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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허문 CBS의 진실

등록 2001-07-04 00:00 수정 2020-05-02 04:21

노조 단식기도회 9일째 노사협상 타결… 정관개정안 통과되면 경영상 변화 생겨

“고맙습니다. 드디어 타결됐습니다.”

지난 6월26일 아침 들뜬 목소리가 휴대전화를 타고 흘러나왔다. CBS 전북방송 이기완 프로듀서였다. 잠이 덜 깬 상태라 어리벙벙해 있는데, 간밤 8시간에 걸친 마라톤협상 끝에 CBS 노사 양쪽이 대타협을 이뤘고 파업의 불씨가 됐던 정관개정안도 곧 통과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파업 265일, 노조의 단식기도회 9일째였다. 값진 결과였다.

8시간 협상 끝에 나온 대타협안

축하한다는 말을 해야 했으나 불과 하루 전 CBS 사태 해결이 지지부진하다는 기사를 마감했던 담당기자로서는 왜 진작에 알려주지 않았느냐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363호 표지이야기 ‘파업 250일 CBS의 진실’에 대한 독자반응을 알리는 365호 ‘독자와 함께’ 기사였다. 9개월째 재단이사회와 교계의 철옹성 같은 침묵의 벽에 번번이 좌절해야 했던 노조로서는 재단이사회가 전권을 위임한 김상근 목사와 노조 민경중 위원장의 협상을 앞두고도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다급했던 쪽은 회사였다. 26일 낮 국회 문화관광위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었고, 방송위원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설 채비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단이사회에서 직장폐쇄를 결의하며 강경일변도의 방침을 내세워 여론도 다시 들끓고 있었다.

김상근 목사와 민경중 노조위원장은 마라톤협상 끝에 26일 새벽 CBS의 새 출발을 위한 합의문에 전격 서명했다. 합의문은 정관개정안을 7월31일까지 통과시킬 것, 노사 양쪽이 제기한 모든 고소·고발사건을 취하하도록 권고할 것, 파업과정에서 발생한 직원 징계를 해소하고 불이익을 배제할 것 등 모두 8개항을 담고 있다. 권 사장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파업사태의 책임에 대해 회사와 노조, 간부와 노조원 모두가 용서와 화해를 실현한다’는 문안으로 정리됐다. 권 사장의 임기가 반년 남짓 남은 상태라 노조에서도 한발 양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합의사항은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투표율 89.8%(197명 중 177명 투표 참여)에 찬성률 96.0%로 가결됐다.

협상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각계에서 보인 반응도 뜨거웠다. CBS 출신 한 언론인은 “언론사상 초유의 최장기 파업을 인내와 끈기로 버텨낸 노조원들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고 말했고, ‘시비에스를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오창익 간사는 “90%쯤의 성공이지만 기독교방송과 한국 교회의 모든 관계자에게 큰 교훈을 줬다”고 말했다. 특히 마지막까지 중재에 애썼던 기독교장로회 김경식 회장과 문대골 교사위원장 등은 “앞으로도 노사간의 합의사항이 잘 지켜지는지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다만 기장 소속 한 목사는 “기장이 물밑 노력을 많이 했는데 사적 이해관계에 얽혀 제대로 노력하지 않은 것처럼 <한겨레21>이 보도해 유감이다”라는 뜻을 전해왔다.

언론사상 최장기 파업, 그 뒤의 변화

파업사태의 근본원인 중 하나였던 정관개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CBS 경영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정관개정안은 직원대표 3인이 참여한 사장청빙제 도입, 전문이사 영입, 경영자문위원회 구성 등을 뼈대로 한다. CBS 안팎에서는 “유력교단에서 분점하던 재단이사회의 세력관계와 끊임없이 논란이 됐던 주먹구구식 경영방식도 크게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협상이 타결된 뒤에도 두명의 엔지니어가 쓰러질 정도로 단식기도회에 참여했던 CBS 노조원들의 건강은 많이 악화된 상황이다. CBS 노조는 7월2일부터 업무에 복귀하고, 7월11일께 CBS 사태해결을 위한 공대위 관계자와 시사모 회원, 청취자들과 함께하는 ‘파업 뒤풀이’를 목동사옥 근처에서 열 계획이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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