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공연’이란 말을 들을 때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밴드가 하나 있다. 영국의 프로그레시브록 밴드인 유라이어 힙이다. (Salisbury)와 (The Magician’s Birthday) 같은 명작을 남기기도 한 유라이어 힙은 (July Morning)이란 노래 덕분에 지금까지도 매년 7월이 되면 라디오를 통해 어김없이 소환되곤 하는 밴드다. 유라이어 힙이 한국에서 내한공연을 한 건 1993년이었다. 이들의 호시절이 1970년대였다는 것을 떠올려본다면 전성기가 지나도 한참은 지난 상태였다. 팀의 주축이던 켄 헨슬리와 데이비스 바이런은 팀을 떠났고,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믹 박스가 겨우겨우 밴드를 이끌어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한공연에 굶주려온 한국 관객에게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고, 의 웅장한 건반 인트로가 울려퍼지던 순간은 그 뜨거움의 절정이었다. 객석의 반응에 고무된 믹 박스는 준비해온 태극기를 등에 두르고 연주했다.
올해도 ‘본격 내한공연 돋는 해’로
유라이어 힙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건, 유라이어 힙의 경우가 과거에 한국에서 벌어진 내한공연들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다른 음악인들 또COM한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을 찾는 이들은 언제나 이렇게 한물간 음악인들이었지만 관객은 그마저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한국은 ‘세계 공연시장의 미사리’와 같았다. 음악인들은 추억을 팔았고, 한국 관객은 기꺼이 그 추억을 함께 나누며 감동했다. 그게 불과 몇 년 전까지의 일이다. 하지만 대형 음악 페스티벌의 연이은 개최와 함께 상황은 조금씩 변해갔다. 영국과 미국의 차트에서 이름을 올리고 있는, 혹은 음악 팬들의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밴드들이 한국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스티비 원더, 펫 샵 보이스, 키스 자렛, 제프 벡, 카니에 웨스트, 그린 데이, 뮤즈, 플레이밍 립스 등의 공연이 한 해에 펼쳐졌던 2010년은 ‘본격 내한공연 돋는 해’로 기록될 것이다.
2007년, 새 음반 (In Rainbows) 발매를 앞두고 있던 라디오헤드는 음반 발매에 앞서 음원들을 먼저 온라인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가격은 소비자가 알아서 책정하게끔 했다. 공짜나 마찬가지였다는 얘기다. LP와 각종 아트워크 작품이 담긴 박스세트를 발매한 건 그 뒤의 일이다. 이는 더 이상 음반을 통한 수익 구조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며, 이제 음반은 수집가들만을 위한 골동품이 돼버렸다는 것을 뜻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현재의 록 음악계를 대표하는 젊은 거장이자 인기의 정점에 있던 라디오헤드의 이 조치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라디오헤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데는 공연시장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다. 라디오헤드는 젊은 음악 팬들이 자신들의 ‘무료’ 음악을 듣고 공연장으로 와주길 바랐다. 팝스타인 프린스도 이와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세상은 변했으며 이제 음악시장은 단순히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라디오헤드와 프린스의 경우만을 놓고 볼 때, 그 선택은 전적으로 옳았다. 그들의 ‘유료’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보자. 지금 한국의 ‘내한공연’ 시장이 이렇게 활성화되고 있는 건 간단하게 말해,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앞서 라디오헤드와 프린스의 예에서 보았듯 음악시장은 음원에서 공연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자연스레 한국을 찾는 해외 음악인 수는 많아지고 있고, 흥행 성적 또한 나쁘지 않다. 손해를 보는 경우도 적어지고 있다. 음원시장을 10대 아이돌 팬들이 장악하고 있다면, 공연시장은 경제력이 있는 30~40대 팬들이 주도하고 있다.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여성 팬들의 구매력은 이들을 목표로 한 또 하나의 시장을 형성했을 정도다. 기업들의 문화 마케팅으로 인한 후원이 늘어나면서 대형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늘어나기도 했다. 과거 같았으면 예상 적자를 고스란히 감수하고 추진했어야 할 공연이 대기업의 후원 덕분으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갖추고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수익성보다는 일본처럼 다양한 공연을 할 수 있게끔 일단 규모를 키우자는 순수한 목표로 공연을 추진하는 기획사도 있다. 이 모든 이유가 더해지면서 2010년과 2011년의 내한공연 열풍이 만들어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증명하라내한공연 열풍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만 해도 ‘핫’한 이름들이 대거 대기 중에 있다. 이미 스팅과 테일러 스위프트가 2011년의 시작을 알렸고, 이글스나 아이언 메이든, 산타나 같은 거장들부터 MGMT, 슬래시, 헬로윈, 코린 베일리 래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한국 팬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흐름을 계속 잇게 하고 정착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지만 앞서 말한 라디오헤드의 예를 뒤집어야 한다. 라디오헤드 같은 높고 커다란 이름이 아니라면, 내한공연을 추진할 때 국내 기획사에서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여전히 음반이나 음원의 판매량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인기로 연결되고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열린 밥 딜런 공연의 썰렁함은 좋은 예다. 밥 딜런의 최신 음반들은 제쳐둔 채 그저 (Blowin’ In The Wind)와 (Knocking On Heaven’s Door)를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관객과 밥 딜런의 음악적 고집 간의 괴리감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에릭 클랩턴을 자신의 역할모델이라 말하면서도 (Wonderful Tonight)과 (Tears In Heaven) 정도밖에는 알지 못한다는 한 국내 가수의 경우는 또 어떤가. 지금도 계속 새로운 음반을 발표하는 아티스트에게 현재는 외면한 채 추억만을 바랄 수 없는 노릇이다.
한국에서 헤비메탈 시장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지금 가장 잘나가는 헤비메탈 밴드들이 한국만 제외한 채 일본과 동남아를 돌며 아시아 투어를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자신들의 음반이 거의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엔 팬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아티스트가 라디오헤드처럼 될 수 없고, 그렇게 행동할 수도 없다. 좋아하는 음악인의 공연이 보고 싶다면 먼저 좋아하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옆나라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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