 단독 보도로,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 연기자 183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19.1%(35명)가 “성상납을 강요받았다”, 34.4%(63명)가 “접대를 강요당했다”고 답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년이 지나 편지의 진위에 모든 시선이 쏠린 지금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글을 남긴 여성 연예인의 죽음은 달라진 것이 없다. 장씨의 죽음이 알려진 뒤 가장 먼저 논의됐던 이른바 ‘장자연법’은 2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고, ‘연예인 인권 문제’ 실태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지난해 소속 연예인에게 성상납을 강요한 한 연예기획사 대표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또 다른 연예기획사 대표가 소속 연예인들에게 성상납을 강요한 혐의로 구속됐다.
새로운 의혹도 제기됐다. 는 지난 3월15일 “2년 전 경찰이 고위 임원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저녁 식사 자리에, 의 다른 계열사 사장 ㅂ씨가 동석했다는 진술이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ㅂ씨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당시에 혐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며 “정확한 확인을 위해 법원에 제출한 수사 기록을 다시 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편지의 진위와 상관없이 고 장자연씨가 자살한 직접적 원인이 무엇인지, 접대와 성상납을 받은 인사가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찰은 3월16일 브리핑에서 “고인의 친필 편지가 아닌 것으로 밝혀져 재수사가 불가능하지만,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새로운 수사 단서가 확보되는 경우 언제라도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경찰의 발표 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인권운동사랑방 등 시민사회단체는 “고 장자연씨 사건의 투명한 진상 조사를 위해 특검을 도입하고, 매니지먼트 관련 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상황은 2년 전과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이승준 기자 한겨레 24시팀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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